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의 <자전거 도둑>과 80년대를 기억하는 또다른 시선
1. 견딜 수 없는 정신의 허기
80년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가?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80년대란, 시쳇말로 ‘운동권’ 아니었던 사람 없고 학교 수업보다 집회 출석율이 더 좋았던 시대, 그러나 지나치게 과장되고 미화된 영화와 소설 정도로만 존재하는 시대, 그것이 바로 80년대를 위한 가장 선명한 묘사법이 될 것이다.
단절된 기억의 강 저편에서 엄숙주의가 아니면 상업주의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건너다 보는 80년대의 풍경임에도 잊지 않고 부기해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달착지근한 추억 속으로 우리를 시시때때로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그 무엇, 그리하여 깊은 골로 패여 있는 우리 정신의 허기를 메워주는 바로 그것 말이다. 김소진의 소설들은 친숙하지만 80년대 소설이라는 매끈한 이름 아래는 결코 서사될 수 없는 것들, 정치학적 메타담론의 영역에 가려져 회자될 수 없었던 것들, 즉 인간의 고독과 슬픔과 소외와 허기의 상처같은 보잘것 없는 것(?)들을 80년대를 기억하는 소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80년대를 거대한 폭력의 흐름과 그것을 거스르는 노도와 같은 힘의 분출로 기억한다. 김소진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이처럼 강렬한 색채로 존재하는 80년대의 소설들 속으로, 또한 그토록 깊고도 가볍게 걸어 들어가 인간의 정신적 허기와 슬픔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김소진은 겨우 존재하는 것들, 그리고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조차 놓치지 않고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소주 두 병을 얻기 위해 중인환시리에 아들의 뺨을 친 못난 아버지, 간질병 든 오빠를 굶겨죽인 독한 여자, 시레이션박스를 얻기 위해 GI에게 몸을 판 소년, 아들의 등록금과 창녀의 손가락에 끼워줄 가락지를 맞바꾼 바람난 아버지, 그들이 모두 김소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다.
그래서, 김소진의 소설 앞에서 우리는 너무 다 보여주는 3류 포르노를 보고 난 뒤처럼 뒷통수가 헐렁해지고 가끔씩, 아주 가끔씩 손톱 밑의 가시처럼 성가실 때도 있다. 특히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을 대할 때면 더욱 그러하다.
2. 불화와 화해하기 위하여
<자전거 도둑>은 ‘나’의 자전거를 훔쳐타는 여자 미혜의 기억과 ‘나’의 기억, 그리고 영화 <자전거 도둑>의 이야기다.
‘나’는 신문기자다. 몸이 아파 일찍 퇴근한 어느날, ‘나’는 앞집 여자 미혜가 ‘나’의 자전거를 훔쳐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일로 친구가 된 젊고 발랄한 에어로빅 강사인 미혜와 ‘나’는 ‘나’의 애장품인 영화 <자전거 도둑>을 함께 보게 된다.
그리고, 이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유럽을 휩쓸었던 네오 리얼리즘 운동의 대표자인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역작 <자전거 도둑>은 ‘나’와 미혜의 기억의 저장고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아픈 기억의 붉은 살을 헤집어 낸다.
그 기억이란 다름 아닌, 아버지와 ‘수도상회’ 혹부리 영감과 ‘나’의 해묵은 이야기로, 아직까지도 <자전거 도둑>을 볼 때마다 어두운 기억의 한 켠에 환하게 불이 켜지듯 생각키우게 되는 일이다. 그 기억이란 다음과 같다.
중풍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던 아버지의 호구지책은 다름 아닌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일. 구멍가게를 채울 물건을 ‘수도상회’에서 매일 떼어 오던 중, ‘소주 두 병’을 빠뜨리고 오던 다음날, 아버지는 그 ‘소주 두병’을 몰래 자루 속에 챙겨 넣었고 혹부리 영감은 그것을 발견해 내게 된 것. 아버지는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아들인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따끔하게 버릇을 고쳐주라’는 혹부리 영감의 강압으로 아들의 따귀를 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 이야기와 ‘수도상회’를 분탕질 쳐 혹부리 영감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야기도 미혜에게 털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집단 정신치료 같아서 미혜 또한 자신의 이야기- 다락방에 갇힌 채 한 평생을 살아오던 간질병 환자인 친오빠를 굶겨 죽인 사실-를 ‘나’에게 고백한다.
결국, ‘나’와 미혜는 <자전거 도둑> 속의 또 다른 브루노이며, 불화한 개인사와 타협하기 위해 <자전거 도둑>을 틈틈히 보거나, 타인의 자전거를 훔쳐타는 것이다.
이처럼, 김소진의 소설 속, 하나의 이야기가 생겨나는 방식은 간단하다. 고독과 슬픈 기억을 검은 고래처럼 뱃 속 깊은 곳에 숨긴 인간들이 있고, 그들은 마치 자연주의자처럼, 삶의 기저에 내려 앉은 모든 비밀들을 샅샅이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토록 깊은 고독과 엄청난 슬픔을 사랑한다는 사실, 그들 모두 불화한 시대가 남긴 어두운 기억과 화해하기 위해 한 판 언어의 굿판, 치유의 집단 치료행위를 벌인다는 사실이다.
3. 기억을 건너는 방법
우리는 어떠한 시선으로 삶을 주시하고 관찰해 왔는가. 어쩌면 우리는 지난 시대를 지나치게 신비화하여 너무 거대하고 막강한 실체로 파악하고 소설화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80년대를 단 하나의 거대 정치 담론으로 토해내어 인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외시켜 온 것은 바로 당대에 대한 신비주의적이며 메타철학적인 시선이 만들어낸 길들이기 힘든 괴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신비주의를 넘어서기 위하여 슬픈 기억과 아픈 고독에 치렁치렁한 수사학을 곁들이고 80년대식 정치 담론으로 재해석해내는 일은 피하기로하자.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은 정치와 문화와 사회라는 거대 담론이 비껴간 곳에 아주 조용히 서 있는 작고 볼품 없는 인간의 상처를 그림으로써 불화한 시대와 화해하고 어두운 기억을 건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세계라는 거대한 물질성과 마찰하면서 영롱하게 자의식을 벼르는 일, 삶을 공격하지 않고 아픈 기억과 화해하는 김소진의 방식 또한 특별하지 않은가. <자전거 도둑>의 부르노가 되어 기억의 피안으로 더욱 납작게 웅크리는 ‘나’와 자전거 도둑이 되어 어두운 기억을 헤집으며 쌩쌩 달리는 ‘미혜’ 둘 중 어느 누구도 기억을 부정하고 도망치지 않는다.
“장강의 물은 변함없이 흐르되 어제의 그물이 아니다” 라고 했던가. 수시로 우리를 헐떡이게 하는 그 오래된 기억들 또한 어제의 그 기억이 아니기에 어쩌면, 아프고 모진 기억을 곱씹으며 지금의 나와 세계를 화해의 눈길로 바라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영화 기자> 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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