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Given: Talking of and Around Photographs of Arab Women
뒤틀림의 정치학, 혹은 모방과 원전의 역학관계-SF Camerawork 사진전
1. 모방의 논리학과 제 3 세계의 문화읽기
호미 바바 (Homi K. Bhabha)는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모방의 논리학’ 즉, ‘시뮬라르크’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나의 문화가 상이한 다른 문화와 접촉할 때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 모방의 문제 속에는 원전과 모방 문화 사이에 개입된 역학관계라는 무척 재미난 힘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 문화는 피지배국가의 문화를 뿌리부터 잠식하고 식인 상어처럼 집어 삼킨다. 피지배국가의 전통 문화는 제국주의 국가의 문화를 하나의 원전으로 삼아 해석하고 모방하여 자기 문화를 개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피지배국가의 문화적 모방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모방된 문화 속에는 엄연히 차이, 틈, 왜곡, 오독이 존재하며, 이 오독과 왜곡의 틈새로부터 식민지의 모방된 문화를 더욱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 힘이 분출되는 것이다. 결국, 가장 강렬한 문화적 동일화의 행위가 모방의 대상이자 원전인 지배문화와 가장 차별적인 문화를 탄생시킨다는 말이 된다.
바바는, 이러한 함수관계를 일러, “피식민지인들의 모방은 오독과 왜곡을 통해 식민지배자들의 정전의 권위를 조롱하고 해체하는 정치적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2. 아랍여인의 초상
SF Camerawork에서 개최된 ‘Not Given: Talking of and Around Photographs of Arab Women’은, 아랍 세계의 지배적 담론화한 서구문화와 서구인들이 바라보는 제 3 세계의 문화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식의 이미지를 전복하고 정전의 권위에 대항하는 탈식민주의의 과제를 재현하고 있다.
아트 히스토리안 도라 브라운(Dora Brown)과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자벨 마쑤(Isabelle Massu)가 기획한 ‘Not Given: Talking of and Around Photographs of Arab Women’은 베이루트 소재 ‘아랍 이미지 파운데이션: Arab Image Foundation’의 소장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 현대 아랍 세계의 문화적 초상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진전에 내걸린 사진들이 모두 차도르를 쓰거나, 검은 옷을 걸친 여인들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그곳을 찾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진들은 하나같이 서구의 문화적 이미지를 차용하였지만 그것을 뒤틀고, 전복하는 방식을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에는 영국 신사복으로 성장한 젊은 레바논 여인의 사진이 있는가 하면, 크로스 드레서들의 사진들이 있고, 맨 어깨를 드러낸 속옷차림의 여인이 드러누워 관객을 바라보는, 문화적 자의식에 충만한 사진들로 가득차 있다.
사진의 대부분이 차용하고 있는 1940년대 헐리우드 글래머 걸(glamour girl)과 머티리얼 걸(material girl) 의 포즈라든가, 크로스 젠더 이미지 등은 모두 서구 문화의 아이콘을 비틀고 전복한 작업이다. 서구 여인들보다 더 서구적인 사진 속에서 관객을 주시하는 여성들은, 그럼에도 아랍 여인이라는 그들의 정체성 또한 드러내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네글리제를 입고 관객을 쏘아보는 여인은 푸른 눈과 금발 대신 검은 눈동자와 반짝이는 흑발을 지니고 있으며, 조앤 크로포드를 닮은 아랍여인은 니트로 만든 차도르를 쓰고 있다.
이들의 사진은 하나같이 서구문화의 정전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고 있지만, 더불어 그것을 전복하고 왜곡한다. 그것은 일종의 의도된 문화적 뒤틀림이다.
3. 탈식민인가? 모방 놀이인가?
‘Not Given: Talking of and Around Photographs of Arab Women’은 서구라는 정전, 정확히 말해 할리우드의 영상 문법을 차용함으로써 서구 문화의 권위를 조롱하고 해체하는 튀틀림과 전복의 전략으로 아랍 세계를 서술한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질문해 보자. 만약 이 사진들이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서구 문화를 모방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왜곡과 비틀림을 통해 서구문화를 비판하고, 자문화와 서구문화와의 차이점을 강조하는데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또 다른 부차적 문제는 없는가?
이것은 역으로, 서구 문화가 완전하게 포섭할 수 없는 제 3 세계 문화 특유의 오독과 뒤틀림이 존재하며, 이 제 3의 공간이 탈식민 담론의 정체성을 구현한다고 간주할지라도 여전히 남는 문제이다.
어떤 측면에서, 서구문화와 제 3 세계의 문화가 혼효된 이 최신 혼종성은 제 3 세계인의 문화적 자의식이라는 검열에 의해 이루어진 작업이므로 가장 제 3 세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무엇인가?
제 3 세계와 서구문화가 빚어낸 혼종성은 어쩌면, 제 3세계라는 피지배국 내부의 누적된 문화적 차이점을 지워버리고, 이 문화적 누더기들을 무차별적으로 봉합시킬 수 있다는 사실, 지배와 피지배의 국제 역학 관계 속에서 평등한 문화적 혼종이란 한낮 꿈일 뿐이라는 사실이 그러하다. 그것은 어쩌면, 단지 아름다운 꿈 속의 결합일 뿐,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슬픈 허상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아웃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라는 영화를 통해 아프리카라는 대륙을 만난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세렌게티 속에서 타자화되어 있는 마사이족을 볼 뿐이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백인들의 세렌게티 속에서, 마사이족은 언제나 조용히 화면의 가장자리에 서서 백인들의 사랑놀음을 관망할 뿐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저 광활한 대륙의 주인인 마사이족을 철저히 타자화하고 방치한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속 두 주인공의 사랑은 AMC 21에 앉아 팝콘과 콜라를 마시며 영화를 감상하는 서구인들에게나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이다. 백인들의 무작위 플랜테이션으로 황폐화한 땅과, 계속되는 기아와 무너진 전통문화라는 무거운 현실이란, 오직 화면의 귀퉁이에 내버려진 마사이족의 숙제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미스 소니언에서 그 많은 사진들 속에 구색을 맞추어 살짝 끼워 놓은 한국전쟁 당시의 사진들을 볼 때마다, 반가움보다는 약간의 불편함을 먼저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영화 기자>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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