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학년부터 준비하라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문화·게임·예술 산업이 각광 받는 시대로 예측한다. 이런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국 미국이 수익을 올리는 몇 안 되는 수출품들 중 하나는 ‘개념과 감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문화상품이다. 비디오 게임 산업과 영화산업이 좋은 사례다. 문화산업 성황에 따라 감정과 비언어적 표현을 가르치는 미술대학 또한 주목받고 있다. MBA의 인기는 점차 MFA(Masters in Fine Art·미술학 석사학위)에 밀리고 있다. 일부 진학지도 컨설턴트들은 “UCLA 예술대학원 입학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한다. 농경시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를 지나 개념과 감성의 시대로 접어든 21세기에 큰 몫을 차지할 미술대학의 이모저모를 내년 신입생, 편입생 원서 및 포트폴리오 준비시작 시기를 맞아 짚어본다.
포트폴리오 1~2년 반 전 작품 요구
준비 늦으면 대학가더라도 뒤떨어져
컴퓨터 그래픽 능력 반드시 갖춰야
■진화하는 미술대학
‘미술대=붓과 팔레트’란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실습도구 중 전기톱, 절단기, 드릴, 용접기 등 목공소나 건설현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공작기계와 전동공구도 동원된다. 작품 소재는 물론 전공 분야가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현재 대학들이 제시하는 전공과목들은 광고, 도해, 2차원 캐릭터 애니메이션, 3차원 필름과 비디오, 디지털 미디어, 그래픽 디자인, 패션 디자인, 수송수단 디자인, 토이 디자인, 가구 디자인, 건축, 미술역사, 미술이론 등 20여개가 넘는다.
미술대학 졸업 후 취업진로도 다양하다. TV광고 제작, 영화,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에서 미술 치료사까지 다양한 전문 직종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9일 미대 입학 학원 ‘비전 21’이 개최한 ‘미대 입학 설명회’에 강사로 참석한 마크 아비트라리오(미술학 석사)는 영화 공부를 마친 후 TV 방송물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독설 라인 “넌 해고야”(You’re fired)로 유명한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 그리고 한인 2세 권율씨 출연으로 한인들이 더욱 관심을 갖는 ‘서바이버’(The Survivor)를 편집했다.
패사디나 아트 센트의 몰리 라이언 입학사정관은 “수년전까지만 해도 전망 있는 직업 200개 리스트에도 들지 못하던 패션 디자이너는 요즘 10위권으로 초 급상승했다”며 “미술대학이 가진 가능성이 인정되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비전 21 학원의 앤지 김 원장은 “미술이란 나무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가지의 종류는 무한정”이라며 “한인 1세 부모들의 미술대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더 이상 재능 있는 학생들의 진로를 가로 막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가는 길
정식으로 학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금씩 의견 차이를 보인다. 미술학원에서 입시생을 지도하는 화가 강태호씨는 “보통 11학년 때 미대를 가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 많은데 8~9학년 때부터는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 입학 전 기초를 충분히 쌓지 않으면 진학 후 실력을 드러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강씨는 “늦게 학원에 찾아가 기초를 제대로 닦지 못하고 대입에만 급급하다보면 포트폴리오를 지도 선생의 솜씨를 빌려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경우 입학은 되겠지만 다른 학생들을 따라가지 못 한다”고 덧붙였다.
UCLA 예술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LA 시티칼리지에서 교수로 활동 중인 고경호(42)씨는 “미술에 대한 열정,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의지, 그리고 관찰력이 형성된 시기”가 미술 공부 시작 적령기로 든다. “보통 중학교 9학년 정도에 시작하면 좋지만 소질만 있다면 10학년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부모 욕심에 사고 정립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너무 일찍 그림 그리기를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조기 미술교육을 통한 자연스런 준비 방법도 있다. 앤지 김 원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레 그림그리기, 공작을 시켜 흥미와 잠재성, 창의력을 유도하는 미술교육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대학교에서 미술 전공을 작정했다면 9~10학년 때는 미술이론 기초와 관찰을 통한 학습을 시작해야한다며 “요즘 미술대학들이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컴퓨터 그래픽 준비는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명문 종합대 재능만 갖곤 못가
미술전문대는 성적보다 자질에 무게
전공분야와 맞는 지도교사 선정 중요
미술대학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지원자의 예술성을 표현한 포트폴리오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통상 원서 제출일로부터 1~2년6개월 전 완성시킨 작품들을 요구한다.
4년제 종합대학 중 UCLA, 코넬 등 명문대학의 미술과는 8~12점의 포트폴리오를 요구한다. 미술전문대학인 칼-아트는 무려 30점이 넘는 작품을 요구한다. 또 다른 미술전문대학 아트센터, 오티스, 프랫, 파슨 및 로드아일랜드의 RISD 등에는 통상 12~15점 이상의 작품을 내야한다.
작품 소재는 기초 실력을 검증받는 것과 창의성을 과시하는 것으로 나눠져 있다. 예를 들어 20점의 작품을 요구하는 대학의 경우 15점 정도는 지원자의 그림 그리는 기초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예술적 아이디어를 기초실력과 가미해 시각적으로 종합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또 학교에 따라 포트폴리오 전체를 슬라이드로 만들어 보내거나, 슬라이드를 보내되 일부는 실제 작품으로 접수시키도록 한다.
