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는 일본에서 혼슈 다음으로 큰 섬으로 면적이 남한의 85%나 된다. 공장이 거의 없어 섬 전체가 자연 그대로나 다름없는 청정지역이다. 맑은 물과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 산을 뒤덮은 온갖 나무들의 교향악이 심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지금은 일본 땅이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250만개의 빨간 벽돌로 지어진 삿포로 구 북해도 청사에 가 보면 홋카이도의 자연과 역사에 관한 전시실이 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이곳을 어떻게 ‘개척’했나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러나 ‘개척’ 당시 홋카이도는 빈 땅이 아니었다. 이곳 원주민인 아이누 족들이 선사시대부터 터를 잡고 살던 곳이었다. 일본 정부는 먼저 이들과 무역을 하자면서 계약을 맺은 후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아이누 족들의 항의를 무력으로 짓밟고 땅을 뺏은 후 일본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아이누 족의 언어와 문화는 말살되고 강제 혼혈정책을 써 지금 순수한 아이누 혈통은 사실상 사라졌다. 아이누가 독립된 민족으로 사라진 1997년 뒤늦게 일본 의회는 ‘아이누 보호법’을 만들었지만 보호 대상이 사라진 상태여서 유명무실한 법이나 마찬가지다.
구 북해도 청사의 전시실에는 이런 피눈물 나는 아이누의 역사는 한 줄도 언급돼 있지 않다. 어떻게 일본인들이 악조건을 극복하고 오늘의 홋카이도를 건설했는가 하는 얘기뿐이다. 일본의 한국 역사 왜곡은 아이누 역사 왜곡에 비하면 진실 그 자체다. 일본이 한반도를 100년 넘게 통치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원주민을 학살한 후 땅을 빼앗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똑같은 일이 100배 규모로 벌어졌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과거에 저지른 일을 반성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의 인디언 학살사건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 유명한 것은 ‘운디드 니 학살사건’(Wounded Knee Massacre)이다. 1890년 12월29일 수 부족을 네브래스카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제7 기병대 소속 500명의 병사들은 운디드 니에서 수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발포, 300명을 살해했다. 남은 150명은 도주했지만 대부분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1890년 2월 연방 정부는 수족과 맺은 조약을 깨고 땅을 빼앗았다. 절반 크기 땅으로 강제 이주된 이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인 수렵을 버리고 농업을 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이주한 땅은 농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연방 정부가 식량 배급을 절반으로 줄인 데다 백인 이주자들이 몰려들자 인디언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연방 정부는 이들을 내모는 것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보고 강제 이주시키려다 이런 참극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의 전모를 그린 ‘내 심장을 운디드 니에 묻어라’(Bury My Heart at Wounded Knee)는 인디언 역사를 다룬 고전이다. 1970년 디 브라운이 쓴 이 책은 서부 개척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고 악당이 누구인가를 미국인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말에는 HBO가 이를 역사극으로 만들기도 했다.
역사적 과오를 바로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교황이 갈릴레오 탄압을 사과하는데 400년, 클린턴이 노예무역을 사죄하는데 역시 400년 가까이 걸렸다. 그러나 아직도 인디언에 대한 범죄에 대해 미국 정부가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미국은 인디언 땅 말고도 1848년 멕시코와 불법적인 전쟁을 일으켜 현 미국 영토의 1/3에 달하는 땅을 차지한 나라다. 그런 나라가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겠다고 열을 올리는 것은 보기가 좀 민망하다.
이제 와서 지나간 역사를 모두 원상회복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답게 살아 보겠다고 미국 땅을 찾는 이들에게 문을 넓게 여는 것이 과거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씻는 길이다. 미국인의 조상들도 한 때는 밀입국자였으며 불법체류자였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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