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백악관과 손잡고 초당적 합의를 이루어내긴 했지만 상원 이민개혁안이 무사히 살아남을 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백악관측은 이렇게 장담한다. “케네디가 수용했는데 펠로시가 못하겠습니까” 친이민 민주당 진보파 기수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앞장서 마련한 법안이니 민주당이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도 문제없어야 한다는 압력성 낙관론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상원 본회의에서 사흘째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합의안의 현재 입지는 별로 편안하지 못하다. ‘너도나도 반대’가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공화당 보수파도 반대하고 민주당 진보파도 반대한다. 업계도 반대하고 노조도 반대한다. 이민권익단체도 반대하고 이민반대단체도 반대한다. 합법이민자도 반발하고 불법이민자도 불평한다.
상원 합의안은 정말 어렵게 마련되었다. 양당의원 12명과 국토안보부 장관, 상무부 장관이 지난 3개월 가까이 집중 논의와 타협을 거듭한 끝에 아슬아슬하게 태어났다. 민주당은 ‘불법체류자 사면’을 사수했고 공화당은 오랜 숙원인 ‘취업능력 우대’라는 이민정책 방향전환을 얻어냈다. 그 결과로 양당의원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선거구에서 ‘배신자’로 낙인까지 찍혔다. ‘살을 도려내는’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각계각층 이해집단의 반대는 각오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의 정도가 예상보다 심하다. 38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법안을 다 읽어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세가지 조항에 대한 반발이 특히 거세다. 불체자 신분합법화와 임시초청노동자 프로, 그리고 취업능력을 평가하는 포인트제 도입에 따른 가족이민 축소다.
지난주 합의안 내용이 나오자마자 “범법자를 포상하는 사면”이라는 강경보수 쪽의 요란스런 아우성을 선두로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란 이민단체의 반발이 나왔고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업계의 비판이 잇달았다.
정치가들은 ‘사면’이라는 단어에 감전된듯 펄쩍 뛰지만 여론은 다르다. 80%가 사면이든 아니든 불체자를 빨리 구제하라고 촉구한다. 지금까지 이민개혁안의 가장 큰 쟁점은 1,200만에 이르는 기존 불체자 대책이었다. 못본척 외면한채 방치하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고 강경론자들의 소원대로 전원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들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온 미경제가 흔들릴 것이다. 유일한 현실적 대책은 신분합법화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솔직히 ‘사면’이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어휘가 아니라 비용등 조건이다. 이번 상원안은 2007년1월 이전에 입국하여 열심히 일하고 법 잘 지키고 벌금내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는 불체자들에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법안시행 6개월후부터 국토안보부에 등록하고 합법적으로 일하면서 Z비자를 신청하는데 벌금과 수수료 합해 4인가족의 경우 9천달러까지 든다. 4년후 Z비자 연장할 때 다시 4천달러를 내고 8년후 영주권신청이 가능해지면 가장이 4천달러 벌금을 납부하고 본국에 나갔다 와야 한다.
대부분 저소득층인 불체자들에겐 가혹할만큼 무거운 부담이다. 또 티화나 정도라면 모를까, 지구 반바퀴를 돌아 서울까지 갔다오는 길도 너무 멀다. 그러나 깜깜했던 동굴에 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아무리 멀고 험해도 길은 길이다.
매년 40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임시 초청하는 프로자체를 반대하는 업주들은 드물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노동력의 불안정성을 조장하는 비효율적이고 실행이 어려운 조건들이다. 2년 근무하고 돌아가 1년후 다시 입국해 2년 근무하고 또 돌아갔다가…도대체 누구 놀리는 장난하느냐는 극언까지 나오고 있다. 노조에선 권리없는 저임금 노동자의 하층계급이 생긴다고 반대하고 이민단체에선 영주권 취득 기회를 안주니 또 다른 불체자 집단을 양산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가족결합 보다 취업능력을 우선하는 이민쿼터 변경도 사방에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성인자녀와 형제자매 초청의 길이 막힌 합법이민자들은 부당하다고 반발하지만 고학력 전문기술 인력의 이민이 늘어난다고 업계가 무조건 환영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건 컴퓨터 엔지니어인데 철학박사에게 이민우선권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첫주까지 상원에선 온갖 불만과 반대가 부딪치면서 검토와 좌절과 설득을 거쳐 이민개혁안의 군데군데를 고치고 다듬어갈 것이다. 이미 어제 임시초청노동자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수정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되어 손질이 가해졌다. 한인사회가 신경쓰는 가족초청 조항도 수정 대상이고 불체자 사면조건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이민법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그 환상에 사로잡혀 이번에도 개혁안을 사장시킬까 두렵기 때문이다. 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거센 반대를 지켜보면서도 통과를 낙관했다. “이번에 통과 못시키면 앞으로 2년내엔 못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있습니다. 그것이 이번 합의안을 지탱시켜주는 힘이지요”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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