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대학 재정보조로 풀리는 금액은 어마어마하다. 연방정부만 해도 약 1,000억 달러를 매년 재정보조금으로 내 놓지만 국가살림의 중추인 중산층은 별다른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다.
자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원비 외에는 다른 학비 걱정을 하지 않던데 익숙한 학부모들에게 대학 학자금은 여만 저만한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부모가 하는 학비 걱정에 자녀 또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저소득층엔 갖가지 지원 비해
연소득 10만달러 안팎 가정엔
무늬만 재정보조, 학비조달 허덕
돈 걱정에 1순위대학 포기도
갈수록 쪼들리는 중산층의 살림살이에 ‘대학 학비’란 또다른 경제적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소득은 정체돼 있거나 불안정한 반면 생활비 지출은 늘어나고, 특히 자비로 감당해야 하는 자녀 대학 교육비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저소득층에는 갖가지 지원을 제공하면서도 중산층에 대해서만은 인색하다. 자립 능력을 갖춘 중산층이라는 이유로 수만달러의 학비 마련에도 홀로서기를 강요한다. 자녀 고등학교 재학 때까지 사교육비 외 다른 학비 걱정을 하지 않던 가정들이 직면한 고민들을 진단한다.
■빛깔만 좋은 재정보조
‘월급쟁이’ 중산층에게 주어지는 재정보조의 규모는 ‘약 올리는’ 수준이다. 무상 지원금(grant)보다 부모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몫(예상되는 가족분담금·EFC)이 훨씬 커 재정보조란 이름이 무색하다.
이번 가을학기 큰 아들을 한 UC계열 대학에 보내는 A(45)씨는 최근 학교 측이 우송한 재정보조 명세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수업료, 기숙사 비용 등 2만4,000여달러의 1년 학비 중 A씨가 부담해야 될 몫이 2만여달러에 가깝게 산출됐기 때문이다.
학교 재정보조 사무실에 문의한 결과 A씨 부부의 지난해 연소득이 11만달러가 넘고 소유한 주택의 에퀴티 때문에 재정보조를 4,000달러 이상 제공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A씨는 아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융자 또는 ‘홈 에퀴티 라인 오브 크레딧’을 얻을 예정이다.
동부 한 아이비리그 대학에 큰 딸을 진학시키는 B씨 부부가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1만2,000달러다. 연 소득 12만달러 중 10%를 자녀 학비로 지출해야 한다. 다행히 큰 딸이 공부를 잘해 연 4만5,000달러의 대학 학비 중 74% 정도를 장학금과 무료 재정보조로 충당했다. 하지만 학부모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B씨는 “부모 몫으로 돌아온 금액을 월 페이먼트로 나눠낼 예정”이라며 “작은 아이들 3명이 수년 내 연달아 대학에 진학할 때가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커미션 직종 종사 중산층이나 자영업자는 학비 재정보조를 받는데 유리하다.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일반 월급쟁이보다 ‘융통성’ 있는 세금보고 옵션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실소득보다 아주 낮은 수준에서 세금보고를 해온 자영업자 C씨는 이번 가을 아들의 한 UC계열 대학 입학에도 학비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4인 가족 연 소득이 2만5,000달러로 보고된 세금보고서를 토대로 재정보조를 신청했더니 가족 부담 몫이 ‘0’으로 산출됐다. 처음에는 학교 측이 보강 서류를 요구하는 등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단골 CPA가 작성해 준 서류를 검토한 후에는 문제 삼지 않았다.
■가족 분담금
대학 재정보조 사무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학은 의무교육이 아닌 만큼 학비는 개인이 책임질 사안이다. 또 학비 재정보조(financial aid)는 자비로 충당할 수 없는 학비 일부를 ‘원조’하는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학자금 조달의 고민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치유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학비 조달의 일차 책임은 교육혜택을 직접 입는 학생 본인에게 있다.
24세 미만의 신입생의 재정보조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부모, 보호자, 또는 학생이 소유한 ‘부의 규모’다. 이는 소유 자산 규모와 생활비와 납세액을 공제한 뒤 산출되는 총소득이다. 부유한 가정은 학비를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고, 가난한 가정은 여러 형태의 무상지원 또는 저리의 융자금 지원을 받게 된다.
중산층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가족 분담금 규모다. 총소득이 동일한 가정이라도 자녀 숫자, 생활비 지출 및 자산 규모 등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각 교육기관들은 가족 분담금 규모를 대략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웹사이트들을 운영하고 있다. SAT 등 입학시험을 주관하는 칼리지 보드에는 가족 분담금 계산 사이트가 있다. 주소는 ‘http://apps.collegeboard. com/fincalc/efc_welcome.jsp?noload=Y’다.
통상 중산층이 자비로 내놓아야 하는 가족 분담금의 수준은 학비의 50~70%선이다. 지난 2005~06년 학기에 UC샌디에고의 3,434명 신입생들 중 2,737명이 재정보조를 신청했다. 이들 중 1,876명이 자격자로 판정됐지만 실제 재정보조를 받은 학생은 1,759명이었고, 학비 전액을 무상 재정보조로 충당한 학생은 49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평균 1만3,497달러의 재정보조(무상 지원과 융자금)를 받았다. 2만달러가 넘는 학비의 절반 수준인 이 수치에는 전액 재정보조를 받은 학생들이 모두 포함돼 있어 중산층 가정 자녀들이 받은 재정보조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른 대학의 한 재정보조 사무실 관계자는 연 소득이 8만달러 이상인 중산층은 학비의 절반 정도는 자비로 충당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며 “미국에서도 경제적 형편이 안 되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이민자 학부모들이 인지하도록 부탁했다.
