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진계의 최고봉 홍순태 교수. <진천규 기자>
국내외 구석구석 누비며
40여년 쉼없이 찰칵찰칵
휴머니즘 문명비판 담은
문화와 역사의 기록들
새라 리 아트웍스 프로젝트서 열려
<한국 사진계의 최고봉 홍순태 ‘장날’전>
버쩍 마른 송아지가 대충 엮은 나무저울에 매달려 있다. 그 옆에서 근수를 달아보는 시골 남정네 두 사람. 소 한 마리 사고파는 모양이다. 겨울 길에 두 바퀴만 앙상한 손수레를 한 남자가 끌고 간다. 오바 입고 고무신 신은 남자가 끄는 수레 위에 중년 여인이 쭈그리고 앉았다. 모친인가, 혹은 아내인지도…
갓 쓰고 도포 입은 노인 옆에 짧은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참하지 않은 자세로 앉아 있다. 검은 샌들에 핸드백, 긴 생머리를 하고 지루한 표정인 그녀는 이 깐깐한 할아버지와 무슨 관계일까?
지난 5일부터 ‘새라 리 아트웍스 프로젝트’(Sarah Lee Artworks Projects)에서 열리고 있는 홍순태 사진전 ‘장날’(Market Day)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 30~40년 전 한국의 시골장터 모습들이다. 세월만큼이나 빛바랜 흑백의 이미지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낸다. 슬프고도 우습고, 정겹고도 그리운… 우리만 아는 감정들이 크게 북받친다. 국내 사진작가 1세대, 사진 분야에서 ‘한국 최초’ 또는 ‘한국 제일’이라는 형용사가 무수하게 붙어 다니는 홍순태(74) 교수를 인터뷰했다.
평생 사진을 찍어온 홍순태 교수에게 사진은 ‘기록’이다. 예술성과 창작성도 다같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록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되기 때문에 저절로 기록성과 역사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장날도 그런 기록의 하나. 상설시장이 생기면서 사라져간 시골장터의 풍경을 20년 동안 방방곡곡 누비고 다니면서 기록한 작품들이다.
그는 45년 사진만 찍었는데 그 전반 20년은 한국 내에서 우리 문화와 전통미, 그 풍경과 서정을 담아냈다. 장터도 그 한 부분이고 기와집과 초가집, 사찰, 낙동강, 이산가족, 청계천의 30년 역사가 고스란히 그의 카메라에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이 70년 동안 살아온 서울의 모습도 매일 기록했다. 자신만큼 서울을 많이 찍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변화해가는 도시의 풍경을 모아 머잖아 ‘서울의 찬가’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사진인생의 후반 20여년은 해외로 나가 전 세계를 무대로 작업했다. 그동안 그가 밟은 나라는 무려 131개국. 선진문명국가보다는 오지와 제3세계에 집착했는데 그 이유는 사라져가는 것들, 아시아의 소수민족 같은 것들을 기록하려는 역사적 의무감 때문이다.
79년에 두달 동안 미국을 일주한 적이 있다. 그레이하운드 한달 패스를 끊어서 낮에는 도시에 내려 사진을 찍고 밤이면 버스를 타고 잠을 자면서 두달 동안 미 전국을 돌았다고 한다. 그때 찍은 사진으로 80년 롯데화랑에서 ‘아메리카’란 제목으로 미국 자본주의 문화를 비판한 사진전을 가졌는데 미대사관에서 그 실력에 깜짝 놀라서 긍정적 시각의 미국 사진전을 의뢰, 바로 다음해 ‘동양을 통한 서양의 해석’이란 제목으로 또 다른 순회전을 갖기도 했다. LA에서는 그 무렵인 81년 삼일당에서 한국의 미에 관한 사진전을 가진 것이 유일하다.
홍순태의 사진에는 다른 작가들의 것과 분명히 구별되는 어떤 느낌이 있다.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메시지라고 해야 할지, 사진 속에 이야기가 있고 사진이 말을 건다.
홍 교수는 그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사람사랑’에 뿌리를 둔 장면 포착, 거기에 독특한 앵글 구사가 합쳐져 홍순태만의 사진을 만든다.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애잔한 감정이 느껴지는데 그건 찍는 순간의 그의 마음일수도 있고 과거가 돼버린 시간, 지나간 역사에 대한 경외일 수도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강한 메시지가 읽혀진다. 문명비판적이고 바른 역사관 같은 것,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그는 감정을 많이 배제시킨다. 흥분이 고조돼 격앙된 순간을 포착하기보다는 톤이 한 숨 낮아져 거품이 제거된 순간, 말하자면 ‘창의적인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홍 교수는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1972년 홍익대 미대 출강을 시작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성심여대, 덕성여대 등에 출강했고 신구대에 처음 사진학과가 만들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20여년을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현재도 성균관대학, 경원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국전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활약했으며 수많은 사진단체를 만들었고 뭐든지 최초였으며 사진계의 감투란 감투는 다 썼다. 지금까지 37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사진관련 서적만 13권을 냈는데 아직도 일년에 서너 차례 사진여행을 다니는 등 열정적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후진양성을 앞세우는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은 이론과 실기에 모두 뛰어난 작가가 되라는 것. ‘찍는 작가이며 이론가’가 되어야한다는 홍 교수는 “요즘 해외에서 공부하고 오는 유학파들은 자기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채 튀는 사진을 만들려는 욕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빠진 지지고 볶는 사진들을 만들어 내 놓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카메라만 수백대를 갖고 있는 그는 주로 나이콘 카메라로 작업했고 하셀브라드만 아홉 대를 은퇴시킨 맹렬 작가. 지금은 애국하는 마음으로 삼성 디지털 GX10을 쓴다고 했다. 수천만번은 더 셔터를 눌렀을 그의 손은 아직도 경이롭고,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역사를 기록해온 그의 눈은 아직도 날카롭다. 온 세계를 손과 발과 눈으로 기록해온 백발노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전시장 주소와 전화번호는 Sarah Lee Artworks Projects 2525 Michigan Ave. T-1 Santa Monica, CA 90404 (310)829-4938. 화~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www.sarahleeartworks.com
서울 원남동 1969.
서울 청계천 1968.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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