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외톨이에 관심과 애정 보이길
부모, 자녀 애정 깊이는 대화에 비례
지난 월요일은 아침부터 흘러나온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소식에 온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었다.
몇 년 전 콜로라도 컬럼바인의 사립학교에서 일어났던 사건보다도 훨씬 더 피해자가 많았던 일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관심을 더 끌게 한 이유는 그 사건의 범인이 영주권을 가진 한인 청년이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첫날 아침에 중국계 학생인 것 같다는 소식에도 “하필이면 동양인이 그런 일을…”하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그것이 8세 때 부모를 따라 이민 온 23세의 한국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인 것같이 더욱 더 무겁게 우리 마음에 다가온 것이었다.
어느 교포 학생은 한 아이가 학교에서 자기 엄마아빠가 이제부터는 한인 학생들하고는 놀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며 시무룩해 했고 직장에서 외국인들과 접할 때마다 한인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공연히 주눅이 들었다고 가슴 아파하는 교포들도 있었다.
이 와중에도 아주 아름다웠던 얘기가 하나 있다. V-Tech의 한 여대생은 “학교 당국과 경찰의 늑장 대응이 사건을 확대시켰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이런 사건이 있을수록 더욱 더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 ‘호-키’(V-Tech의 애칭)들은 서로 남에게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다.
우선 피해자를 찾아서 당사자들과 친지들을 위로해 주어야 하겠고 사건을 일으킨 학생이 굉장히 외톨이였다고 하는데 좀 더 가까이 대해 주고 적극적인 자세로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이번 비극을 보며 한 가지 생각나는 사건이 있었다. 대학 일학년 때 학교에 갔다가 오니 기숙사 식당에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알아보니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던 한 여학생이 기숙사 건물 7층 자기 방에서 창문을 열고 투신자살을 시도했다가 목 이하가 완전히 마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욱 더 우리를 슬프게 만들었던 것은 아무도 그 학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군은 30여명의 희생자를 죽음의 세계로 같이 데리고 갔고, 그 자살을 시도했던 여학생은 죽겠다는 소원조차 못 이루고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사례였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은 우선은 두 사람 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그 수만 명의 동료들 사이에서 지극히 외톨이로 죽음에 이르는 병, 즉 고독과의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싸움은 극소수의 학생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주(州)에서는 18세가 투표권을 얻고 재정적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성인’이 되는 나이이지만, 술도 공식적으로 사서 마실 수 있고 성인 영화를 마음대로 보는 등 완전히 성인이 되려면 21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과정은 마음에 맞는 이성과도 만나서 사귀면서 하나의 가정을 꾸미는 준비도 해야 되는 세대주로서 탈바꿈하는 교두보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강한 압박감과 때로는 많은 희생이 뒤따를 수 있는데. 사실은 부모들이 자녀가 성인이 된 다음에 이런 고백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 어느 날 나도 한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고. 부모들은 물론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얘기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때에 무엇이 그들을 붙잡아 주었을까? 조군이 NBC로 보낸 비디오 메시지를 들어보면 가장 강하게 들리는 것은 “나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거야…. 그냥 도망가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그렇게는 할 수 없었어!!”라고. 본인이나 타인에게 그렇게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 놓고 그것은 “필연”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아직 미련을 둘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전혀 다르게 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들은 이제 다 컸는데 부모가 무엇을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을까 보아 하는 말인데, 부모는 자식들의 생명의 끄나풀이 아닌가! 이 세상에 데리고 나온 장본인인데, 그 인연이 자식들이 18세가 되었다고, 혹은 21세가 되었다고 딱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이 아직 어렸을 때에는 그들의 보호자였다면 그들이 부모 곁을 떠날 나이가 되면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강퍅하고 생존경쟁은 격심한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이 세상을 헤쳐 나가기가 쉬워질 것이고 적어도 지난주 V-Tech에서 일어난 것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한국 학생들에게 “내 아들 좀 도와줘!” 정도의 하소연밖에 할 수 없었던 부모가 전혀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은 것은 왜 그럴까?
신학교에서 한 교수가 해준 말인데 자식들과 가끔 일대일로 데이트를 하라는 것이었다.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나로서는 쉽게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느 하루 절호의 기회가 찾아와서 문득 그 교수가 해준 말을 기억하고 집에서 간단히 때울 수도 있었던 점심을 굳이 자식과 함께 나가 보았다.
특별히 할 말도 없었고 왠지 쑥스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돈도 많이 안 들었고 그 한번의 ‘데이트’로 인해 분명히 아빠와 자식과의 사이가 새로운 의미를 더해졌다고 믿는다. 그 후 아이들을 하나씩 기회가 생기는 대로 놓치지 않고 데리고 나갔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주 한 번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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