고경호 교수는 “한국 미대 입학의 초점이 ‘똑같이 그릴 수 있는 능력’을 재는 것이라면 미국 미대 입학의 기준은 보고 관찰한 것을 과감하게 개성적으로 그릴 수 있는 소질”이라며 “포트폴리오에서는 이런 능력이 부각돼야한다”고 설명했다.
체력 단련도 중요하다. 고 교수는 “밤새도록 작업하려면 무엇보다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다”며 “미술인들 사이에 ‘아트 근육’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몸 건강이 중요시 된다”고 말했다.
■종합대학 vs. 미술전문대학
미술과가 있는 4년제 종합대학과 미술전문대학의 신입생 전형에는 차이가 있다.
종합대학의 경우 지원자가 포트폴리오를 통해 보여주는 예술성은 물론 내신 성적, SAT점수 등 일반학과 수학능력도 함께 평가한다. 입학 허가를 받으려면 뛰어난 예술성은 물론이고 ‘신입생 수준’을 따라가는 학업성적도 요구된다.
올해 예일대에 입학한 김민지(17)양은 좋은 사례다. 눈에 톡 튀는 포트폴리오와 함께 2,200점대의 SAT 점수, GPA 4.3이 넘는 내신성적을 자랑하며 바늘구멍보다도 좁다는 명문사립대 입학 문을 당당히 통과했다. 김양은 미술사를 전공할 예정이다.
김양을 지도했던 비전 21의 라라 조 부원장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그림도 잘 그린다”며 “미술 실력이 아시아계 학생들을 좀처럼 넣어주지 않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USC 미대 입학에 실패한 B군(17)은 그 반대 사례.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미술 대회에서 수상도 많이 했다. 그러나 학업성적은 프로 뺨치는 미술 실력과 불균형을 이뤘다.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해 GPA가 낮았고, 선택했던 과목도 어려운 것이 없었다. SAT 점수도 그리 좋지 못했다. 대학 측은 “미술 실력은 인정되나 교육경쟁력이 신입생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불합격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반면 미술전문대학은 학업성적보다 예술적 재능에 더 무게를 둔다. 남가주에서 손꼽는 명문 미술대인 패사디나 아트 센트의 라이언 입학사정관은 “신입생 전형기준의 99%는 포트폴리오에 달렸다”며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환영하지만 학교는 일반과목이 아닌 예술을 공부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보통 다른 일반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중 미술과의 열애에 빠져 진로를 바꾼, 반 프로 수준의 20대 초반이 입학하는 명문이다 보니 예술적 자질에 더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술전문대학이 ‘그림만 잘 그리는’ 아이들이 가는 곳은 절대 아니다. 입시 학원가에 따르면 GPA가 최소 2.5 이상은 되어야 하고, 특히 이름 있는 미술전문대의 입학 안정권에 들려면 GPA 3.0, SAT 1,700점은 받아야 한다. 물론 우수한 포트폴리오는 기본이다.
조 부원장은 “미술전문대학은 성적이 높고 예술성도 뛰어난 학생들에게 장학금이란 선물을 준다”며 UC샌디에고, 카네기 멜론, RISD로 입학 허가를 받은 제니퍼 황양의 사례를 들었다. 명문 미대 프랫 측은 황양에게 10만달러가 넘는 장학금을 제시했다고 한다.
자신의 취향도 학교 선택에 중요하다. 종합대학은 문과, 이공계, 예체능 등 모든 학과가 있다 보니 학생 인구도 많고 재학생들의 성향, 취향, 목적도 다양하다. 반면 미술전문대학은 미술 전공자들만 모이는 학교다보니 종합대학보다 상대적으로 소규모다. 재학생들의 성향과 추구하는 것도 비슷해 동질감이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이며 종합대학교에서 제공하지 않는 세분화 된 전공분야도 많다.
<‘비전 21’이 개최한‘미대입학 설명회’에서 강사 마크 아비트라리오가 자신이 편집한 TV 방송물‘어프렌티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궁합 맞는 스승과 제자
교육예산 부족 때문에 공립학교들은 미술반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이런 실정은 미술 전공을 꿈꾸는 학생들은 학교 밖 전문가에게 지도를 받아야하는 현실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효율적이고 재미있는 미술 공부가 이뤄지려면 스승과 제자 간 영감이 오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순차적으로 반응하고 분석”하는 사회, 자연과학과 달리 미술은 종합적으로 사고하며 감정과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궁합이 맞지 않으면 좋은 결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또 미술대학마다 포트폴리오 요구조건에 차이가 있어, 진학희망 학교의 입학조건을 잘 알고 있는 개인 미술교사나 학원을 선정해야 한다. 한 본보기로 칼-아트의 캐릭터 애니메이션 전공을 선호하는 학생이 ‘산업 디자인’을 동부에서 전공한 교사로부터 지도를 받을 때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전공하지 않은 분야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며 “교사의 경력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경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