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의 대통령을 뽑고, 시카고에서는 한인회장을 뽑는 해이다. 지난 17일 입후보자 등록증을 받은 기호 1번 서정일, 기호 2번 정종하 두 후보는 즉시 유세에 돌입 했다. 어깨에 띠를 두르고 행사장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서 후보자와 지지자들이 전단을 나눠주는 이채로운 모습을 오랜만에 접하게 되었다.
투표일은 내달 2일(토)이다. 그러고 보니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은 불과 한 주일 정도 남았다. 좀 촉박한 감은 들지만, 한인사회가 너무 긴 기간을 선거 열풍에 빠지게 되면 그 소모전으로 인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고 볼 때, 오히려 단기전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28대 한인회장을 뽑는 이번선거는 김길남씨와 김종갑씨의 대결 이래, 14년만의 경선이다. 44년 전인 1963년 시카고에 역사적인 첫 한인회가 출범한 이래, 경선을 통한 회장은 8명뿐 이었으며, 이번이 9번째 경선 한인회장을 선출하는 선거다. 경선은 한인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 시키고 대표성과 위상을 높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한인회장 선출 방식이 직선이냐? 간선이냐? 추대 형식의 무투표냐?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논의의 여지는 많지만, 그동안 시카고 한인회장 선거가 무투표로 싱겁게 끝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한인회 활성화에 저해 요인이었던 점을 상기할 때, 오랜만에 이번 경선은 동포사회 일체감을 위해서도 자못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선이 가능했던 이유는 선거 관리 위원회와 두 후보의 유연성과 겸양의 미덕 때문이다. 그리고 27대의 갈등과 상처를 반복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과 노력이 주효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선관위(위원장 홍순완)는 처음부터 권익, 단결, 참여를 호소하면서 확고한‘공명선거’ 의지를 밝혔다. 또 동포사회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인 만큼 한인회의 위상을 향상 시키고 책임감을 부여하는 선거를 창출하겠다는 확고한 포부를 밝혔으며, 마지막으로 선거를 잔치마당이 되게 하자는 멋진 제의를 했다. 무엇보다도 후보 양측이‘부회장 후보의 5년 이상 연속 거주자’에 대한 유권해석과, ‘확인 안된 상태에서 한인회비 3년 연속 납부’ 건에 대해, 판을 깨는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유연성을 보여준 것이 결국 경선을 불러온 것이다.
이번선거는 경선 말고도 몇가지 특기할 점이 있다. 한인사회 리더십과 관련, 세대교체를 들 수 있다. 양측 후보 모두가 60년대 생인 40대다. 양측 회장단 역시 젊은 세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인사회 리더십이 1세대로부터 1.5세대로 서서히 옮겨 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돌아보면 1세대 중심의 한인회장 선거를 28번 이어오는 동안 부끄러운 점도 많았다. 향응 금품 선거, 회비 대납, 버스 대량 동원이 공공연히 자행됐다. 그러다 보니 타락선거, 부정선거, 흑색선전, 반정부 친정부, 지역감정, 폭력 등등 한국 선거의 병폐 메뉴들이 그대로 등장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영어 구사 능력도 짧다보니 주류사회 보다 한국 지향적인 성향을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후유증이 심해 어김없이 선거 무효 소송,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정 투쟁으로 번지는 사태로까지 발전, 한인사회를 분열시켰다. 이 현상은 시카고뿐만 아니라 LA,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 동포사회의 고질적인 공통 현상으로 우리의 자치능력을 의심케 했다.
한인회는 한인회장을 위한 기구가 아니다. 몇몇 인사들만의 단체도 아니다. 고향을 떠나온 동포 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필요에 의해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우리의 대표 창구가 바로 한인회다. 미국이나 한국정부가 강요해서 생긴 조직도 아니다. 따라서 돈이 생기는 곳도 아니고 쥐꼬리만한 권력이 있는 자리도 아니다. 사심 없이 일하고도 욕까지 먹는 섭섭함을 인내해야 할 봉사하는 위치다.
이제 우리는 ‘준비된 일꾼 실천하는 봉사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찌감치 출마의 기선을 잡은 서정일 후보와 ‘변혁과 화합을 위한 일꾼’임을 강조하고 후발 주자로 도전장을 낸 정종하, 두 후보 중 누구를 뽑아야 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한인회장 경선은 우리 공동체의 흔치 않은 신명나는 잔치다. 젊은 두 후보에게 우리는 아무쪼록 선전을 부탁하며, 잡음과 후유증이 없는 정정당당한 선거를 치르기를 바란다. 아울러 유권자들의 많은 참여와 선거 과정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을 다짐하자. 시카고가 다른 동포사회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이 부러워 할 모범을 남기자. 이번 선거가 우리 이민사에 변화를 가져올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합심하여 선을 이루는 한마당 축제의 장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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