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동안 미국내에서 자살을 시도한 대학생은 무려 23만4,000명으로 집계되었다. 버지니아텍 참사 발생 1주일째인 지난 월요일 연방상원이 서둘러 마련한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이날 보고된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현황은 대학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들의 가슴을 서늘케 한다.
2006년 서베이 결과에 의하면 해야할 일에 짓눌려 사는 느낌이라는 대학생이 94%나 된다. 너무 우울해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대답이 50%에 가까웠고 15%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9%가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했고 1.3%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용기를 내어 카운슬링을 받아보려고 해도 몇주를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 캠퍼스내 정신건강 서비스 인력이 부족해서다. 그나마 1996년엔 학생 1,598명당 풀타임 카운슬러 1명꼴이었는데 작년엔 1,697명당 I명으로 줄어들었다.
정신질환이 버지니아텍 같은 참사를 유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보다 부모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채 캠퍼스 그늘에 무겁게 깔려있는 우울증과 자살충동 증상이다. 담당자들은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다고 우려하는데 솔직히 부모들은 ‘심각하다’는 사실조차 감지하기 힘들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죽고싶은’ 심정으로 고통 받는데 그들을 가장 사랑하는 부모들은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학교 탓인가. 그건 아니다.
구조적인 원인을 꼽으라면 가족교육권리 및 사생활법(FERPA)을 들 수 있다. 1974년부터 시행된 학생의 교육기록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연방법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만18세부터는 학생 당사자의 동의없이는 아무도 성적에서 건강상태까지 그 어떤 기록도 볼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비를 대주는 부모도 예외가 아니다.
한인을 비롯한 이민부모들에겐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다. 고교때까진 기침만 해도 데려가라고 전화를 해대는 유난스러움이 낯설었는데 대학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아이에 대한 모든 정보가 모조리 차단된다. 대학생의 성적표까지야 볼 필요 없겠으나 몸과 마음이 깊이 병들어가도 당사자가 전화를 안해주면 알 길이 없다.
학교를 믿고 아이를 보낸다는 부모가 많지만 이제 미국의 대학들은 예전에 자임했던 대리부모의 역할을 차츰 벗어놓고 있다. 하고 싶어도 하기가 힘들다. 사생활보호에서 반차별까지 엄격한 관련법이 사방에서 제약을 가한다. 이번 사건으로 불거진 정신질환에 대한 대처가 전형적인 케이스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부모에게 조차 알릴 수 없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휴학 시킬 수도 없다. 물론 예외조항은 있다. 학생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즉각적 위협이 되는 ‘위기’에 처했을 때다. 도대체 언제가 위기인가. 건전한 일반사람의 상식으로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 시각이 같을 리가 없다.
MIT는 2000년 기숙사 방에서 불을 지르고 자살한 한인 여대생 엘리자베스 신양의 부모에게 딸의 위급상태를 통보해주지 않은 것등 대처소홀로 소송당했고 뉴욕의 헌터칼리지는 자살시도 여학생의 기숙사 입주를 거부했다가, 조지워싱턴대학은 우울증으로 입원했던 학생에게 복학을 거부했다가 소송당했다. 세 케이스 모두 대학측이 배상금을 지불했다. 자칫하면 이래도 저래도 책임져야하는 것이 미국의 대학이 직면한 딜레마다.
사안 하나하나가 다르고 민감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MIT 신양 어머니의 입장은 많은 부모들의 심경을 대변한다. 엘리자베스가 죽은 후에야 몇 달동안 딸이 거듭 자살위협을 했고 칼로 손목을 그었으며 치료담당자가 입원시키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그는 “어떻게 부모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있느냐? 우리가 알았다면 결코 그애를 혼자 두지않았고 지금 그애는 살아있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빨래에서 성생활까지 완전자립을 만끽하는 환경에 던져졌지만 18세에서 20대초반의 대학생은 아직 완전한 성인이 아니다. 미숙하다. 특히 난관과 실패에 부딪치면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기 쉽다. 당황하고 외로워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편안히 기댈 수 있는 무조건의 ‘내 편’이다. 잠시 기댔다 갈 수도 있고 오래 쉬어야할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증세가 위급하든 아니든, 학생의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통보받아야 할 사람은 부모다. 마음이 병든 아이를 따뜻한 애정으로 최선을 다해 돌볼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이번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대학의 정책은 보강될 것이다. 그러나 대학당국이 수천에서 수만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일일이 관찰하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하다. 보다 효과적인 것은 대학과 부모의 파트너십 강화다. 이를 위해선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책임, 대학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내려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생활 보호법중 부모통보 조항에 대한 완화는 가장 먼저 재고되어야할 사항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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