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심리적 보살핌이 더 중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게 하고,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무딘 뿌리를 일깨운다.” T.S. Eliot (1888~1965)의 ‘황무지’에 나오는 이 시 구절처럼, 4월은 우리들에게 잔인하다. 1992년의 4.29 LA폭동, 8년 전 4.20일 콜로라도 주의 컬럼바인 고교 총기 사건, 또 전 세계가 경악했던 최근 32명의 사망자를 낸 버지니아텍의 무차별 난사사건도 지난 4.16일에 일어났다. 그리고 대다수 1세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4.19의 기억이 생생하다.
필자는 조승희군 사건은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사건이므로,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잣대로 잴 수 없다고 본다. 정상인이라면, 전쟁터가 아닌 이상, 그런 살생행위를 저지를 수 없다. 맹자가 ‘성선설’에서 주장했듯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군의 범행 사전계획 흔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조울증 환자의 경우엔, 정상적인 생활과 우울증 증세의 생활이 간헐적으로 되풀이되는 만큼, 노벨 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Princeton 대학 교수 John Nash 박사처럼 ‘망상’에 시달리나 지극히 능률적인 사람도 있으며, Scott Fitzgerald의 작품 ‘Tender Is the Night’의 여주인공처럼, 치료 후에 다소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둘째, 한인들은 육체적인 병은 쉽게 인정하지만, 정신적인 병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민 1세들 대부분이 정신적인 병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 결과, 정신과 의사로부터 처방법을 조속히 구하지 않은 데서 이번과 같은 큰 불행이 야기됐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다같이 조울증을 앓았어도, 병의 징후는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개개인의 성격과 성장과정의 주위환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조승희군이 한국에서 자랐다면, 조울증을 앓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며, 설사 그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자살을 했을지언정 이번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은 인명경시 사상과 총기 구입이 용이한 미국사회의 특수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컴퓨터 게임 등, 각종 매스미디어에 자녀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힘든 이민생활의 후유증으로 풀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한인들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은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것만으로 부모 역할이 끝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번 사건으로 한인 부모들은 정신적·심리적 보살핌이 더 없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하겠다.
다섯째, 한인 이민자들은 한국 문화의 집단의식적인 가치관 때문에 조승희군 사건이 마치 한인 커뮤니티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본다. 이는 이민 1세적인 생각이다.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한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승희는 정신질환을 앓았던 한 개인이었을 뿐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권한다. 첫째, 자녀들과 보다 많은 시간과 대화를 갖도록 노력하자. 가정이 따뜻한 보호막이 되기 위해서, 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둘째, 교사들의 감독 하에 실시되는 학교의 각종 스포츠, 봉사 활동이나 각 지역사회의 조직된 활동(스포츠, 보이스카웃 등)에 참가시켜, 사회적인 능력과 소속감을 기르도록 한다. 학교생활과 지역사회에 올바로 적응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외톨이로 남지 않는 방법을 터득시키기 위해서다. 셋째, 교회에 정기적으로 보내어 한인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길러 주도록 한다. 같은 또래들과 자주 어울림으로써 동류항처럼 느끼고, 정신적인 유대감을 갖도록 돕기 위해서다. 넷째, 가정이나 집밖에서 부모의 일을 돕게 하고, 부모들이 힘들어 일하는 모습을 목격도록 함으로써, 경제관념이 투철하게 자라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4월에는 온 가족이 ‘구름 꽃 피는 언덕’에 앉아 아름다운 ‘사월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클라라 박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