성철 큰 스님과의 인연은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다. 1983년 가을, 서울에서다. 서점 서가에서 한 권의 책 “산은 산 물은 물의 이성철 스님”을 본다. 뽑아 든다. 돌아와 인사를 나눈다. 이성철 큰 스님. 얼마나 큰 울림의 이름이던가. 메말랐던 미국 생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마음 밭’을 적셔주던 소식이다. 존재의 실상을 밝히는 말들. 정말 귀에 익은 그림들이다. 또 얼마나 큰 뇌성벽력이던가. 눈은 멀고, 고막은 터지고 생각이 끝나는 자리다. “…보이는 만물(萬物)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眞理)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1월 15일, 조계종 종정 취임 법어에서) 인연이 닿으면 3천 배의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묻고 싶은 ‘한 가지 의문 덩어리’와 찾아 받을 ‘한 가지 물건’을 정한다. 그러나 1993년 11월 4일 새벽, 성철 큰 스님은 우리 곁을 떠나고 혼자 새긴 그 인연은 다한다. 후회막급. 몸에 밴 어리석음 탓이고, 게으름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라도 되새김질하며 곁에 서 있는 “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 어찌 아름답지 않을 것인가.
먼저 찾을 물건이다. 큰 스님을 위해 찾으려 한다. 책 ”산은 산 물은 물의 이성철스님”을 들고, 표지 첫 장을 넘겨 보자. 한 폭의 그림. ”유일무이한 큰 스님의 친필 ‘일원상’ 이향봉스님 소장”이라는 글과 그 밑에는 “위 ‘일원상’을 고급 화선지에 담아 책을 구입하시는 분에게 보너스로 드립니다”라는 안내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집으로 돌아 온 후에 본 내용이다. 그러나 고급 화선지에 담은 “일원상”은 없다. 내가 지닌 책에는 없다. 왜인지는 모른다. 처음부터는 아닐 것이다. 성철 큰 스님을 찾는 이웃들의 욕심 탓일 수가 있겠지만, 그 때 그 해인사 백련암은 독자 누구인가에게 “일원상” 한 점을 빚진 것만은 사실이다. 큰 스님이 떠난 뒷자리이기에 더욱 더 조심스러울 뿐이다.
내가 다짐한 다른 한 점 “의문 덩어리”는 인연따라 오고간다는 “생명”에 대한 것이다. 큰 스님의 양미순목(揚眉瞬目)을 뵈올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중한 인연이고, 큰 복이련가.
할머니(강상봉) 따라 온 수경이. 딸 수경이를 맞이하는 아버지 ‘성철 큰 스님’.
“아버지에게 인사 올려라.” 할머니의 말이다. 수경은 큰 절을 한다.
“몸은 튼튼하냐.” “네.”
“중학교에 다니다 내려왔으면 공부를 계속해야지 않느냐.”
“내년에 진주 사범학교에 들어갈 생각이어요.”
딸 수경이의 말에 성철 스님은 “…잘 생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막중하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선생 자신이 인격으로 닦여져야 하느니라”고 타이른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가볍게 미소짓던 성철스님은 “앞으로 나를 부를 때는 스님이라고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스님.”
“소임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라. 대개 중생이 삼세를 통하여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가 쉽지않은 법이다. 생명을 아끼고 뜻을 바로 세워라.” ”알겠습니다, 스님.”
성철 큰 스님 전기소설 우리 옆에 왔던 부처(이 청, 324/5쪽 참조) 속의 아버지 성철 큰 스님과 일점혈육, 어린 딸 수경(불필스님)양이 삼세인연을 풀고 다시 맺는 자리이다.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생명”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너무나 소중한 생명이다. 큰 스님이 어린 딸 수경이에게 아끼라고 이른 “생명”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연이 모여 몸을 이루고, 살다 인연이 다하여 흩어지는 날 혼비백산(魂飛魄散). 그렇게 끝나는 것이 생명인가. 흙에서 온 몸이야 그렇다 치자. 그러나 ‘있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몸을 떠나는 ‘어떤 그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생명의 신비, 그것의 처음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생명의 처음을 “할아버지, 할머니” 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인연의 처음을 이끌어 낸 그 어떤 것. 참으로 생명의 오고 감을 여쭈어보고 싶었다. 일체무위(一切無爲). 선(禪)이 이루는 끝자리도 결국 몸이다. 생명이 떠난 자리에서 “선”은 앉아 있는가, 누워 있는가.
뒤따르는 ‘의문 덩어리’였다. 인연 따른 선(禪)이 끝나는 자리가 바로 “믿음의 은총”의 출발의 자리가 아닌지, 음력 4월을 보내며 엉성한 내 살림살이를 다시 한 번 더 챙겨 본다.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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