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한국문화를 대하게 되면 ‘우리’라는 단어를 곧 배우게 된다. 관광 가이드 책, 한국어 책 등은 물론 대화중에도‘우리민족’‘우리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심지어‘우리나라이즘’이라는 영어 논문까지 있다.‘우리’는 그토록 중요한 단어인가?
그렇다. 때론 소집단의 의미로 쓰여 미국인들처럼 ‘나의 엄마’라 하지 않고 ‘우리 엄마’라 한다. 이 경우 ‘우리’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우리민족’이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많은 서양인들이 ‘우리 엄마’와는 다른 느낌을 갖는다. 특히 내 세대들은.
1980년 초 대학시절 친구와 극장에 갔다. ‘탑건’ 예고편이 상영되었다. 미 해군 폭격기가 클로즈업 되었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조종사가 용감하게 활약했다. 뒷좌석의 노신사가 옆 사람에게 말했다.
“이 영화 우리 해군을 멋지게 보여주는데”
순간 친구와 나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우리가 미국 시민이고 해군들은 미군이었지만 왠지‘우리’라는 말이 아주 촌스럽게 들렸던 것이다.
1970년대 베트남전 직후의 분위기는 도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우리에게 나라 사랑에 큰 회의를 품게 했다. 우린 미국이란 곳에 살고 있을 뿐이고 미국이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그에 한몫 할 뿐이라고만 생각했지, 미국에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미국은 우리 존재의 축이 아니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젠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의미가 강해졌다. ‘우리’는 종종 적을 의미하는 ‘그들’과 함께 대비되는데 특히 9.11 이후 더욱 그렇게 되었다. 정치인들은 ‘미국 민족’이란 말까지 쓰면서 어떻게 해서든 다문화에서 하나의 혼합체를 창조하려 한다. 다민족의 미국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반자연적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과 미국인 간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 단일민족인 한국과 극도로 혼합된 민족인 미국간의 극적인 차이를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한국에 가면 “당신은 전형적인 미국인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랑만 혹은 증오만 할 수 있는 미국, 아니면 어느 한 전형적 타입을 대표하는 미국은 없다. 물론 특정 정권을 좋아하거나 혹은 문화의 한 일부를 좋아하는 미국인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국가에 대한 정의라면, 모든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혹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안전한 일반론이라 하겠다.
그렇긴 해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람들’에 속하고 싶어 한다. 나의 반쪽 조상은 1790년 독일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주했는데 후손 일부는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을 ‘독일인’이라 소개한다.
지난주 한 대학 다문화 웍샵에 갔던 사람을 만나 들은 얘기다. 한 흑인 강사가 참석자 모두에게 서로의 몸을 묶고 마루에 쪼그려 앉으라 했다는데,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타고 올 때를 재현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체험해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 조건의 하나로 필연적이다. 그래서 나도 어릴 때부터 내 고향 야구팀을 목 터지게 응원했다. 비록 선수들 대부분은 고향사람이 아니지만.
‘우리 민족’이란 단어는 한국적 상황으로 보아 참뜻이 있는 걸까? 언젠가 1990년대에 독일여행을 많이 한 한인 수필가를 만난 적이 있다. 남북한 통일 후의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여행했다는 것이다. 통일이 불가피한데 그것은 “피가 정치보다 진하기” 때문이라 했다. 나는 “피가 바로 정치”가 아니냐며 그 의견에 반대했다. 미국인들에겐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이다. 그렇지 않은가? 단지 내 DNA가 조금 더 비슷하다고 해서 세종대왕보다 셰익스피어를 더 자랑스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라는 그룹에 소속되지 않아 외로워질까 두려워한다. 존 레논의 노래 중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라는 가사가 처음엔 순수하고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낀다. 거리에서도 “신이여 미국에 은총을”이란 스티커를 20개쯤 볼 동안 “신이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은총을”이란 스티커는 하나만 눈에 띄지만, 나는 미국이 단일 민족이 아님을 신께 감사하며 계속 그렇게 되길 빌 것이다.
케빈 커비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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