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산행과 사파리 체험 15일 <5>
드디어 만년설 정상에 서다
밤 11시40분에 출발 악전고투 7시간 반
체력딸려 기진맥진… 정신력으로 버텨
1월 22일 우리가 정상을 향해 출발한 것이 11시40분이었다. 하늘은 드맑고 총총한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거렸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앞서 가고 있었다. 데이빗과 임마누엘, 쿤타, 윌리엄, 깁슨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림으로 완전무장하고 있었다. 한 줄로 서서 올라가는데 시작부터 가팔랐다. 뽈레 뽈레?
<드디어 우르픽 정상에 올랐다. 왼쪽부터 조카 정민, 동생 장화, 오빠 장권>
헤드랜턴은 필수이다. 별도의 배터리를 준비하여 혹시 낮아진 기온으로 불이 켜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오빠네 식구는 손전등 하나, 그리고 손으로 돌려서 발전하는 랜턴 두개를 가져왔다. 내 남편 호열씨는 자기 헤드랜턴을 정민이에게 주고 대신 그녀의 것을 트레킹 폴과 함께 잡고 갔다. 중간 중간 돌려서 불을 켜다가는 포기하고 앞 뒤 사람 불빛에 의지하였다. 뒤에 처진 미지언니는 임마누엘이 동행했다. 그는 데이빗, 윌리엄, 깁슨의 아버지이며 77세인데 부가이더로 참여했다. 지미 카터를 가이드했던 경력이 있다.
조금 올라가니 다이닝 홀에서 늘 얼굴을 마주쳤던 일본 청년이 길옆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우리 뒤에 따라오던 두 남자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우리를 앞질러 갔다. 앞에 높이 헤드랜턴의 움직임이 보인다. 부럽다. 뒤를 돌아보니 한 줄로 선 불빛의 행렬이 또한 보인다. 저 멀리 환하게 도시의 불빛이 오로라처럼 보이는데 ‘모시’라 했다.
벌써 내려오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30분 전에 출발한 미국사람들인데 포기하고 내려가는 것이라 했다. 모두들 건장하고 힘이 좋아 보였다. 뽈레 뽈레. 천천히 걸으니 땀이 나질 않았다. 손이 점점 시려서 굳어지고 발도 얼어붙기 시작했다. 언제 이 밤이 새려나. 시간아, 빨리 가려무나. 그러면 나도 정상에 서 있겠지.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녹기는커녕 우리가 본 것은 온천지의 얼음과 눈이었다. 미끄러져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것도 숨차고 힘들었다>
중간에 끼워가던 올케언니가 주저앉듯이 위태로웠다. 쿤타가 달려가서 짐을 자기가 메고 돌보겠다고 해서 그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계속 걸었다. 서 선생님은 그 커다란 사진기 가방과 큰 백팩을 메고 앞장 서셨다.
길만스 포인트(5,685미터 1만8,640피트)에 도착한 것이 6시였다.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시간이니 그런대로 좋은 성적이다. 데이빗이 따라주는 핫티를 받고 보니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YOU ARE NOW AT GILMAN’S POINT, 5681M. TANZANIA WELCOME AND CONGRATULATION. 포기하고 내려간 줄 알았던 혜성언니가 금방 쿤타와 함께 쫓아왔다. 서 선생님은 미지 언니를 애타게 찾으며 궁금해 하셨으나 임마누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빗은 한 사람씩 계속 갈 수 있겠는지 물어보았다. 혜성 언니는 여기가 족하다 하여 내려가기로 하고 우리 일행 6명과 가이더들 3명이 우르픽을 향해서 출발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이 걷혀가며 설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어제 내린 비가 이곳을 온천지 하얗게 만들었나보다. 조금만 헛디디면 크레이터 속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긴장되었다. 앞으로 한 시간 반을 더 가야 된다고 했다. 나는 정말로 힘들어서 맨 뒤에 쳐졌다. 호열씨는 저 앞에 무리들과 함께 가며 일출을 찍는다고 서둘렀다. 깁슨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내 앞에 가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걸으려고 노력해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순간 혼자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해가 뜨자 우리는 헤드랜턴을 벗어버리고 선글라스를 꺼내고 선블럭을 발랐다. 장화가 한국에서 온 팀 모두에서 선블럭 크림을 공급했는데 우리는 그 얼굴을 백설공주라고 불렀다. 바를수록 하얘지기 때문이었다.
데이빗은 우리를 자꾸만 재촉하였다. 눈이 녹으면 길이 미끄럽고 더 힘들다고 말했다. 정민이가 꾸준히 잘도 간다. 서 선생님이 사직 찍느라 지체하는 동안 정민이가 앞서 갔다. 그리고는 우르픽에 일등으로 골인하였다. 정민이는 가냘픈 몸매를 가진 여대생이다. 등산을 정식으로 해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신력으로 해내었다.
드디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의 제일 높은 지점 5,895미터(1만9,340피트)에 섰다. 그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얼굴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기 보다는 불쌍하고 처량해 보인다. 너무 힘들어서 표정관리에 신경 쓸 수도 없었다.
<임마누엘(오른쪽)의 도움으로 길만스 포인트까지 가까스로 오른 미지 언니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임마누엘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가이드 했었다.>
목적을 달성하고 내려오는 길은 기운이 빠지고 더 어려웠다. 조금 내려오다가 루이스를 보았다. 그는 마지막 한 걸음을 고지를 향해 옮기고 있었는데 거의 울먹거리고 있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독일 사람인데 초기의 만다라 헛에서 키보까지 매일같이 식당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녹아가고 있다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서 더 녹기 전에 가야지 한다는데 우리가 본 것은 온천지의 얼음과 눈이었다. 미끄러져 넘어지고 나니 다시 일어서는 것도 숨차고 힘들었다. 오른쪽으로 마치메 루트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었고 그 밑에 텐트촌도 보였다. 그 루트는 짧고 경치가 더욱 아름다운 반면 헛이 없어서 포터를 더 많이 고용해서 텐트를 짊어져야 한다.
길만스 포인트에 다시 돌아오니 9시가 되었다. 놀랍게도 임마누엘이 올라왔다. 곧 뒤따라서 미지 언니도 보였다. 서 선생님은 흥분하셔서 “I love you.”라고 소리치며 좋아하셨다. 그런데 미지 언니는 “I don’t like you.” 하는 게 아닌가. 서 선생님이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 간다고 자랑하셔서 그냥 돌아가면 무슨 꼴인가 하셨단다. 게다가 임마누엘이 ‘맘마는 정상에 못 갈 것 같다’라고 말해서 더 오기가 나더란다. 결국 9시간 반 만에 길만스 포인트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김장숙씨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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