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미전국의 대도시를 메웠던 수백만 인파에 비해 올해 노동절의 이민자 시위는 ‘조용’했다. 불법이민을 중범죄자로 몰아세운 하원 이민개정안이 불씨를 지폈던 지난해 봄의 뜨겁고 엄청난 파워가 금년엔 느껴지지 않았다. 생업을 접어두고 거리로 나설 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큰 이유는 아마도 워싱턴의 정치 변화를 믿어서 일 것이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친이민 개혁안의 성사를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수백 수천만 삶의 명암이 달려있는 이민개혁안은 지금 도대체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금년엔 확실히 통과가 되기는 할 것인가. ‘이민’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그 진행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아온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 어느 것 하나에도 자신있는 대답을 하기 힘들다.
이민개혁안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엉거주춤 지지부진이다. 하원안은 상정은 되었지만 아직 변변한 청문회 한번 열지 못했고 상원안은 아직 상정조차 못했다.
이민개혁안 논쟁이 전국적 이슈로 달아오른 것은 2005년 10월부터였다. 당시 공화당 주도의 연방하원이 불체자를 중범으로 규정하고 불체자를 돕는 종교기관까지 처벌하겠다는 초강경법안을 상정하면서 2006년 봄 미 대도시 거리에선 이민자들의 시위가 잇달았다. 그해 5월 상원이 1,200만 불체자 구제와 초청노동자 프로그램을 포함한 포괄적 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반이민 기세가 등등했던 하원과의 합의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포괄적 개혁안을 결국 폐기시킨 공화당 주도 의회는 10월 국경장벽 설치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회기를 마감했다.
이민자들의 희망찬 기대 속에 출범한 새 의회가 첫 개혁안을 상정한 것은 개원 석달이 되어가는 지난 3월 하순이었다. 새로워진 분위기 속에서 선보인 하원안은 확실히 달랐다. 몇가지 걸림 조항들이 있긴하지만 지난해 상원안 못지않게 포괄적이고 합리적이다.
미국에서 이민만큼 경제·사회 전반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이슈도 드물다. 게다가 요즘 워싱턴에서 사사건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민주당 의회와 부시가 유일하게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주요 안건이 이민법 개혁이다. 민주당에겐 친이민이 기본 정강에 속하고, 임기가 21개월밖에 안남은 대통령 부시가 남길 수 있는 역사적 유산은 ‘이민법 개혁’말고는 찾기도 힘들다.
더 속이 타는 쪽은 부시인듯 싶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백악관에 요구하는 어조도 당당하다. ‘민주당 표만으로는 통과 못시킨다. 당의 노선으로 강요도 안하겠다. 그러니 부시대통령이 표결 실시 전에 70명의 공화당 표를 확보해 달라’ - 지지율이 바닥인 대통령에겐 너무 어려운 주문일 수 있다. 그러니 하원 통과는 낙관할 상황이 아직 못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상원안이다. 벌써 몇주째 한주에 두세번씩 의원들이 직접(보좌관 안시키고) 회동하여 초당적 합의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초안도 안나왔다. 진통 심한 비공개 회의 안쪽에서 새나왔다는 최근의 뉴스가 ‘아직 합의는 없지만 진전은 있다’ 정도다.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과 거리를 좁히느라 고군분투중이다. 지난해 포괄적 개혁안을 공동제안했던 존 매케인과 샘 브라운백 등 친이민 공화당 파트너들이 금년엔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반이민쪽으로 ‘변심’했기 때문에 한층 힘든 입장이다.
더 큰 ‘배신’은 백악관에서 나왔다. 물론 공화당 강경파를 달래기 위한 고심의 산물이겠지만 3월말 공개된 부시의 개혁 초안은 너무 반이민적이다. 배우자와 미성년자녀를 제외한 가족초청을 폐기하는가 하면 불체자 방안은 구제 아닌 ‘추방’에 가깝다. 5인 불체자 한가족이 백악관안에 따라 영주권을 받으려면 최소 6만4,000달러를 내고 25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합법신분자격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운좋은’ 가족의 경우다. 언뜻 보아도 불체자를 커밍아웃 시키는게 아니라 더 꼭꼭 숨게 만드는 비현실적 대책이다.
상원에선 메모리얼데이 연휴 전 5월의 마지막 2주를 이민개정안 토의시기로 잡아놓고 있다. 그때까지 합의가 이루어질지, 설사 이루어진다 해도 ‘합리적 포괄적’ 개혁이 될 지, 만약 부시안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그건 안 하니만 못한 ‘개악’일텐데…아직 상원안 상정 예정인 14일까지는 열흘이 남았고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안심보다는 우려가 자꾸만 꼬리를 문다.
엊그제 LA시청 앞에 모인 수만 군중을 향해 로저 마호니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길게 뻗은 국경장벽 옆엔 두 개의 상반된 팻말이 붙어있다. 하나엔 ‘들어오지 말라’ 다른 하나엔 ‘일할 사람 구함’이라고 써있다. 의회가 풀어야 할 미국의 모순이다” - 합리적 개혁안의 발목을 잡는 강경파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것이 바로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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