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학부모들 중 정신과 마음이 건강한 자녀를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공부 1등에 쏠린 관심과 같은 수준의 정성이 정신건강 살피기에도 필요하다.
건강한 정신건강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노력할 때 이뤄진다. 인성교육을 통한 건전한 정신 상태는 행복한 삶으로 연결된다.
한인학생들 ‘우등생’ 많지만 ‘모범생’은…
형제도 없고 부모님은 맞벌이 바쁘고
대화상대 부족 스트레스 쌓이다 보면 위험
#사례 1
의사지망생 명문대 김양
갑자기 휴학후 두문불출
“부모님이 1등만 강요”
#사례 2
주위서 모범생 칭찬 A군
“1등만 강요 세상이 싫어”
최근 “정말 죽고싶다”눈물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으로 발생한 파급 효과들 중 하나는 자녀 교육의 현주소를 되돌아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학부모들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사건 발생 1개월이 지나며 한인들의 기억에서 벌써부터 잊혀져가는 정신적 건강의 중요함에 대한 다시 진단하고 우리 주변 손닿는 곳에 있는 전문기관을 소개한다.
■모범생은 없고 우등생만 있다
요즘 우등생들중에는 1세 학부모들의 학창시절 귀가 따갑게 들어오던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해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전언이다. 공부는 잘하는데 결코 다른 학생의 모범이 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는 것이다.
UC계열 대학들 중에서 최고 명문으로 알려진 대학에 다니는 김모(19)양은 두 달에 1~2회 정도 주말에만 집에 들른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열중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그런데 지난 쿼터가 종결된 후에는 ‘휴학’이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김양의 학업성적을 고된 이민생활의 보상으로 생각했던 부모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김양은 친구들에게 따르면 김양은 요즘 집에서 두문불출한다. 처음에는 협박, 달래기에 나섰던 부모가 이제는 체념단계에 접어들며 딸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찾아가는 친구를 붙잡고 “엄마 아빠는 항상 1등만 하라고 한다. 자신들은 낙오자면서”라는 식의 말만 되풀이한다고 한다.
한 한인 의사를 찾아오는 A모(15)군은 다들 모범생이라고 불렀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 따라 교회에도 잘 나갔다. 그런 김군이 최근 “죽고 싶다”는 말을 동생에게 했고, 동생은 이를 부모에게 일러바쳤다. 한인 의사에 따르면 엄마 손에 끌려 온 A군은 “1등만 해야 하는 세상이 싫다. 또 1등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써야하는 것이 싫다. 정말 죽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의사는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모범생이지만 정신건강이 좋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한인학생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허점 많은 이민생활
한인 2세들은 1세 부모들이 자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한다.
집안에 형제가 겨우 1명 정도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형제가 있더라도 각자 바쁜 일정 때문에 어울려 놀거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특히 부모가 맞벌이를 해야만 생활을 할 수 있는 미국사회 실정 때문에 방과 후 집에 와도 혼자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엄마가 집에 있다고 해도 학교 끝난 후에는 곧바로 학원이나 레슨을 받으러 가야 하는 사교육 열풍 탓에 대화할 여유가 없다.
자녀와 부모가 시시콜콜, 이러쿵저러쿵, 정감 나게 대화할 수 있는 공통 언어가 없는 것도 많은 이민가정의 현실이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사고하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영어를 잘 못하는 1세 부모와의 대화는 더 단절된다. 인종별 소득수준 차이, 백인학생이 편애 받는 것 같은 느낌,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의 차이 등 자녀가 답답해하는 사안을 두고 속 시원히 대화를 할 수 있는 부모는 극소수다.
