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책
지난 달 둘째가 출근길에 한국으로 떠나는 나를 아세아나 공항 출국장 앞에 내려 놓고 멀어져 갔다.
한국에는 봄 날씨 답쟎게 쌀쌀하다는 일기예보에 접한지라 내복을 잔듯 끼어 입은데 다가 친정어미 딸래집에 가듯 이것저것 선물 꾸러미에다 네 번째 수필집 (뱃고동)과 자서전 (아동극과 더불어 반세기)란 원고뭉치를 쑤셔 넣은 커다란 가방을 다갈다갈 끌고 아세아나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려니 눈 앞에 안개가 낀 듯 희뿌옇다. 이렇게 약화(弱化)된 시력으로 한국 나들이를? 제되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겁이 덜컥난다.
내 시력의 약화는 당연한 결과다. 왜냐하면 수술로 인해 두 눈의 시력이 회복되기도 전에 수필집과 자서전 출간을 위한 그 많은 원고 수정으로 무리를 한데다가 ,자서전 앞 부분 20페이지 에 들어갈 연극 사진을 비롯하여 지금 까지 살아 오면서 찍은 수 천장의 사진 중에서 60장을 골라 내느라 몇 달을 두고 실래기를 첬으니 눈에 무리가 갈게 뻔한 일이다.
비행기에 오르자 마자 나는 좌석에 힘 없이 주져 앉았다.
전에는 기내식(機內食)이 비교적 내 입에 맞아 잘도 먹었는데, 이번에는 모래알을 씹듯이 입안에서 맴돌 뿐 목에 잘 넘어 가질 않는다. 그 뿐인가 한국을 오 갈때 마다 비행기 안에서 한 두편의 수필을 써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시력 때문에 그럴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내 옆 이쪽이쪽 좌석에 앉은 두 독서광은 희미한 촉광(觸光)아래서 깨알만한 활자를 잘도 읽고 있다.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나를 태운 비행기는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할 무렵 인천공항에 내려 놓는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예상외로 덥다. 그래서 끼어 입고 온 내복과 걸쳐 입은 코트 때문에 몸이 천금같이 무겁다. 또한 공항 시멘트 바닥위로 굴러 가는 내 가방의 바퀴 소리가 전차(戰車)바퀴 소리같이 내 뒷통수에 울린다.
내가 대학로에 있는 숙소에 짐을 푼 시각은 오후 8시 반, 나는 창호지에 물을 뿌린듯 한 내 몸을 침대 위에 던졌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꼬박 하루 반을 제대로 먹지 못한 허기짐이 또 한 내 몸을 조이기 시작한다. 새벽 4시까지 뒷척거리다, 거리로 뒤쳐 나왔다. 그리고 새벽 손님을 태우기 위해 달리는 택시를 잡아 타고 24시간 문을 여는 무교동 해장국 집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는 해장술 손님과 나 같이 허기진 손님 틈에 끼어 허기를 면하고 숙소로 돌아오자 겨우 정신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몸 컨디션으로 앞으로 치룰 많은 스케쥴 소화가 걱정이 된다.
다음 날 12시! 나를 반겨 주기 위한 회식(會食)모임 자리에 들어서니 문협 부 이사장을 비롯한 12명의 문인들이 나의 귀국을 환영하는 브랜카드까지 벽에 걸어 놓고 나를 맞아 주었다. 내가 한국을 떠난지가 31년이나 되었는데도 나를 잊지 않은 문우(文友)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내 몸에 생기가 도는 것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의 동극상의 주관처인 문협의 새로운 집행부(執行部)의 김영균 이사장과 그 밖의 간부들과의 만남! 이어 나의 자서전의 발간처인 ‘교학사’와 수필집의 발행처인 ‘신아 출판사’사장들과의 만남에서 모든 일이 이외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그뿐인가 전주(全州)에 있는 문학을 좋아 하는 주부클럽의 초청강의(招請講義)를 받고 전주로 내려가자, 35명의 주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의 강의는 뜻 밖에도 잘 풀려 나갔다. 그건 서울에서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음에서 오는 가뿐 함에서 일지도 모른다. 강의가 끝난 후 나는 그들 주부들로부터 싸인 공새를 받았다. 내가 서른 다섯명에게 싸인을 해 주기는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서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은 광주(光州) 문인들로부터의 초청을 받고 다시 광주로 달려갔다. 쌩판 초면인 14명의 후배 문인들 만나고 보니, 동생을, 여동생을 그리고 혈육의 아들, 딸을 만난듯 반가웠다. 거기서 나는 내가 걸어 온 외길이 결코 헛된길이 아니 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에 차 올랐다. 그리고는 서울로 올라 왔다.
내가 연출한 고대연극제(高大演劇祭)에서 내 연기지도를 받은 “운계계”와의 40년만의 만남등 불과 11일 간의 짧은 일정에 80명이 넘는 만남의 축복 속에 나의 한국 나들이는 끝자락에 접어 들고 있었다. 이러한 예상 밖의 만남은 한 말로 봄이 가져다 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비행기에 몸을 담아 실고 미국으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갈 때보다 한결 기운을 차린 내가 지긋이 눈을 감자, 나에게 들려준 두 아동문학 평론가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재철 박사가 들려준 말에 의하면 자기가 조사한 바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10작품이 실린 것은 성인 작가나 아동문학가를 통털어 내가 유일(唯一)하다는 사실과 아동문학가가 살아 생전에 전집10권과 수필집 4권 그리고 문학상을 제정한 사람도 나 뿐이라는 사실이었고 그리고 신현득 박사의 말에 의하면 (기차길 옆 오막살이))의 윤석중(과꽃)의 어효선, (보리밭)의 박화목등 동시인(童詩人)과 동화작가인 박경종과 박홍근드이 이 3, 4년 동안 모두 타계(他界)했기 때문에, 아동문학분야에서는 내가 원로작가(元老作家)라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여기서 나는 나에게 글 쓰는 탈렌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이만 먹은 원로작가이기 보다는 계속해서 멋진 글을 쓰는 작가이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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