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이자 정객이며…협객도 아니고 정객도 아니고…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다. 14년 전 이맘때 기자는 슬롯머신 사건을 취재하는 사회부 말단기자였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 공안검사의 간판격이었던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 등을 낙마시킨 이 사건은 당시에도 김영삼 정부의 ‘박철언 죽이기’ 아니냐는 뒷말을 낳았다. 진위야 어떻든 기자는 당시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주먹 이승완 호국청년연합회 총재를 추적했다. 검찰수사의 칼날이 그를 겨냥했으므로 다른 기자들도 대개 그랬다. 소득은 끝내 없었다. 거의 매번 그랬듯이 대형 주먹사건 배후에 늘 그가 있는 듯 소문이 돌지만 샅샅이 훑어보고 낱낱이 뒤져보면 정작 그는 소문의 강 저 너머에서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그의 용의주도함 때문이라며 여전히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주먹이 세고 의협심이 강해 전국에서 따르는 무리가 많을 뿐, 그는 결코 조폭두목도 정치건달도 아니라고 말한다. 주먹을 잘 쓰되 건달세계에 물들지 않고 정치를 잘 하되 의원뱃지에 연연하지 않고 걸림없이 살아온 자유인 혹은 경계인이라는 주장이다. 14년 전 뒤를 쫓다 허탕친 그를 29일 밤 쿠퍼티노에서 만나 시계추를 거꾸로 돌렸다 앞으로 굴렸다 오늘에 맞췄다 해가며 두세시간 얘기를 나눴다.
▶북가주에 온 까닭은…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지레짐작을 그는 또다시 비웃었다. 미국에 온 김에 동지 겸 후배(나기봉 전 SF체육회장)를 보고싶어 들렀다. 간만에 만났으니 함께 이곳저곳 구경하며 바람도 좀 쐴 참이다. LA 뉴욕 시카고 DC에서는 후배 태권도인이 개발한 전자호구 홍보행사를 거들었다. (주)라저스트(대표 이희익)가 개발한 전자호구는 판정시비가 끊이지 않은 태권도계의 ‘테크노 포청천’으로 지난달 베이징 세계선수권 등 여러 국내외 대회에서 공인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태권도연맹(WTF)도 이를 테크노 심판으로 인정, 머지 않아 올림픽 등 WTF 공인대회 공식장비로 등장시킨다고 한다.
▶깡패두목 아니라 태권도인
그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태권도였다. 전주고 시절 각종 대회를 휩쓴 그는 해병대 창단멤버로 입대, 초창기 해병태권팀을 이끌며 전국대회 5연패 등 무적으로 군림했다. 젊은 나이에 태권도계 거목으로 떠오른 그는 비즈니스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60-70년대를 거치면서 전국의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속속 그의 핵주먹 우산 아래 몰려들면서 그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주먹황제가 됐다. 80년대 후반 조직한 호국청년연합회 회원이 수천수만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단지 주먹이 세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건달처럼’ 인식된 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 바람에 “아무 상관도 없는 사건”(2000년 태권도협회 사건 등)에 엮여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는 그는 대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을 거쳐 국기원 고문 등을 맡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세계태권도연맹(WTF) 사무총장직을 맡은 양진석 전 코테마데라 시장에 대해서는 “정치적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적응하고 열심히 한다”고 평가한 그는 앞으로도 태권도 세계화, 국기원-WTF의 역할분담 및 유기협조, 태권도인들의 대동단결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킨십 리더십, 개방형 리더십
배신과 협잡이 난무하는 건 주먹세계나 정치세계나 엇비슷하다. 그런데 그가 수십년동안 협객과 정객의 경계인으로서 건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스킨십과 개방성을 강조했다. “툭 치면서 야 요새 잘 돼가?, 하고 한마디 물어보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확 끄는 것”이라는 그는 “집에서도 부부간에, 부부자식간에 자주 마주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그러면 다 잘 되게 돼 있다”며 “특히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엇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칼같은 위계질서 때문에 경직돼 있을 법한 타인관도 의외로 개방적이었다. “요새 젊은 이들이 귀에 뭐 귀걸이다 뭐다 꼽고 그러잖아. 그거 처음 볼 때는 저 놈 뉘집 xx이냐 이랬는데, 그거 자주 보니까 거 귀여운 구석도 있더라고. 자주 접하면 달라져요.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게 있어. 말하자면 뭐 저런 게 다 있다 싶은 그 녀석들이 보면 우리들은 생각도 못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런단 말이야. 그걸 높이 사야 돼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치생각
전국 각지에 있는 소위 ‘이승완 사단’의 조직력과 그 조직의 응집력 때문에 그는 정치의 계절이 아니라도 늘 정치권의 주목 대상이다. 대선이 있는 올해 같은 경우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 ‘대목’을 누릴 수도 있다. 최근 어느정파에서는 그에게 달착지근한 감투를 제시하며 손짓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태 안했는데 지금와서 그걸 왜…집사람이 이러더구만. 이제 그 지저분한 링에 올라가지 말고 링사이드에서 구경이나 하고 박수나 치라고, 허허허.”
뉴욕 등지를 거쳐 29일 오후 북가주에 온 이승완 국기원 고문은 나기봉 전 SF체육회장 등과 함께 30일 하루동안 관광을 한 뒤 31일 귀국한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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