한 교육가는 “처음 교사 생활을 할 때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부모, 자녀 간 대화가 단절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은 3, 4학년만 돼도 엄마 아빠와 말을 하지 않으려는 애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대답을 가만히 분석하면 나는 한국어를 못하고, 부모는 영어를 못하니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건강치 못한 정신은‘시한폭탄’
한인가정 공부만 강조, 인성교육 등한시
’건전한 정신’ 유지 위해선 예방이 중요
비영리 상담치료센터 등 이용땐 큰 도움
■관심 없는 정신건강과 가정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자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부모와 의사소통이 안 돼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다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이때 분노, 좌절의 감정을 타인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푸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폭력적 방법에 매달리는 아이들은 공부 잘 하는 애들을 모두 죽이고 싶다는 적개심을 드러내고, 결국은 실천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한 의사는 “몸 건강과 명문대 진학에는 관심이 많은 한인들이 정신건강과 가정교육은 등한시 한다”고 지적했다. 몸에 좋다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고, 자녀를 명문대에 집어넣는 것에는 큰 열성을 보이지만 막상 건강한 몸의 바탕이 되는 정신건강과 학문 습득의 기초가 되는 가정교육에는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이 의사는 문제를 방치했다가 큰 일이 터지면 가능성을 조기에 예방하지 못한 부모들은 공범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상태 향상에는 가정교육이 동반돼야 하며, 특히 이를 위해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삐뚤어진 관념을 바로 잡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정신건강은 환청을 듣거나 헛것을 보는 정신질환과 다르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얻은 기분 장애는 나쁜 정신건강 상태란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건전한 정신건강을 유지하려면 비타민을 복용하고 건강식을 하며 몸 건강을 챙기는 것과 같이 예방법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좋은 정신건강을 갖게 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자녀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바라는지 항상 살피고, 의도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프로그램
비영리 기관인 아태상담치료센터(Asian Pacific Counseling and Treatment Center·APCTC)는 정신건강에 관심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는 한인들에게 도움을 제공한다. 요청이 있으면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 자격을 갖춘 카운슬러들이 가정, 학교로 직접 찾아가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LA카운티 정신건강국에서 지원받는 정신상담 기관인 APCTC는 어른에서부터 아이들까지 개인, 가정, 집단 상담을 제공하고 학교 내 상담과 가정 방문, 부모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해 아시안 커뮤니티를 돕자는 방침 아래 운영되고 있다.
좋은 사례는 코헹가 초등학교에서 매주 진행되고 있는 ‘패런팅’ 클래스. 매주 화요일 오전 참석한 한인 학부모들을 상대로 자녀가 감정변화를 일으킬 때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는 방법, 자녀가 감춰두고 있는 가슴 속 시한폭탄을 발견하는 기술 등 광범위한 분야가 다뤄진다. 특히 자녀가 건전한 정신건강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부모 역할에 중점이 두어진다.
코헹가 초등학교 측은 한인 패런팅 클래스를 ‘Ports of Entry’라고 부른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건전한 정신건강을 이루는 입구라는 것이다.
이 학교 교장은 “이민자 가정은 어려움에 직면해도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마땅찮고, 학교는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며 “아태상담치료센터의 패런팅 클래스는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테레사 최씨는 “처음에는 참석을 꺼려하던 학부모들의 반응이 이제는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건 이후에는 한인 학부모를 상대로 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무게가 더 실렸다. APTC 샌퍼난도 밸리 사무실의 권효선 프로그램 매니저는 “최근 기사화된 여러 가지 극단적인 상황에서 보이듯이 개인의 정신 건강은 가정과 나아가서는 전체 사회의 안정과 안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한인들이 모이는 곳이면 언제든지 달려가 정보를 제공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권 매니저에 따르면 집중 공략 타깃은 한인 학부모회와 교회들. 최근에는 “독특한 문화, 사회적 기준과 주류사회에의 적응이라는 거대한 과제로 인해 많은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는 한인 등 아시아계 문제 해결에 학부모회 및 교회가 적극 나서주기를 서면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권 매니저는 한인 교회들에 보낸 편지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교회를 방문해 학령기 아동이 있는 가정의 부모에게 아동심리 및 교육방법, 그리고 학교 시스템의 이해를 돕는 세미나 개최를 제의했다.
‘어린이를 키우는 한인 가정’에 제공되는 ‘우리 가족 돌보기’도 APCTC에서 시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대상 자격이 되는 가정에 종합적인 ‘사회사업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도움 요청이 있을 때 우선 해당 가정의 필요와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설문조사와 보호자 인터뷰가 진행된다. 이후, 인터뷰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부모와 자녀에게 ‘맞춤형 상담’이 제공된다. 수혜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집, 학교 등 수혜자가 원하는 장소로 담당자가 직접 찾아간다. 제공 서비스에는 개인, 가족, 소그룹 위주의 상담과 아이의 품행 때문에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료 통역과의 학교 방문 등이 포함돼 있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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