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0명 요원을 거느린 막강 LAPD(LA경찰국)이지만 시위군중 다루기는 아직도 난제 중 난제인가 보다. 40년전에도 그랬다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전 반전시위 당시 강력하게 비난당했던 LA경찰의 과잉진압은 지난주 노동절 이민자 시위에서도 똑같이 비판의 대상으로 도마에 올랐다.
2000년 민주당 전당대회땐 시위자 뿐 아니라 취재진에게도 무차별 구타를 가해 결국 LA시가 잇단 소송에 합의하느라 500만 달러를 쏟아부어야 했었다. 이번에도 방송기자, 카메라맨 가릴것 없이 때리고 밀치고 했으니 또 아까운 세금, 뭉텅 들어가게 생겼다. 이미 여러 건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반대로 방관에 가까운 소극적 대응으로 비판당한 것도 여러차례다. 4.29폭동이 대표적이었고 몇해전 레이커스의 NBA 우승후 스테이플스센터 앞에서 흥분한 관중들이 폭도로 변했을 때도 그랬다. 경찰차량이 불태워지고 인근빌딩의 유리창이 박살났는데도 강력 진압에 나서지 않았다.
문제는 공권력의 남용과 공권력의 부재 사이에서 쉽지 않은 균형잡기일 것이다. 한순간에 폭도로 변할 수 있는 흥분한 군중들을 어느 시점부터, 어느 정도 강하게 ‘보호’하고 ‘단속’해야 할 것인가. 자칫하면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경찰의 고충을 이해못할 것도 없다.
또 4.29를 체험한 우리는 생계의 터전이 마구 짓밟히는 약탈의 현장에서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무정부상태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공권력의 남용보다는 부재가 더 두렵다고 확신하는 시각으로 보아도 노동절 맥아더공원 이민자 시위에서의 경찰대응은 분명히 ‘과잉진압’이었다.
아이와 강아지를 데리고 성조기를 흔들던 가족들이 경찰의 곤봉과 고무탄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담요위에 앉아 피크닉을 즐기던 사람이 경찰에 맞아 턱뼈를 부러뜨렸으며 마이크를 든 여기자, 생중계를 시작하던 TV앵커, LAPD발행 신분증을 목에 건 카메라맨 등도 경찰의 진압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다행히 진상조사는 발빠르게 시작되었다. 평화롭게 진행되던 이민시위가 한순간에 총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돌변한 ‘2007년 5월1일 오후 5시15분부터 6시30분까지’ 1시간 15분의 상황은 다각도로 면밀하게 조사분석 되어 LA역사의 한부분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조사결과에 상관없이 LAPD의 이미지는 또한번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로드니 킹 이후 잊혀질만 했던 폭력경찰의 오명을 다시 감수하게 되었으니까. 경찰국 전체가 당황스럽겠지만 가장 난처한 사람은 윌리엄 브래튼 경찰국장일 것이다. LAPD의 수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개인에게도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오는 10월로 첫 번째 임기가 끝나는 그의 재임명이 막 결정되려던 순간에 악재가 터진 것이다.
브래튼은 치안과 리더십, 모든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찰국장이다. 연임을 반대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 시위 바로 전날인 4월30일 그의 연임여부를 묻는 경찰위원회 주최 공청회에서도 지지분위기가 절대적이었다. 이번사태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그의 연임은 이미 확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8일 열린 시위관련 첫 공청회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의 해임을 요구하는 성난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탄탄대로였던 그의 연임가도에 빨간불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란불 정도는 켜진 상황이다.
지난해 발표된 램파트보고서는 LA엔 지역과 계층, 인종에 따라 경찰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이란 커뮤니티를 보호해주는 고마운 공복이라는 백인중산층의 시각과 공포와 기피의 대상으로 혐오스런 공권력이라는 유색 빈민층의 시각이다.
브래튼에 대한 지지는 이같은 시각의 양극화와 궤를 함께 한다. 백인중산층 이상의 지지는 절대적이지만 시위사태 전에도 소수계의 지지는 미지근했다. 무사히 연임된다면 브래튼국장이 다음 임기중 가장 관심을 갖고 고심해야할 부분이다. 경찰과 소수계 커뮤니티 사이의 신뢰감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그 후유증의 깊이는 경찰과 주민과의 평소관계에 비례한다. 서로가 존중하며 신뢰한다면 과잉진압이 오랜 상처로 남지는 않는다.
경찰과 주민의 관계는 물론 경찰국의 정책방향, 지속적인 교육, 그리고 지난 몇 년간 LAPD가 치중해온 지역사회와 공조하는 ‘커뮤니티 폴리싱’ 등에 의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경찰국내의 인종통합이다. LA경찰의 인종분포가 LA시의 인종분포와 비슷해진다면 경찰과 주민과의 갈등은 눈에 뜨이게 줄어들 것이다. 그것이 LAPD가 멀더라도 꼭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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