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홀로서기 준비작업 확인하는 시간
부모에게만 기대게 하는 양육법은 문제
1978년 한국에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서울 근교 수색 근처 증산동에 살고 계시는 먼 친척뻘 아저씨네 머물고 있었는데, 고풍의 한옥이라 처마가 있었고 마침 봄이라 마당에서 아주 잘 보이는 처마 밑에 아주 예쁜 제비 한 쌍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지푸라기와 진흙을 열심히 물어다가 집을 짓더니 언제 알을 낳았는지 부부가 번갈아 가며 알을 품었고, 곧 어미 제비와 아빠 제비가 바쁘게 먹이를 물고 날라 올 때마다 제법 시끄러운 소리로 새끼 제비들이 나한테 달라고 외쳐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둥지 위로 삐져나오는 주둥이들을 세어 보니 모두 다섯 마리나 되었었는데 얼마나 귀여웠던지 언제부터인가 그 제비 가족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나의 일과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나 되었을까, 엄마 제비와 아빠 제비가 먹이를 물고 올 때마다 처음엔 “짹짹짹짹짹”하면서 다섯 마리의 주둥이가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높게 솟아올랐었는데 어느 날부터 네 마리 밖에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 중 먹이를 많이 먹지 못한 한 마리가 밀리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제일 극성스러운 형에게 깔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더니 드디어 어느 날 밀리기만 하던 새끼는 빈사로 아주 죽어버리게 되었고 결국 어미 제비가 둥지 바깥으로 밀쳐내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전에는 다섯 마리에게도 작지 않던 둥지가 이제는 어깨까지 보이게 크게 자란 새끼들한테는 너무나도 비좁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때쯤부터는 새끼제비들의 털도 처음의 잿빛 색이던 것이 이제는 제법 제비답게 새까만 색깔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로부터 얼마 안 된 어느 날, 그 중 세 마리는 엄마 아빠가 없는 틈에 처마의 앞으로 옆으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를 시작했는데 그 중 제일 큰 한 마리는 여전히 둥지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전혀 꼼짝도 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 안돼서 세 마리는 아직 어색한 날갯짓이나마 제법 멀리까지 이리 푸득, 저리 푸득하고 잘 날아다녔는데 그 제일 큰 한 마리는 끝까지 둥지를 차지하고 엄마 아빠 제비가 먹이를 물어다 줄 때만 기다리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어느새 엄마 아빠보다도 더 살이 쪄 있는데도!
그러기를 며칠, 하루는 끔찍한 일을 보고야 말았다. 엄마 아빠 제비가 작정을 했던지 아침부터 그 살만 찐 새끼 제비를 꽁무니부터 쪼아 대기 시작해서 둥지 턱까지 밀어 붙이더니 급기야는 그 뚱뚱이를 마당 밑으로 떨쳐버린 것이다! 마침 마당에 있던 나는 급히 달려가 그 새끼를 살펴보았지만 얼마나 몸에 살이 쪄 있었던지 흥부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미 망가져 있었다. 별수 없이 부삽으로 떠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게 되었지만 이 제비 가족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아주 귀한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효도는 유교에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도 신구약을 다 통해서 가르치고 있다. 성경이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효도는 개체와 개체 사이의 일로써 제대로 효도를 하려면 우선 자식이 결혼과 함께 부모의 슬하를 떠나서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에베소서 6:1-2절; 출애굽기 20:12절; 창세기 2:24절 등등). 그렇다고 꼭 다른 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모든 면에서 부모를 의존만 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하여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마가복음 7:11절 참조).
그래서 유대인들의 쉐마 교육에서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열세 네 살만 되면 바미츠바라는 예식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로 아주 일찍부터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하는 것이다.
전주에는 버지니아텍의 참사가 결국 완전히 세상과 고립된 한 외로운 청년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라는 것을 보았고, 이 세상이 다 자식을 외면한다고 해도 그를 낳아서 키워준 부모만은 외면할 수 없었겠지 않나 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우리가 자녀와 가졌던 일대일 데이트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그 데이트가 결코 부모가 자녀에게 “천년만년 같이 살고지고”식의 “사랑”을 얘기하는 시간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시간의 초점은 자식들로서 그들이 얼마나 부모를 떠날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는가 확인하고 확인 시켜 주는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대화는 그동안 그들이 이룬 일들에 대한 감탄과 격려가 더 많았으며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챌린지에 대한 기대감의 확인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식사비도 언제나 부모가 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아이들도 우리를 대접해 준적도 있었다는 것도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으리라.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흔히 범하기 쉬운 두 가지 유형의 실수가 있는데 하나는 자식을 빈사 시키는 유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식이 달라는 대로 다 주기만 해서 그들이 스스로 날갯짓 칠 수 있는 기회를 뺏어버리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자녀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키는, 유형일 것이다. 버지니아텍의 조승희군은 과연 어느 쪽의 유형에 속할까? 일단은 버지니아텍이라고 하는 명문 대학에 보내서 졸업반까지 보냈으니까 첫째번인 확률은 적은 것 같고 그렇다면 그동안에 당연히 부모로서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함으로 오히려 조군을 정신적이나 사회적으로는 완전히 고립시키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하여튼 그동안에 많은 기사가 나왔지만 조군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것을 모르고 있고 따라서 과연 어떤 과정으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는 것은 차라리 빈사한 제비의 유형보다는 달라고 하지도 않은 것을 부모가 강제로 과식을 시켜서 문제를 만드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부모로서 꼭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얼마나 날개운동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도 낙오하지 않고 모두 푸른 창공을 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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