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태수/편집국장
조직위 지도부 벼랑끝 명예도 살리고
북가주 한인사회 위상실추 예방하고
갈팡질팡 위기의 미주체전 살리는 길
◈굴러가는 당구공은 벽에 부딪히면 되튄다, 부딪히는 순간 공에 주어진 힘이 제로(0)로 떨어지지 않는 한. 바닥 깊은 줄 모르고 추락하는 증시는 바닥을 치면 십중팔구 다시 솟아오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그 어떤 물건도 무중력 상태 등 전혀 다른 외계로 들어가지 않는 한 끝내는 도로 떨어진다. 물리법칙만은 아니다. 경제법칙만도 아니다. 세상사에 두루 통용될 수 있는 복음 같은 법칙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꼬일 때 곧잘 인용되는 ‘궁하면 통한다’거나 ‘위기가 곧 기회다’ ‘절망 속에 희망 있다’ 등 말과 일맥상통한다.
◈50일 안쪽으로 다가온 제14회 미주체전(6월29일-7월1일)이 더이상 갈 데가 없는 듯한 위기에 놓였다. 지난 8일 밤 SF한인회(회장 이석찬) 주관으로 열린 SF조직위+경기단체 연석회의에서 드러났듯 예산은 재론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바닥이다. 조직 또한 누구 말대로 아사리판이다. 그러니 운영이 잘 될 리 없다. 조직위 주장대로 300만 미주한인사회 최대행사를 코앞에 둔 ‘이 바쁜 시기에 그 열띤 회의’를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예산 조직 운영 3박자가 죄다 뒤틀릴대로 뒤틀린 ‘위기’ 때문이었다.
◈위기가 다 기회는 아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해야 기회의 길이 더듬어진다. 궁한다고 다 통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절망 속에 항상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냉철한 상황인식 없이는 제3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체전조직위 지도부의 상황인식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음으로써 더 큰 위기를 자초했다. 게다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되고 있다’는 저들의 주장과 달리 ‘모든 것이 철저하게 못되고 있다’는 게 드러났음에도 그 원인을 “한 기자(기자를 지칭한 듯) 때문”이니 “유언비어(기자의 비판적 보도를 가리킨 듯) 때문”이니 남탓타령을 읊조리고 있으니 ‘위기’ 다음에 올 ‘기회’가 도로 꽁무니를 내렸을 법하다.
◈그렇다면 기회는 영영 없는가. 여전히 있다. 오히려 지금같은 진통이
성장을 위한 보약이 될 수 있다. 이 어지러운 길에서 바른 길을 찾아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걸어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고개 숙인 조직위 지도부 개개인에게는 앞만 보고 달려온 궤도에서 벗어나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면 그 개개인의 인간적 성숙을 위해서도, 빈사상태의 체전에 소생의 호흡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좋다. 한인사회로서는 이런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감으로써 복잡다단한 문제풀이 능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미래에 닥칠지 모를 위험상황에 대한 예방능력과 대처능력을 동시에 살찌울 수 있다. 어느 성인의 표현을 빌면 온갖 괴로운 상황, 바로 그 옆에 눈 뜨임과 귀 열림의 길이 있는 것이다. 눈 뜨고자 하는 이에게는, 귀 열리고자 하는 이에게는 속상하는 모든 것이 알토란같은 공부밑천이다.
◈체전위기를 타개하는 길은 여럿일 수 있다. 기자의 의견은 이렇다. 우선, 적이 가혹한 표현이긴 하지만 신뢰상실 능력부재로 총체적 부실을 빚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조직위 지도부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더욱이 한인사회의 영점(제로)후원의 원인이 남탓이 아니라 내탓 임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성공적 체전개최에 대한 열정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나>를 위해서도 <체전>을 위해서도, 그리고 이석찬 한인회장과 천인필 부총영사가 거듭 지적했듯이 <북가주 한인사회>를 위해서도 조직위 지도부의 사퇴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사퇴를 일생일대 끝장이라고 생각해 버틴다면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홧김에 한 말이겠지만 8일 연석회의에서 조직위 지도부 어느 인사가 뱉은 대로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하는 논리로 버틴다면 그 칼에 다름아닌 자신이 베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0여일밖에 안남았는데…”라며 배짱을 부린다면 당장 40여일 때문에 그뒤 20년 30년을 먹칠하게 되리란 것 또한 불보듯 뻔하다.
◈사퇴가 대안은 물론 아니다. 사퇴 이후 할일이 태산이다. 등돌린 민심을 되돌려 곳간을 채우고(예산확보) 허술한 조직을 재정비하고 경기장 확보 등 미진한 숙제들을 숨가쁘게 풀어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한인사회 여론은 체전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왕에 잘 치르자는 쪽인 듯하다. 꽁꽁 얼어붙은 후원열기에 불이 붙을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다. 조직 재정비 전망도 그렇다. 87년 체전을 성공리에 개최했던 이명무 전 체육회장, 큰 대회 경험이 풍부한 박양규 전 체육회 부회장, 일각의 압력과 비아냥에도 굴하지 않고 체전정상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온 이상호 축구협회장 등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인사들은 적잖이 있다.
◈그래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를 조직위 지도부에 엊그제 들은, 참 아름다운얘기를 들려주겠다. 그동안 조직위와 대립각을 세워온 사람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어느 개인이 미워서 이런 게 아니다. 다 체전을 잘하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있는 처신을 보인다면 함께 어깨동무를 못할 이유가 없다. 더이상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줄 것이다.” 비공식 채널을 통해 그 뜻이 전달됐고 조직위 지도부 역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보고 있으며 소위 반대파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의심의 고리를 일부나마 풀었다는 상서로운 소식들이 더불어 들려온다. 체전성공을 위한 새출발 플랜이 상당부분 마련됐다는 소식까지 엮여져 들려오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적어도 어제오늘 돌아가는 판세로는. 이제 조직위 지도부의화답을 기대한다.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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