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면 한 귀퉁이 1단짜리 짤막한 보도가 눈길을 끈다. 지난 주말 바닷가 절벽에서 뛰어내린 40대 한인남성의 투신자살 기사다. 십중팔구 사업실패로 좌절한 가장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1억달러 복권당첨에 따른 ‘메가 돈벼락’이라는 신나는 기사 아래 조그맣게 붙어있어 그렇기도 하여 다시 눈길이 간다. 그보다 열흘 전엔 30대 한인남성이 자신의 차 안에서 분신자살로 숨졌었다. 실직한 가장이었다.
조승희를 제외하고도 금년 들어 한인들의 자살소식은 한 달도 거른 적이 없었다. 1월엔 30대 가장이 자신의 차고 안에서 목을 매 자살했고 2월엔 조기유학 여고생이 기숙사에서 자살했으며 타운내 세탁소 주인이 권총자살로 숨진 3월엔 70대 할머니가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4월엔 한인유학생이 공원 호수가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신문에 보도된 것 중에서 얼핏 눈에 뜨이는 것만 추려도 이렇게 한참이다.
이처럼 간단하게 처리된 자살기사는 관심도 못 끌고 속보도 전해지지 않은채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들이 얼마나 무섭게 빚에 쪼들렸는지, 대학진학 스트레스가 젊은 꿈을 어떻게 병들게 했는지, 어떤 불화가 연약한 노인을 투신으로 몰고 갔는지를 우리는 결국 알 수가 없다.
또 죽음을 감행한 순간의 심정을, 죽어본 적 없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 길도 없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의 절박한 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정말 죽고 싶었던’ 좌절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드물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높게 외쳐대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더 많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에 대한 실망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이 각자 생의 모든 단계에서 수시로 부딪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거나 무너지게 하는 차이는 실망을 다스리는 지혜에서 온다. 어떤 좌절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능력이다.
실망은 실패에 대한 각자의 느낌이고 태도다. 무조건의 낙관주의가 현실을 변화시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모든 실패가 남기는 상처의 이면엔 무지개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색칠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빛깔이 살아나지 않는 무지개다.
실패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엇보다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니니까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를 절망의 막다른 길이 아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방향 바꾸기, 혹은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업실패나 가정불화, 실연이나 사고 등 구체적 불행에 세게 얻어맞지 않아도 대부분의 우리는 특히 중년에 접어들면서 어느날 문득 회의에 부딪치게 된다.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는 실망감을 처음으로 섬뜩하게 느끼는 순간일 수도 있다. 세상은 성공만을 사랑하고 남들은 다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뒤쳐진게 아닌가. 왜 성공은 나만 비껴가는 것일까…소외감에 쓸쓸해지고, 밀려난 대열에 다시는 합류하지 못할 것 같은 암담함에 좌절한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고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한다.
그러나 현명하다면 이때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특권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해야한다. 실패한 것보다 이루어 놓은 것을 세기 시작할 때다. 남에게는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관대해지면서 순간순간을 누리며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중년을 넘어 노년에 들어서면 삶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평화로워진다. 심리학자 조이스 브라더스 박사의 조언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절망한 사람들을 격려한 것은 헬런 켈러였다. 그런데 다른 문도 평소 준비해 두어야 쉽게 열린다.
사고나 죽음에 대비하여 보험을 들듯이 사람의 관계에도 안전망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어느 한가지에 의존하지 않고 일과 가족, 친구와 취미에 골고루 분배하는 균형잡힌 생활은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망을 객관적으로 다스리고, 실패를 도전의 기회로 삼고, 불행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해도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패배의 어두운 기억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신음할 때 실망과 후회,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사람이 진심어린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이 기억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실패가 우리를 성숙케 하는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푸쉬킨의 시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마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장 즐겨 외울 수 있는 시 중 하나일 것이다. ‘…슬픔의 날이 지나면/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요즘의 창밖은 천지가 연두빛으로 물든 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루지 못한 꿈에 휘둘려 실망하고 좌절하기엔 봄이 너무 아름답다. 10대나 20대만이 아니다. 60대, 70대도 실패를 딛고 힘차게 바운스할 수 있는 생명의 계절이다.
박 록 / 주 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