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티우스는 로마의 마지막 철학자이자 첫 번째 스콜라 철학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명문가 출신인 그는 40세에 지금으로 치면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랐으나 불과 3년 뒤 역모로 몰려 모든 권력과 재산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가 감옥에서 쓴 것이 ‘철학의 위안’(Consolation of Philosophy)이라는 책이다.
자신과 운명의 여신과의 대화 형식으로 쓰인 이 책에서 그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운명의 여신이 속이려는 상대에 특히 친절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예기치 않을 때 그를 버려 한없는 고통 속에 빠뜨린다. 당신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세우려 하는가. 어리석은 인간아! 멈춘다면 그건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지 1년 만에 사형에 처해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지만 그가 쓴 책은 고전으로 남아 중세 유럽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중세 교회의 창에는 이 운명의 수레바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보통 네 인물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왼쪽 인물에는 ‘나는 군림할 것이다’, 맨 위 인물에는 ‘나는 군림하고 있다’, 오른 쪽에는 ‘나는 군림했다’, 맨 밑에는 ‘나는 왕국을 잃었다’는 글이 쓰여 있다. 이는 모든 왕의 운명이자 태어나 유년기와 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어로 ‘행운’ ‘재물’을 뜻하는 ‘fortune’의 어원이 로마의 여신 ‘Fortuna’에서, ‘Fortuna’는 ‘돈다’에서 나온 것을 보면 보에티우스 훨씬 이전부터 로마인들은 행운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행운의 덧없음을 깨달은 사람은 로마인뿐이 아니다. 유대인 전설에 따르면 솔로몬 왕은 어느 날 총리대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 6개월 후 돌아오는 명절날까지 ‘마법의 반지’를 구해 오라는 명을 내린다. 대신이 어떤 반지냐고 묻자 왕은 “슬픈 사람이 보면 행복해지고 기쁜 사람이 보면 슬퍼지는 마법을 갖고 있는 반지”라고 설명한다.
대신은 여섯 달 동안 이 반지를 찾아 헤맸으나 실패하고 약속한 날을 하루 앞둔 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다 허름한 금은방을 지나치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인에게 그런 반지가 있느냐고 묻자 주인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가 새겨진 반지를 들고 나온다. 대신은 다음날 이 반지를 왕에게 바쳤고 큰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어느 것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는 작게 개인뿐만 아니라 크게 나라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다. 한 때는 떵떵거리던 권력자가 감옥에 가는가 하면 세계 최고 기업도 거덜이 나 조각조각 팔려나간다.
요즘 LA 한인 비즈니스가 무척 어렵다. “4월이 원래 어려운 달이긴 하지만 올해처럼 힘든 것은 처음 본다”는 업주가 있는가 하면 작년 한해 50만~60만달러씩 수익을 올리던 한 부동산 업소는 지난 한 달간 고작 500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부동산으로 재미를 봐 집을 서너 채씩 샀다 팔리지는 않고 페이먼트는 늘어나 고통 받는 한인이 하나둘이 아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백만장자 제조기’로 불리던 한인 은행들의 주가는 올 들어 평균 30% 폭락했다. 제일 덩치가 큰 한미는 지난 넉 달 새 시장가치로 3억달러가 날아갔으며 나라, 윌셔, 중앙까지 합치면 주가 손실액만 8억달러에 달한다. 미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유독 한인 은행주만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한인 금융계와 경제 전반이 심상치 않음을 알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한인 경제는 보기 드문 호경기를 구가했다. 한국에서의 자금 유입과 부동산 붐으로 상가 렌트비와 건물가격은 자고 나면 오르고 개개인의 씀씀이도 몰라보게 커졌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불황이 없듯 끝나지 않는 호황은 없다. 호황이 가져오는 헤픔 속에 불황의 씨앗이 있고 불황 속 허리띠 졸라매기가 호황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올해, 아니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듯싶다.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