갈수록 오르는 학비… 갈수록 깎이는 지원…
‘빚더미 졸업생’속출
이 관계자에 따르면 연방정부 규정은 연간 4만5,000달러 이상의 소득이 있는 가정(4인 기준)부터 무상 재정보조의 규모를 줄여간다. 캘리포니아 정부의 경우 주정부 자체 무상 재정보조인 캘그랜트의 수혜 대상을 연 소득 7만2,300달러(4인 가족 기준)로 못 박고 있다.
한 대학의 재정보조 사무실 관계자는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의 연 소득은 10만달러 안팎”이라며 “정부 지원을 받기에는 높은 소득이지만 수만달러에 달하는 학비를 감당하기에는 적은 소득”이라고 말했다.
학자금 융자를 해주는 웰스파고 은행은 재정보조 수준을 ‘대략’ 가늠할 수 있는 ‘5% 테스트’를 선보였다. 홈 에퀴티, 저축액 등 총자산의 5%를 세금 보고된 지난해 ‘수정 총수입’(Adjusted Gross Income)에 더한 다음 대학 연간 학비로 나눈다. 은행 측은 “나눈 값이 6 이하일 때는 재정보조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초과할 때는 자비로 충당해야 하는 학비 몫이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가족분담금 조달법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자금 융자를 통해 재정보조 수혜 이후에도 모자라는 학비를 해결한다. 각 은행들은 다양한 학자금 융자플랜을 가지고 있다. 연방정부에서 대출을 보증하는 학자금 융자와 달리 시중 은행 학자금 융자를 받으려면 크레딧 기록이 좋아야 한다. 은행에 따라 담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각 대학들은 학부모들의 가족 분담금을 페이먼트로 나눠 낼 수 있게 한다. 월 페이먼트로 내는 학비에는 이자가 계산되지 않는다.
비싼 학비 때문에 1순위로 원하는 대학을 포기하고 2, 3순위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부모에게 부담을 주고 빚을 얻어 대학을 다니느니 랭킹은 조금 떨어져도 싼 곳으로 가겠다는 결정이다. 또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2년을 공부한 뒤 4년제로 편입하는 옵션도 선호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주변의 수군거림에 개의치 않고 이런 선택을 내리고 있다.
UCLA가 2005~06학년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27만1,4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3분의2 이상은 자신이 가장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으나 나머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절반이상이 “실력은 충분했으나 재정적 문제 때문에 입학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재정적 문제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원하는 대학을 포기하는 비율은 꾸준히 늘어 이 조사가 처음 실시된 1974년에는 1순위 대학에 입학한 비율이 77.2%였으나 올해는 2, 3순위 입학비율이 10년 전보다 4.2%, 지난해보다 2.5% 포인트 높아졌다.
■빚지는 대학생
지속적인 학비 인상에 비해 재정보조는 갈수록 삭감돼 학자금 빚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칼리지 보드의 ‘대학 학비 추세’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의 평균 학비는 3만367달러. 그 전년보다 5.7% 오른 것이다.
4년제 공립대 사정도 밝지 않다. 4년제 공립대 학비는 학교가 위치한 주에 거주하는 학생 기준으로 총 1만2,796달러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 수치인 1만2,115달러에 비해 5.6% 오른 것이다.
대학 학비가 지난 5년 동안 35% 오른 반면 정부 등의 재정보조는 갈수록 줄어 많은 학생이 거액의 빚을 안은 채 대학을 졸업한다.
칼리지보드 자료에 따르면 하버드대학의 경우 졸업생들의 평균 빚은 1만4,000여달러. USC의 경우 1만9,000여달러로 5,000여달러가 더 많다. UC 등 인기 있는 공립대학 졸업생들도 평균 1만 달러 이상의 빚을 안고 졸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보조가 줄며 빚을 내 공부해야하는 현실 때문에 대학생을 상대로 한 민간 대출업체의 학자금 대출 규모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5년 민간대출업체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138억 달러로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늘어났다. 한인 은행은 학자금 대출을 하지 않고 있다.
학자금 융자시장이 뜨거워지자 시장 확보를 위한 민간은행간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대학 재정보조 사무실 관계자-은행 간 유착 스캔들은 고객 확보를 위한 과열된 경쟁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간 학자금 대출업체의 과열경쟁이 결국 소비자인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학자금 마련 대책
토랜스에 거주하는 간호사 D(43)씨는 큰 아들이 5학년이 될 때 ‘529 플랜 계좌’를 만들었다. 2남2녀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달 500달러씩 차곡차곡 납입한다. D씨는 “현재 16만달러 선인 사립대학의 4년간 학비가 애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쯤에는 20만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며 “미리 준비해야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라이프의 샤나 강 에이전트에 따르면 미국 금융회사의 ‘자녀용 상품’은 모두 정부의 세제 혜택을 토대로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준 돈을 운용해서 생기는 수익에 대해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이란 설명이다. 따라서 세금 내는 것이 항상 아까운 한인들에게는 자녀 교육비 마련 및 절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학자금 마련 상품은 형편에 따라 맞춤형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여유 수입이 많은 사람은 수십만 달러까지 적립할 수 있지만 매월 페이먼트 내기에도 바쁜 한인들을 위해 월 100달러 선에서 납입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뉴욕라이프의 샤나 강 에이전트는 “대학 학비가 비싸지며 학자금 마련 방법에 대한 문의가 잦다”며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학비 마련 보험이나 금융상품을 구입하는 유대인의 현명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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