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이 쓴 ‘아빠와 함께 산행기’
공한백 객원기자/월넛크릭 노스게이트하이
한 달에 한 번씩 아버지와 근처에 있는 산에 올라간다. 난 별로 가기 싫지만 아버지께서 산을 너무 좋아하시기 때문에 올라간다. 지난 주 산에 가기로 했는데 아버지와 전날 작은 논쟁으로 가기 싫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 가는 trail은 Mitchell Canyon Creek, 거기서 Deer Flat을 올라간다. 올라가고 있을 때는 아버지와 대화가 없었다.
슬슬 먼저 올라갔고 결국 산에 먼저 올라가게 되었다. 올라가면서 옆에 있는 경치를 봤다. 올라가는 길이 꾸불꾸불해서 그런지 올라가도 경치가 변하지 않았다. 허나 점점 산 너머 산들이 보였고, 그 산을 넘어있는 도시가 보였다. 결국 정상에 도달했고, 거기서 산 밑에서 볼 수 없는 경치를 보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문득 아버지가 읽으라던 책의
명언이 생각났다.
“One, who flies the highest, can see the farthest.”
이 명언에 난 두 가지를 깨달았었다. 한 가지는 내가 올라온 산은 경치가 보여서 쉽게 올라왔지만, 어떤 산들은 나무가 많아서 정상을 오르기 전까지는 경치를 못 본다는 것이었다. 만약 경치를 못 보면서 올라왔더라면 난 포기했을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며 난 삶에서 정상 끝까지 올라가지 않기 전엔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또 한가지는 정상까지 올라가기 전에는 아무도 그 곳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올라가서 경치가 좋으면 그만큼 자신의 만족을 얻을 것이고 또 경치가 너무 좋아서 또 올라가보고 싶을 수도 있다. 만약 안 좋으면 다신 안올라가도 된다. 하지만 정상 끝까지 안 올라가고 중간에 포기하면, 정상이 어떤지를 모를 것이고, 호기심 때문에 또 올라가고 싶어지면, 하던 일을 두 번 해야 한다. 그러다가 또 포기하면 시간 낭비, 피곤함, 지겨울 뿐, 아무것도 얻지 않는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처음할 때 제대로 하자라는 명언이 또 떠오른다.
아버지는 곧 올라오셨고, 뒤에 있는 작은 picnic table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버지는 참외를 깎아주셨고, 점심과 같이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경치를 보며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한백아, 뭐가 보이니?” 경치를 보며 난 어리둥절하게 대답하였다. “경치가 보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선 말하셨다. “자유가 보이지 않니?” 이 말을 듣자 난 통 무슨 소린지 몰라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다 먹고, 이제 다시 내려가려고 하던 참, 아버지께서 shortcut이 있다고 하셨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데를 가자고 하셔서 의심도 많았고 아버지의 길로 가기도 싫었다. 허나 어쩔수 없이 아버지를 따라갔다. 가던 중 아버지께 지도를 달라고 요청했다. 전혀 shortcut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알고보니 shortcut이 아니었다). 지도를 보니, 더 빨리 갈 수도 있다고 보았다.
가는 길은 Meridian Trail, 다른 경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마음으로 걸었다. 그러나 끝없는 trail, 점점 짜증이 났다. 얼굴에 퍼진 짜증을 보곤 아버지는 물으셨다. “한백아, 부처가 뭐냐?” 짜증난 소리로 모른다고 했더니 아버진 웃으면서 모르는 게 정답이라고 하셨다.
첫번째 산꼭대기로 도착하자 더 화려한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아버지는 부처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셨다. 부처는 삶과 죽음에서의 자유, 행복과 불행에서 초월한 자유, 좋고 싫음에서 벗어난 자유, 인간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 이것이 진정한 대자유인의 부처다. 이 설명을 듣고서도 아직 난 부처가 뭔지 잘 몰랐다.
곧 마지막 산을 향해 갔다. Eagle Peak Trail을 향하던 중 정말로 솔개 한 마리가 바람을 타면서 즐기고 있는 걸 보았다. 너무 멋있게 바람을 타면서 날고 있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 산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했고, 다른 산들 중에 제일 멋있는 경치를 보았다.
그때 아버진 다시 물으셨다. “한백아, 뭐가 보이니?” 난 환한 미소로 대답을 했다. “자유가 보입니다.” 왜 아는 대답을 물어보실까 하는 생각에 잠시 들떴던 나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깨달았다. “부처가 보이지 않니?”
이 말을 듣자마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너무 부끄러워 아무 말 없이 집을 향해 마지막 산을 내려왔다.
마지막 산을 내려오는 길은 너무 길었다. 결국 물을 다 마셔버렸다. 한 5시간 동안 산행을 해서 아버지와 나는 피곤에 지쳐 있었다. 한 1시간 뒤에 다시 차에 도착했고 차를 타며 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집에 가다가 주유소를 들러서 아버지가 사주신 음료수를 마셨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와 나는 힘든 산행을 끝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산행에 얻은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산행을 마치고 차에 타서 쉴 때와 시원한 음료수를 들이킬 때 내가 자유인이 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결국 그 산행은 나에게 대자유인 즉 부처가 보이는 느낌을 조금은 가르쳐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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