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폭동이 일어난지 15년이 지났다.
폭동이 일어나는 동안 텍사스 조그만 아파트에서 부모님은 한 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 때 나는 두 살짜리 조그만 아이였다. TV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말씀을 나누셨는지 지금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때 부모님이 느꼈을 충격은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LA 교민들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모든 교민이 함께 느끼는 충격과 고통이었을 것이다. 몇 년 후 얼마 동안 나의 어린 시절을 보낸 LA에서 보게 된, 줄줄이 불 타 무너진 검은 폐허는 아직도 슬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세대가 다른 나에게도 4.29 폭동에 대한 아픔은 아주 컸다. 사회학 클래스에 레포트를 내기 위해 4.29 폭동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접하게 되었는데 자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더욱 억울하게 느꼈던 것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진 우리의 모습이다.
평생을 모아온 돈으로 마련한 가게가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한인들의 절망이나, 수 마일 떨어진 베버리 힐즈와 같은 부자 동네를 지키느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경찰을 대신해서 총을 들어야만 했던 한인들의 절박함은 무시되었다.
여러 방송사에서는 폭동이 일어나자 1년이나 지난 ‘두순자’ 사건을 반복해서 방송하면서, 쥬스를 훔치려던 흑인 소녀가 가게 주인인 두순자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장면보다는 그 소녀의 어린 나이와 총격당하던 장면만을 강조해서 방송했을 뿐 아니라, 폭동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가게를 지키고자 총을 든 한인의 모습이 방송되었을 때는 ‘탐욕스럽고, 차가운, 돈뿐이 모르는 아시안’으로 매도되었다.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우리에게 더욱 깊은 상처가 되었다.
얼마 전 버지니아 텍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은 또 한 번 우리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였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4.29 폭동을 겪지 않은 우리 세대보다도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훨씬 충격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인종 문제로 인한 어려움을 더 많이 겪으신 때문일 것이다. 혹시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개인이 벌인 일로 전체가 해석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또 이러한 편견 때문에 부당한 일을 겪지나 않을까 하시며 또 하나의 억울한 이미지를 갖게 될까봐 불안해 하셨다. 이 사건이 한국과 어떤 연관도 없고 한국인이라서 일으킨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 때문에 우리가 위축될 이유는 없다. 이러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강해져야 한다. 4.29 폭동을 통해서 정치적 힘과 언론의 힘, 그리고 다른 민족과의 진정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이라는 땅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이 땅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특히 나와 같은 2세들에게 미국은 내가 태어나고 내가 발전시켜야 하는 나라이다. 내가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민으로서의 역활과 책임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서 살면서 한국의 문화를 알려야 되겠다.
나는 4.29 폭동을 생각하며 Korean-American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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