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에서 이민 근로자들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새 이민이 없이 ‘미국인’만으로는 국내 노동력 수요를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정도다. 하나의 숫자로 말하라면 미국 전체 노동력의 14%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부분야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저임금 단순직에서 그 수치가 훨씬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농장노동의 47%, 청소의 36%, 건설노동의 27%, 그리고 식품제조 및 요식분야의 24%를 차지한다. 이들 분야의 인력 수요가 계속 증가세라는 것이 연방노동부의 발표다.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허드레 일의 근로자만 부족한 게 아니다. 미국인들의 두뇌 공급이 못미치는 최첨단 하이텍 분야도 외국인에게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실리콘밸리 창업자중 3분의1이 중국과 인도계로 집계되었다. 또 지난해 미 전국 대학의 전기공학분야 석사학위 50% 이상과 박사학위 71%가 외국태생 학생들에게 수여되었다. 컴퓨터를 비롯한 과학분야 일자리 역시 2014년까지 매년 10만개 이상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상원이민개혁안에서 불체자의 신분합법화 못지않게 뜨거운 쟁점이 바로 노동력 공급 조항이다. 게스트워커 프로그램이 단순직 노동력의 대량공급을 위한 임시노동자 제도라면 이민신청시 고학력과 전문기술 소지자를 우대하는 포인트 제도는 고급인력 확보를 위한 정책이다.
두가지 다 초당적 법안작성에 참여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불체자 신분합법화를 얻어내기 위해 공화당에 양보한 부분이다. 이민단체 및 노조에 동조하는 민주당 일각에서 당연한 반대가 나오고 있다.
게스트워커 프로그램에 의하면 임시노동자는 2년짜리 Y비자를 3번 갱신할 수 있는데 매번 바꿀 때마다 본국으로 돌아가 1년씩 기다려야 한다. 가족을 데려오려면 건강보험과 빈곤선의 150% 이상을 벌어야 할 뿐 아니라 비자 갱신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이미 지난주 상원심의에서 수정안을 통해 임시노동자 쿼터를 매년 40만명에서 20만명으로 줄이는데 성공한 민주당은 이 제도 자체가 착취당하기 쉬운 노동 하류계층을 양산할 것이라고 반대한다.
노조측에선 값싼 임금에 중독된 미국의 ‘노예노동법안’이라고 비난한다. 열악한 조건에도 불평없이 일해야하는 이들과 함께 미국 전체의 근로조건이 저하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앞으로 임시노동자는 종래 농업 분야만이 아니라 건설, 요식, 청소, 가드닝 등 다양한 분야에 배당될 것이어서 그 영향이 더욱 클 것도 걱정한다.
업계에선 훈련 마쳐 일 시킬만해지면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이 본국으로 나가야하니 노동력 공급이 불안정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20만명으로 줄인 것도 크게 불만이다. 매년 밀입국자 수와 비슷한 40만명으로도 충분치 않다며 필요에 따라 늘이는 장치 없이는 지지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돈 가진 재계의 성난 보이스를 무시할 의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라틴계 등 이민단체에서 가장 반대하는 것은 임시노동자에게 시민권 취득의 길을 허용치 않는 규정이다. 힘든 막일 실컷 시킨 후 영주체류의 기회를 안 주는 것은 비인도적이라는 지적만이 아니다. 비자기간이 만료된 그들이 돌아가는 대신 불체자로 숨어들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여론의 45%도 이제도가 불체자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 줄일 것이라는 예상은 41%다.
그러나 이번 양당합의에서 공화당 측을 리드한 존 카일 의원은 완강하다. “임시는 말 그대로 임시다” 그는 미래의 이민시스템을 이렇게 정의한다. ‘영주권은 고급기술 소지자에게 주어야 한다, 비숙련 단순직은 철저히 임시라야 한다’
전문인력 공급을 위한 포인트제 역시 현 개혁안 그대로는 곤란하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마켓은, 특히 하이텍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 필요인력 확보를 정부가 쥐고있다는 것은 너무 비생산적이라는 지적이다. 특정분야에 당장 사람이 필요한데 느려터진 관료주의가 무작정 고학력 이민신청자를 심사하며 포인트가 부족하네, 어쩌네 하며 막아설 것이 뻔하다는 이야기다.
미국인의 66%는 임시노동자제도를 찬성한다. 포인트 제도도 51%가 지지한다. 미 이민정책의 방향전환은 이미 터가 다져졌다는 뜻이다.
이민법 논쟁은 다음주 상원에서 더욱 뜨겁게 가열될 것이다. 이번 한주동안 자신의 선거구에서 지역구민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돌아온 의원들은 다음주말 전에 표결에 들어갈 전망이다. 부시대통령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의원들을 설득하며 표 모으기에 열심인 그는 엊그제도 공화당 강경파들을 이례적으로 공개비난하며 “결정을 내릴 용기가 있다면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역설했다.
부시대통령이야 보수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찬성표를 던지는 용기를 말한 것이지만 이민노동력의 힘을 제대로 평가하는 용기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민노동력이 미국경제의 저력으로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근로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인간답게 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일 것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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