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의 꿈 접고
가족사랑 사회봉사 투자세상 열어가는
법인 설립 좋은 조건 리노에서
4대 7가족 오손도손 꿈 살리기
시에라 라이온스 클럽의 ‘한국의 밤’ 행사를 하던 날, 주류사회와 한인 사회의 수많은 사람이 즐겁게 식사하며 공연을 감상하고 수상자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었던 뒤에는 행사를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주최측이 있었다.
행사장 가장 자리에서 열심히 뛰어다닌 라이온스 클럽 회원들 가운데 가장 바쁜 사람이 회장인 제임스 임, 한국이름 임병민(사진)이다. 임병민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왔다. 이민 온 직후, 아버지께서 성경책을 피시더니 아들 셋을 위해 피터, 존, 제임스를 골랐는데, 그 중 막내인 그가 제임스로 당첨되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제임스는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했다. 3년간 Varsity 미식축구를 하고 12학년이었을 때 공격/수비 네바다주 대표선수로 발탁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네바다주 공격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주어지는 Decade Player를 수상하였다. 파워 리프팅의 네바다주 용상부문 기록과 대학 1학년이었을 때 자신의 몸무게인 240 파운드를 36회 벤치 프레스한 기록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았다. 졸업하고 제임스 임을 스카웃하려는 미식축구 명문대학이 줄을 섰지만, 형들이 타주의 대학에 있었고 자신은 리노에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네바다 리노 주립대학에 진학하여 미식축구를 계속했다.
리노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리노에서 제임스의 할머니, 부모, 아내, 딸, 아들, 4대 7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엄마아빠보다 증조할머니가 더 좋은 아이들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증조할머니 방으로 가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증조할머니도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만큼 정정하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보물 제 1 호인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어떤 직책보다 행복한 대가족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 몇 달 전부터 교회에 나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아내와 딸 (4), 아들 (2)과 함께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제임스 임은 어릴 때부터 월가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이 이어져 3년 전에 임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했다. 임 인베스트먼트는 한국 기업에 지분투자를 하고 여러 곳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동시에 한국 기업과 타지역의 한인법인이 네바다주에 이주하고 정착하는 일을 유도하고 있다. 네바다주는 다른 주에 비하여 법인을 설립하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을 뿐더러, 법인세 등 여러가지 세금 혜택을 볼 수 있다. 덕분에, 작년 한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제임스 임은 2002년에 새크라멘토 시에라 라이온스 클럽 회원이 되어 현재 회장이며, 미장로교 남선교회 (NCPMI) 한인대표, 전국남선교회 (NKPM) 재무, 샌프란시스코 지역 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오는 6월에 라이온스 회장 임기가 끝나면, 라이온스 클럽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부금을 유치하는데 노력할 계획이다. 라이온스 클럽은 3년간 부회장으로 봉사해야 회장이 될 수 있고, 준비기간이 긴 만큼 임원교체와 인수인계가 순조롭다. 임원이 아니더라도 멤버로 남아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있다. 라이온스 클럽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효율적이고 치밀한 체계와 운영이다. 봉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가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와서 자기 생활이 힘들고 바쁜 한인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려면 적극적인 자세로 확립된 체계를 가지고 치밀하게 낭비없이 운영되어야 한다.
리노에 살면서 I-80번 도로를 이용해서 베이 지역으로 출장을 다니다 새크라멘토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특히 Grace Kim 전 한인회장을 존경하여 딸 이름도 Grace라고 지었다. 그 후 새크라멘토의 한인회, 한미연합회, 한인합창단과 인연을 맺었다. 2년 전 한글학교가 세금보고 패널티 만불로 힘들었을 때 패널티를 무효화하고, 자비 만불을 들여 한글학교의 지난 서류들을 정리하고 전산화하였다. 또한, 작년 프렌즈오브코리아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대회를 개최하는데 자금이 부족하여, 한국에 있는 회사를 통해 천만원을 기부한 일도 있다. 그가 지난 7년간 새크라멘토 지역에 봉사하면서 받은 격려와 도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감사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다른 이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봉사하는 삶을 살 작정이다.
100년 전에 와서 힘든 삶을 살았던 이민선배들이 수입의 많은 부분을 독립자금으로 내놓으셨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겪었던 일제 강점기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2세들의 교육과 계몽에 더 힘써서, 부모 세대의 헌신을 발판으로 2세들이 우리를 지키고 사랑하는데 앞장서리라는 것을 믿고 희망한다.
<이현주 객원기자> hyunjudy@hanm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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