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세계 곳곳에 사는 중국인들의 거리는 대개 비슷비슷하다. 우선 좁은 골목에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이 많아 복잡하기 그지없다. 가게마다 간판도 울긋불긋 요란하고 길거리는 시끄럽고 어지럽다.
뉴욕의 경우 맨하탄의 차이나타운, 플러싱, 브루클린의 8애비뉴 등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이 모두 그렇다. 미국내 다른 도시의 차이나타운이나 중국 본토 도시의 뒷골목, 홍콩도 마찬가지이고 중국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상해의 남경동로도 예외는 아니다.이같은 차이나타운의 특성은 중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일본인이 밀집해 사는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서울의 골목마다 가게의 간판이 즐비하고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을 보면 차이나타운이나 별 차이가 없다. 플러싱의 유니온 상가에 어지럽게 나붙은 간판들은 서울의 뒷골목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미국인들의 눈에 이런 차이나타운이나 한인상가가 난장판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이런 문제점에 대해 또 다시 말썽이 있었다. 플러싱 162가 일대의 한인 유흥업소들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민들이 문제를 삼고 나선 것이다. 지역 정치인이 이 문제를 거론하고 지역 신문이 보도하여 이슈로 만들고 있다. 한인들이 소란을 피우고 어지럽히며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따지자면 중국인 지역이 더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인들의 행동에 대한 잘 잘못을 떠나서 걸핏하면 한인들이 타겟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차이나타운과 코리아타운의 구조적 차이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은 노변에 중국인 상가가 들어서고 그 배후의 주택가에는 중국인의 주거지가 들어차는 완전한 중국인 지역이다. 중국인들은 한인들 보다 뒤늦게 플러싱지역에 유입되기 시작했으나 현재는 이 지역을 완전한 차이나타운으로 변모시켰다. 플러싱의 중심지인 노던 블러바드와 샌포드 애비뉴 사이, 메인 스트릿과 칼리지포인트 블러바드 사이는 중국의 어느 도시를 방불케 하는 중국인 지역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인들은 노던 블러바드를 따라 플러싱에서 베이사이드를 거쳐 리틀넥까지 길게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주변지역은 한인들이 밀집 거주하기는 하지만 한인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민족에 섞여 살고 있는 다민족 복합 거주지역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플러싱 한인타운이라기 보다는 한인 밀집거주지역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그런데 이 한인밀집지역에 살고 있는 다른 주민들이 문제이다. 미국에서는 주민들의 신고를 처리하는데 행정의 최우선 순위를 둔다. 범죄신고 뿐 아니라 불평신고가 들어오면 관계기관이 즉각 행동한다. 웬만한 문제가 있어도 주민이나 이해관계자의 신고가 없으면 그냥 넘어가지만 신
고가 있으면 관계당국의 조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인이 아닌 미국인이 한인들의 행패를 문제삼아 불평신고를 하는데 한인들이 타겟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맨하탄이나 플러싱, 브루클린 등지의 차이나타운의 경우, 문제로 삼을만한 일들이 한인밀집지역 보다도 더 많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차이나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인들이므로 그들끼리는 그런 문제점을 모두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질을 들먹이며 구태여 신고까지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은 다른 민족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이다. 라틴계가 모여사는 퀸즈의 잭슨하잇츠나 맨하탄 할렘, 브루클린과 브롱스의 흑인지역은 한인들이 보기에도 문제가 많은 지역이지만 같은 주민들끼리 삶의 질을 따져서 신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인들이 차이나타운과 같은 한인타운을 형성하지 못한 것은 한인 인구가 중국인에 비해 적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 곳에 모여 살거나 뭉치기를 기피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인들은 자기만의 독특성과 특수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한인들이 많이 이사해 오면 오히려 이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플러싱 지역에 한인들이 살기 좋은 여건이 갖추어져 많은 한인들이 모여들자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인들이 롱아일랜드나 뉴저지 지역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한인타운이 형성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인들이 차이나타운과 같은 완전한 한인타운을 만들지 못하고 다른 민족과 섞여서 살 수밖에 없다면 중국계처럼 정치적, 사회적 힘을 결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옳던 그르던 미국 주민들의 기준에 맞추어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한인타운의 한계가 바로 이것이며 진정한 한인타운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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