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The Waste Land)
20세기 영문학의 거목이었던 T.S. Eliot의 ‘황무지 (The Waste Land)’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Memory and desire, stirring/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Dull roots with spring rain./잠든 뿌리를 봄비로 뒤 흔든다.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겨울이 우리에겐 오히려 따듯했다.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이어 주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시의 하나로 간주되는 엘리엇의 ‘황무지’는 죽음과 부활의 신화를 바탕으로 현대문명의 불모성(不毛性)을 지적하며 재생의 길을 제시한다.
정신적인 황폐함(spiritual dryness), 믿음의 부재에서 오는 현대인들의 실존적인 불안(existential anxiety), 생식이 없는 성(sex without ruitfulness), 부활 없는 죽음(death without resurrection) 등을 시의
모티프로 다루고 있다. 거동하기 힘든 중증환자에게 약동하는 창 밖의 봄날은 오히려 부담이듯이 황무지의 주민들도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화사한 4월은 오히려 그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들은 생명의 계절을 거부하며
차라리 망각의 깊은 잠 속에 머물기를 원한다.
명문가 출신의 철학자이면서 시인이었던 엘리엇의 깨어있는 시각과 의식에서 당시의 세상은 절망의 장소였으리라. 엘리엇의 표현대로 우리는 또 한번의 잔인했던 4월을 보내며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한 위대한 약속은 어떤 이유에서 반복해서 좌절되는가를 생각해 본다.
정신분석학을 사회적인 병리현상의 분석에 거시적으로 접목시킨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의 좌절은 산업주의 사회체제 내에서 본질적으로 내포된 경제적 모순과는 별도로 체제 내의 중요한 두 가지 심리적 전제에 의해 그 불행의 씨앗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삶의 목적은 인간이 느끼는 어떤 욕망이나 주관적 요소까지 무한정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되는 철저한 쾌락주의(radical hedonism)에 기반을 둔 행복. 둘째는 자기 중심주의(egotism), 이기심(selfishness) 그리고 탐욕(greed)은 이러한 체제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조장될 필요가 있다는 전제. 하지만 프롬의 주장대로 현대사회는 유별나게 소외되고 불행한 사회이다.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적이며 사람들은 고독하고, 불안하고, 쉽게 분노하며, 파괴적이며, 동시에 타인들에게 의존적인 모순을 보인다. 그렇게 시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우리들은 동시에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며 일상의 삶을 소모한다.
우리들은 점점 생명이 없는 강력한 기계적인 것들과 스스로 만든 허상들에게 우리의 관심과 정열을 쏟아붓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더욱 강한 자극을 원한다.
결국, 욕망의 무한한 충족은 인생의 제1의 목표라는 산업사회의 전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쾌락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피쿠르스에게도 순수한 쾌락(pure pleasure)이 생의 최고의 목적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쾌락은 욕망의 충족(satisfaction of a desire)이 아닌 고통의 부재(absence of pain)와 영혼의 평정(stillness of the soul)을 의미했다.
그에 의하면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쾌락은 반드시 불쾌감이 따르며 욕망의 충족은 또 다른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인 프로이트
또한 우리 욕망은 죽어야 끝난다고 단언한다.
개인주의로 정당화되는 이기주의와 탐욕 또한 우리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이기주의가 의미하는 바는 개인의 미성숙한 자기 중심적인 성격과 행동에 관련된다.
이는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 결국,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고 시기하고 결국은 자신과 타인 모두를 파국의 길로 몰고 간다.
21세기의 우리는 정신적인 황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반문해 본다. 황무지의 세계에서는 주변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관심, 생명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부재하며 탐욕, 미움 그리고 환상과
심각한 자기 도취가 만연한다.
jdlc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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