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 정태수(편집국장)
◈본론에 앞서 사과성 고백부터 해야겠다. 기자는 지난달 17일 오클랜드에서 열린 재미대한체육회 대의원총회 및 미주체전 후원의 밤 기사를 쓰면서 미주체전 상보를 3월24일자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다 저렇다 설명도 없이 기자는 그 약속을 어겼다. 만일 그 후속기사를 기다린 분이 계셨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린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그 후속기사는 ‘차마 쓸 수 없었다.’ 준비가 너무 엉망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쓰자니 소금을 뿌리는 것 같고 안쓰자니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이유 없이 안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유를 대자니 준비 안된 실상을 까발리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고…고심끝에 ‘말 없이 일단 안쓰는’ 쪽으로 갈피를 잡았던 것이다. 그것이 체전이 되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일종의 배려라면 배려였다.
◈그로부터 한달 이상 지난 지금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해결된 게 뭐가 있는지 ‘수사에 버금가는 취재’를 해봐도 알까말까 자신이 없을 정도다. 시계추를 3월17일 이전으로 돌려보자. 축구 야구 농구 수영 검도 등 경기장들이 하나같이 확보되지 않았다. 지금도 거의 그렇다. 심지어 윌리엄 김 조직위원장(지난해 7월 무자격 영입이사들은 참석하고 당연직 이사들은 대거 배제된 상태에서 SF체육회장에 재추대되고 그 덕분에 조직위원장을 맡은 지라 이 직함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밝혀둔다)이 텃밭처럼 여기는 태권도조차 어디서 어떻게 체전을 진행한다는 매스터플랜이 공유되지 않고 있다.
경기단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어떤 경기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경기단체 협회장으로 둔갑됐다. 또 어떤 사람은 조직위 산하 00위원장으로 돼 있는데 준비상황을 취재하니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또 조직위에서 ‘장’자 감투를 쓴 어떤 핵심인사는 예산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그런 건 윌리엄(김)이 다 알아서 하니까 나는 모른다”고 했다. 뿐인가. 누가 무슨 경기단체장인지, 누가 이사인지, 누가 소위원회 위원장인지도 모르는 촌극은 작년이나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이런 웃지 못할 코미디는 아마도 재미대한체육회 등에 체전준비가 잘 되고 있다고 보고는 해야 되겠는데 뜻과 행동을 같이해주는 사람은 드문 상황에서 ‘보고용으로 멋대로’ 작성한 때문일 것이다(그게 아니라 납득할만한 깊은 뜻이 있다면 얼마든지 정정보도와 사과보도를 곱빼기로 해줄 용의가 있다). 보고서용 뿐만이 아니다. 윌리엄 김 위원장, 대니얼 리 체전본부장 등은 한국일보를 제외한 타언론과의 인터뷰나 공사석 발언을 통해 대한체육회니 00그룹이니 00회사니 대가며 이번 체전에 엄청난 지원이 쏟아지고 있고 준비도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말해왔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게 말한 당사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심판교육 자원봉사자교육 등 미세터치를 해야 할 시점에 경기장 확보 등 인프라 구축도 안된 상황이니 다른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조직위가 사태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하루빨리 고쳐나가지는 않고 누가 본보에 기사를 흘렸나 따위 엉뚱한 일에 골몰하고 있으니…. 거꾸로 묻자. 그런 게 무슨 천지기밀이라고 감추고 흘리고 할 일인가. 또 숨긴다고 꼬인 문제가 풀리는가. 한두가지만 덧붙이자. SF축구협회의 경우 이상호 회장-김수창 이사장-백종만 수석부회장-구세홍 사무총장 등 현 집행부는 물론 조행훈 전 회장 등 고참들은 공금의혹 등으로 윌리엄 김 위원장을 불신하는 입장이면서도 체전의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협조하겠다고 축구인 여론을 선도했다. 또 박준범 전 야구협회장은 CC칼리지 계약을 놓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허위날조 음해를 받았으면서도 이를 참고 야구협회의 협조방침에 반대하지 않았다. 조직위는 만사를 제쳐놓고 이들에게 공개감사라도 표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도 경기장 확보도 안해주면서 이들을 비난하고, 더욱이 축구협회에 대해서는 재미협회에 징계를 요청하는 등의 처사를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체전준비가 이렇게 된 것은 ‘거의 100%’ 조직위 핵심멤버들의 책임이다. 무수한 식언과 허위과장으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그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건 시간낭비일 것이다.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물론 조직위가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있다. 말로만 해온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능력과시의 최소치는 경기장 확보 등 인프라구축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 22일 이상호 축구협회장이 말한 대로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마치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한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사람이야 어떻든 체전은 잘 치러야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도 설 자리가 없다. 지난해 초 체육회 사태가 불거질 때부터 문제를 제기한 측 인사들은 요즘과 같은 상황이 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 모든 경고음을 무시하거나 상대의견 존중이네 뭐네 하는 논리로 진실과 거짓을 섞어 잡탕을 만들거나 침묵함으로써 시비규명을 어렵게 했다. 언론이 누구를 봐준다고 쓸 것을 안쓰고 안쓸 것을 쓰는 행위는 그 사람을 ‘잠시 도와주고 길게 망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이로부터도 배운다. 어리석은 자는 현명한 이로부터도 배우지 못한다. 만고불변의 철칙이다. 북가주 한인사회 몇몇 단체들이 써온 ‘엉터리역사’는 이쯤 해서 끝나야 한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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