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참사가 주는 교훈
부모-자녀 관계 재조명 필요, 상담처 만들자
2세들 스트레스 배출할 건전한 자리도 마련
‘버지니아 텍 참사, 그 이후에는?’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28일 시카고 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에서 열렸던 한인 커뮤니티 포럼에서는 조승희군이 대량 살상을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논의가 있었다.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이상, 이번 일이 조승희군의 개인적인 정신 질환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인 이민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결함이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이번 일에 대해 한인들이 공동 책임 의식을 느껴야 될 필요는 없지만, 상상을 초월한 잔혹한 대량 살상의 범인이 한인 1.5세이고 한인 커뮤니티의 다른 구성원이 이에 관한 영향을 전혀 안 받을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만큼 한인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학과 심리학 전문가들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분석과 대응책을 찾아본다.
■ 공부=성공=지상과제→자녀는 병든다
한 개인은 주변의 가족, 친구, 동료와 함께 그 사회 공간인 학교, 교회, 커뮤니티, 직장에서 사회화되고 문화를 배워간다. 요즘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TV, 인터넷 등 미디어로 부터도 인간은 많은 영향을 받는다. 사회, 문화, 개인이 세 축을 이루며 형성하는 사회 체계 안에서는 각자가 해야되는 사회적 역할이 있고 이에 상응하는 지위가 있다. 결국 교육을 통해 개인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대가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 그 지위가 결정되며 이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계층이 형성되기 때문에 인간은 좀 더 나은 지위와 계층에 오르기 위한 욕구를 갖게 된다는 전제로부터 조승희군 사건의 사회학적 분석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인사회연구원의 이윤모 원장은 “미국내 한인 이민 사회에서는 1세들이 경제적 안정을 달성하지 못했거나 이를 이뤘더라도 사회적 지위는 그리 높지 못하므로, 가문의 명예를 높이는 것은 출세하는 것이고 기독교적인 축복도 성공을 하는 것이라는 점을 1.5세, 2세 자녀들에게 강조하며 열심히 공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급격하게 언어, 환경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이민 1.5세들이나 부모와의 의사소통이 힘든 2세들의 경우 자칫 이런 부모의 요구에 부담을 느낄뿐더러 앞으로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부모들이 당했던 인종적 차별을 극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결국“나도 부모님들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낮은 위치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나는 과연 좋은 대학에 가서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을까?”라는 사회적 갈등이 한인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이 원장은“조승희군의 경우 이런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회적 지위 향상에 한계(mobility trap)를 느꼈으며, 차라리 이 자본주의 사회의 허구성을 깨뜨려야 겠다는 복수심을 갖고서 미국 문화로부터 배운 폭력이라는 수단을 택했다. 사회 제도상 총기 소유가 허용되고 학교내 치안이 허술했던 점도 이런 대량 참사가 발생하게 된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돼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버지니아 텍 사건이 발생한 뒤로 미국 사회에서는 총기 규제 문화, 인종 차별 제도, 폭력 문화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데 반해 한인 사회에서는 집단 책임감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기금 조성과 추모 집회를 통한 사죄 의식이 보이고 있는 점도 특이할 만한 사항이다. 이윤모 원장은“이제는 열심히 공부해야만 성공한다는 요구와 부담이 기본이 되는 부모 자녀 관계를 재조명하고 자녀에 대한 성취 압력을 줄여줘야 한다”며“커뮤니티내 상담 기능을 활성화하고 미국인 이웃과도 좀더 관계를 긴밀하게 조성하고 독서, 토론 등을 통해 교양과 품격을 함양하는 성숙한 한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 건전한 스트레스 배출구 만들어야
시카고 센트럴대학교의 최락준 심리학 교수는 조승희군에게 언어, 사회성 측면에서 발달장애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측면을 제기했다. 이는 뇌 중에서도 인간의 언어력을 관장하는 좌반구 신피질이나 감정 표현과 연관된 변연계에 이상이 생길 경우 발생하며 아스피린이나 카페인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조군이 8세가 되는 당시 미국으로 이민 올 때 이미 자폐증세가 있던 것일 수도 있다.
최 교수는 “자폐증에 걸리면 친구 관계에 실패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다”며 “언어 발달이 지연되고 반복적으로 말하거나 몸 동작을 보이며 사람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자폐증에 대한 치료가 뒤따르지 않으면 우울증과 정신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데 그 위험성이 있다. 조군의 경우 자폐 증세가 치료 됐어야 할 시점에 이민을 와서 덜 발달됐던 언어적인 부분 등이 주변에 놀림감 되고 살길이 바쁜 부모들로부터 충분한 이해와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최 교수의 분석이다.
자폐증이 우울증으로 번지면, 흥미를 느낄만한 것을 잘 발견하지 못하고 초조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최 교수는 “조승희군은 영문과에 재학하면서 자신이 쓴 희곡과 소설을 통해 자신이 주변을 통해 정신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번 나타냈다. 젤리라는 상상의 연인까지 만들 정도면 이는 정신분열에 이른 것인데 이 단계에 이르면 감각이 없어지고 와해된 언어와 행동을 하게 되며, 자신이 모세이고 물질주의 문명을 척결해야 한다는 거짓된 정의감에 빠진 것인 이미 과대망상에 이른 것 같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혼혈인으로서 주변의 조롱에 시달리다가 결국 풋볼을 통해 정서 배출구를 찾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 영웅이 된 하인스 워드를 조승희와 비교했다. 자녀에게 분노가 쌓여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상담자가 돼 그 불만과 고민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결론이었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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