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속담에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있다. 종사하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해선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시간 없이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사안에만 고집하는 행동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네 풍습만은 아니다. 영어 속담에 “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가지에 다재다능한 사람은 한 가지도 제대로 마스터 할 수 없다는 뜻은 물론 이것저것 손대고 모든 사안에 아는 체하면서 참견하는 사람에 대한 빈정거림도 담고 있다.
하지만 복잡하고 세분화되는 세상에서 이런 가치관이 살아남을지는 의문이다. 눈부신 기술과학 발전은 제쳐두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인류문화의 골격 속에 한 우물만 너무 깊게 파는 고집만 부리다보면 시대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수도가 보급되는 와중에도 우물만 열심히 파는 것은 우둔한 짓이 아닐까. 또 멀티태스킹이 요구되는 시대에 이것저것을 다양하게 알지 못하면 도태되지 않을까.
우리 주변에는 가수는 노래만 부르고, 소설가는 소설만 쓰고, 교수는 학생만 가르친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 예는 USC에서 일본사를 가르치는 고든 버거 교수다. 한반도 주도권을 두고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 땅에서 벌인 청일전쟁(1984~95년)의 깊은 내막을 일본 외교문서를 토대로 연구해 ‘켄켄로쿠’란 저서를 펴낸 이 역사학자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 웨스트LA에서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돌보는 그는 또 음식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식도락가다. 음식 비평 능력이 전문 비평가보다 낫다는 평까지 듣는다.
조셉 와일구스라는 28세된 청년은 저소득층 어린이 환자를 돌보는 ‘프로젝트 선샤인’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면서 비즈니스 컨설팅 펌을 운영한다. 먹고 사는 것이 바쁜 부모를 둔 죄 탓에 병실에서 외롭게 투병 중인 어린이 환자를 대학시절 접한 그는 광대복장을 하고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 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환자 어린이의 친구 노릇에 감동한 타인들이 동참하면서 단체는 자원봉사자 1,000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정치권도 관심을 보인 시민단체를 이끌며 ‘한 우물’을 팔 수도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에는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었다. 세계적인 투자회사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컨설팅 펌을 운영하는 멀티태스킹 중이다.
변호사인 룸메이트(남편)는 법률상담은 안하고 IT 업계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아이리시 켈틱’ 축구팀을 이끌고 매주 일요일 축구리그에서 뛰고 있다. 역시 변호사인 필자의 여동생은 CPA 시험 준비 중이다. 그 자격증까지 따서 무엇 할 것이냐고 물으면 인재 육성 학교를 설립하는 목표 달성할 때까지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확신에 찬 모습들이 어떤 때는 얄밉기도 하지만 ‘잭 오브 올 트레이드’들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다른 우물을 팔 때도 열정적으로, 열심히 판다는 것이다. ‘오타쿠’란 일본말이 있다. 영어, 한국어로는 딱 떨어지게 직역해 낼 수 없는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인가에 ‘약간 미친 상태’라고 한다. 열심히 취미 생활하는 것보다는 더 열정적이고, 식음을 전폐하고 병적으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강박관념보다는 조금 덜한 상태에서 무엇에 취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녀들이 의무는 ‘공부 잘하는 것’이라고 믿는 학부모들이 많다. 흔히 명문대학과 인생의 성공을 결부시키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상당수는 그저 그런 학교를 나온 아이들보다 멀티태스킹에 약한 경우를 자주 봐왔다.
공부만 강요하던 학부모들에게 자녀를 무엇인가에 약간 미친 상태인 것 같이 진지한 태도로, 한꺼번에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멀티태스커로 한번 만들어 보도록 권유하고 싶다. 폭은 넓되 깊이는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들에게는 21세기는 다빈치 같은 사람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다시 강조하고 싶다. (323)651-1005
줄리엔 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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