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문화부로 돌아오니 몇년새 달라진 것이 있다. ‘작가’들이 굉장히 많아진 것이다. 웬 작가가 그리도 많은지 너도나도 시인, 수필가, 소설가라고 명함을 내민다. 책도 많이들 내고 출판기념회도 잦아서 문화면에는 신간소개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과거보다 삶이 윤택해지고 노년이 건강해지면서 생긴 현상인 것 같다. 사람은 먹고 살 걱정이 없어지면 문화와 예술활동에 눈을 돌리게 된다. 요즘 한인사회에 부쩍 많아진 작가들이 대개 중년과 노년층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제 사는 여유가 생기니 남들 보기에 멋있는, 또한 자신도 인생을 보람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작가 직함을 갖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문인이 되는 이유는 문학이 여러 예술분야 중 가장 빨리 쉽게 ‘작가’ 직함을 달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 미술, 무용 같은 분야에서 작가가 되려면 오랜 시간 갈고 닦은 훈련과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문학은 그 도구가 글이므로 한글을 깨친 사람이면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학교실을 다니면서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고, 열심히 습작활동을 하여 문단에 등단한다. 이때 숨어있던 재능을 발견하여 좋은 작품을 내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문학소녀의 꿈을 이루는 아름다운 작가들도 탄생한다.
그런데 요즘 등단하는 작가들 중 상당수는 글쓰기에 매진하기보다 문단에 돌아다니며 말 만들고 편 가르고 싸우기 바쁜 것 같다. 비슷비슷한 문학단체가 자꾸 생기고, 단체간 불화도 심하며, 신문에 한번이라도 더 나오려는 경쟁이 치열해서 서로 씹고 비방하기를 쉬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걸 하고 싶어서 작가가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작가의 대량생산은 한국서도 고질적 병폐라고 한다. 작가가 많아지는 이유는 등단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등단하는 방법은 세가지로,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 문학잡지의 신인상이나 추천제, 단행본 출판 등이 그것이다. 이중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 일간지 문예공모 당선이고, 문제가 되는 것이 문학잡지들의 경우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던 문학지들이 지금은 250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재정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에 변칙적인 경영을 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등단 장사’다. 매호 다수의 신인을 등단시키고 그들에게 책을 판매하여 잡지를 꾸려가는 것이다. 허영에 부푼 아마추어 문인, 시인 소설가라는 명칭을 사교적 장식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며 미주문단에는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한국 잡지사에 줄을 대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등단한 사람은 잡지구독자를 많이 모아야하기 때문에 전국각지의 친지에게 민폐를 끼치며 구독을 요구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잡지사들은 각종 이름의 ‘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는데 이때 돈을 기부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고, ‘편집위원’ 직함마저 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필력 1년도 안 되는 사람이 갑자기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이런 문인들의 수준이 어떻겠는가? 철자법이 틀리고 문장력조차 기본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수필이라 해서 읽어보면 자랑 일색의 신변잡기인 경우가 태반이다. 수필이란게 원래 신변잡기의 성격이 짙은 장르이지만 요즘 미주문단에서 발표되는 작품들은 이게 수필인지 일기인지 신세한탄인지 알 수 없는 글이 너무 많다.
시는 또 어떤가. 시가 아니라 산문인 경우가 다반사다. 긴 서술형 문장을 토막토막 끊어서 줄만 바꾸어 써놓고는 시라고 하니, 한숨밖에 안 나오는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백화점마다 여는 문학교실에는 유한마담들로 꽉꽉 들어차고, 놀러다니는 문학기행이 유행이며, 좋은 식당에 몰려다니면서 맛있게 교류하는 문인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문학이 허울 좋은 장식이 돼버렸다. 과거 문학은 배고픔과 고독의 산물이었는데 이렇게 배부르고 신나고 즐거운 삶에서 무슨 문학이 나올 수 있을까.
등단한 작가들이 이런 수준이라면 지금 세상에 등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등단하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또 요즘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작품을 발표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 진짜 문학하는 사람은 절대 등단하지 않는 풍토가 형성되기 전에 ‘작가’들이 잘 해야겠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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