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동생들, 이현곤 사범 회갑 잔치 마련
버지니아주 퍼슬빌(Purcellville) 시의 경찰국장인 데릴 스미스씨는 공공연히 그를 ‘Second Father’라 부른다.
헌던 시장, 시의원들은 그를 만나면 입에 침을 바르듯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버지니아 주의회는 지역사회를 빛내고 봉사활동을 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1979년 헌던에 도장을 열어 1만명 가까운 제자들을 배출한 영원한 사부(師父) 이현곤 사범이다.
14일 제자, 지인들이 마련한 회갑연에 참석하는 이 사범의 삶과 성공 스토리는 태권도 후학들의 흔치않은 모범이 되고 있다.
47년 전북 고창에서 난 이 사범은 12살 무렵, 친척 형을 따라 태권도란 거친 무도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 용산에서 도장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재미를 붙이던 그는 76년 박찬학 사범의 초청으로 미국이란 신천지를 찾았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그를 기다린 건 실망과 좌절뿐이었다.
“거리는 영화처럼 아름답지도 않았고 말은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데다 문화와 풍습도 너무 달라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자신감마저 잃었습니다.”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캘리포니아와 뉴욕, 텍사스를 오갔으나 결국 발길은 버지니아 주로 다시 향했다.
태권도는 어려울수록 내면을 강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게 있었다. 그는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낮에는 도장 일을 도왔다.
79년 9월, 문을 닫으려는 헌던의 도장을 어렵게 인수했다. 희망은 전혀 없어 보였다. 관원은 15명뿐이었고 친구 부부의 단칸방 아파트에 한달간 얹혀살면서 시작한 길이었다.
“태권도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우선 태권도의 위력을 직접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찾아가 거리에서 격파시범을 보였습니다.”
수련생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삶의 의욕도 배가됐고 목표도 증진됐다.
안정을 찾으며 결혼을 추진 했지만 “태권도 사범에 귀한 딸을 선뜻 내주는 이는 없었다”는 그의 말처럼 태권도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낮을 때였다. 결국 다정하게 평소 대해주던 미국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의 다섯 동생들도 하나둘씩 미국으로 초청해 모두 태권도인으로 양성했다. 그런 후 멀리 노스 캐롤라이나의 도시들로 분가시켰다.
“도장 설립을 놓고 제가 사랑하는 이 지역 태권도인들과 갈등 빚는 걸 원치 않아 타주로 보냈습니다.”
지금 그의 6형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장을 모두 직영하는 태권도 가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시련은 그러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무도인의 생명인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참담함을 겪으며 태권도계를 떠나야 하는, 꿈을 접어야하는 순간도 다가왔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은 그는 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전단지를 뿌리고 수련시간에는 땀이 범벅이 되도록 가르쳤다. 때론 목이 잠겨 진통제를 먹어야 할 정도로 소리 높여 열성을 다했다. 영한사전을 끼고 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이 사범이 가르친 건 발차기만이 아니었다. 그의 수련생들은 모두 인성 함양에 비중을 둔 한국식 예절교육을 받았다.
“무도정신 수련의 비중을 높이고 제자들에 혹독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처음엔 어색해 하던 미국인 부모들도 자식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사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으며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도장 운영은 엉망이 되었고 부인과는 이혼의 위기까지 넘나들었다.
현실도피의 마지막 순간에서 그는 새로운 시작을 맹세했다. 도장을 재건하고 다시 땀을 흘렸다.
2004년에는 2만 스퀘어피트의 건물을 구입, 도장을 확장했다. 모두 3개의 수련장을 설치하고 애프터 스쿨도 운영했다.
현재 H.K. Lee 도장에는 600명의 수련생이 몸과 마음을 연마하고 있다. 도미 31년, 갖은 시련을 딛고 성공한 태권도인이 된 것이다.
이 사범은 개인 도장 운영 틈틈이 미국 태권도 발전을 위해서도 힘을 쏟았다. 미국 고단자 회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사범 면허증 제도 도입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또 버지니아주 태권도협회장, 워싱턴한인태권도사범협회장, 미 태권도협회 교육분과위원장등 직책을 맡아 태권도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했다.
호남향우회장, 북버지니아한인회 초대 부회장을 지내며 동포사회 봉사활동에도 적잖은 공을 들였다.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는 이 사범에는 할 일이 많다.
“정보화 시대인 만큼 태권도를 정보화,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수련생들에 대한 인성교육을 강화해 흔들리는 미국의 도덕관을 일깨우는 데 일조할 생각입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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