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일 트로바토레’
‘보헤미안 클럽’샌디에고 오페라 투어 동행기
“좋은 오페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클래식 음악 동호인회 ‘보헤미안 클럽’(회장 이주헌)이 지난 24일 샌디에고 오페라 투어를 다녀왔다. 4월4일까지 공연중인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관람하기 위한 단체여행. 대형버스를 대절해 50여명이 아침 일찍 떠나 한밤중에 돌아오는 특별한 나들이였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샌디에고까지 오페라 구경을 갈 일이 있을까? 꽃샘바람이 살짝 불던 지난 토요일, 보헤미안 클럽의 초대로 함께 오페라 투어를 다녀왔다.
<보헤미안 클럽 회원들이 오페라 감상에 앞서 백스테이지 투어를 갖고 있다. 오페라는 미리 설명을 듣는 것이 감상에 큰 도움이 된다>
토요일 오전인데도 샌디에고까지 내려가는 5번 프리웨이는 내내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요즘은 사정이 늘 이렇단다. 사람도 많아지고 차도 많아지고, 남쪽으로 놀러가는 일도 많아진 탓일까?
12시께 공원이 있는 휴게소에 내려 도시락을 먹고 ‘발보아 컬처럴 팍’(Balboa Cultural Park)에 도착한 것이 2시30분. 4시에 만나기로 하고 삼삼오오 흩어져 구경을 나섰다.
발보아 팍은 미국에서 가장 큰 문화공원으로 엄청나게 큰 부지에 15개의 뮤지엄과 퍼포밍 아츠 센터, 식물원, 동물원(San Diego Zoo) 등이 모여 있는 종합문화공간이다. 토요일 오후라 공원은 가는 곳마다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붐볐다. 컨템포러리 전시를 하고 있는 아트 뮤지엄과 애니 라이보비츠의 작품을 전시중인 사진전시관을 꼭 둘러보고 싶었는데 시간 관계상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4시에 모여 오페라 시빅 센터로 향했다.
버스에서 대충 ‘오페라 관람의상’으로 갈아입은 회원들이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5시반 공연장 앞으로 모였다. 무대 뒤 광경을 돌아볼 수 있는 ‘백스테이지 투어’와 공연 오페라에 관해 미리 공부시켜 주는 ‘렉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오페라 감상은 미리 공부가 좀 필요하다.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 가수와 유명 아리아, 오케스트라 연주의 흐름 등에 대해 미리 알아두고 공연을 감상하는 것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경하는 것은 천지 차이가 있기 때문.
백스테이지 투어에서는 이 오페라 5회 공연에 160여만달러가 들었다는 것, 무대 세트는 LA오페라의 것인데 LA, 토론토, 워싱턴 DC, 텔아비브 공연을 거쳐 이번 샌디에고 무대에 올랐다는 것, 132개의 의상 역시 LA 오페라의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드디어 7시. 감상 준비를 완료하고 객석에 입장, ‘일 트로바토레’에 빠져들었다. 2시간반여의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다들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 아침 일찍부터 설쳤으니 피곤할 만도 한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으니 진짜 오페라 팬들임을 확인하게 된다. 트래픽 없는 프리웨이를 달려 LA에 도착한 것이 밤 12시30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길고 보람 있었던 하루를 마쳤다.
보헤미안 클럽의 오페라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샌디에고 투어도 이번이 두 번째로 작년 2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니제티)를 보러 다녀왔고, 5월엔 오하이 페스티벌에, 가을엔 샌프란시스코에서 ‘리골레토’를 감상하는 2박3일 투어를 갖기도 했다. 여름철 할리웃 보울 연주장에 단체로 가는 일은 기본. 올해도 6월중 오하이 페스티벌 참가가 예정돼 있으며 할리웃 보울, 연말께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보헤미안 클럽은 성악가이며 배우인 이재우씨가 1988년 창설한 음악 동호인 단체. 오랫동안 클래식 애호가들의 친목모임으로 맥을 이어오던 단체였는데 2005년 이주헌씨가 회장을 맡으면서 활동이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회원들은 전한다. 바그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며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에 깊은 식견과 많은 경험을 가진 이 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친목 성격보다는 정기적으로 수준 높은 강의와 공연감상, 홈콘서트, 회원들의 음악발표회 등이 매달 이어지는 전문적인 단체로 거듭났다는 것.
또 작년 11월에는 보헤미안 파운데이션이라는 장학재단을 설립, 음악 전공자 4명에게 1,000달러씩 전달했으며 정트리오와 같은 재능있는 한인 음악인들을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보헤미안 클럽은 더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의 (323)842-4880(이주헌), (213)304-9947(민순호)
SD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
아름다운 아리아 많은
열정적 비극적 오페라
<샌디에고 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공연의 한 장면>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는 드러매틱한 스토리와 유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열정적이고 박진감이 넘쳐흐르는 비극적 오페라다. 스토리가 복잡하고 다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가 많기 때문에 베르디 오페라의 집대성이라고까지 이야기되어지기도 한다.
특히 집시들이 노래하는 ‘대장간의 합창’은 누구나 들으면 금방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이고, 귀에 익은 아리아로는 ‘세상은 혼자라네’와 ‘아 그대는 내 사랑’ ‘그대 미소는 아름답고’ 등이 있다.
15세기 스페인이 배경. 주요 등장인물은 음유시인이며 기사인 만리코(테너)와 그의 어머니 집시여인 아주체나(메조소프라노), 공작부인의 시녀장인 레오노라(소프라노)와 그녀를 사랑하는 루나 백작(바리톤) 등이다. 이 네명의 인물이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서로 친형제인 줄 모르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여 서로 라이벌이 되고, 복수를 하기 위해 결투와 전쟁을 치르면서 형이 동생을 죽이고 여자는 자살하고 집시는 처형되며 막을 내린다.
이 오페라에서 특별한 감흥을 주는 캐릭터는 집시 여인 ‘아주체나’. 자기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아이를 데려다 아들로 키우면서 복수의 칼을 갈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자기가 기른 아들을 잃고서야 복수를 완성하는 복잡한 비정의 여인이다. 메조소프라노 마리안 카네티의 공연이 워낙 탁월해 가장 박수를 많이 받았다. 그녀가 복수를 마치고 불속으로 걸어가는 비감 가득한 마지막 무대가 오래 가슴에 남는다.
샌디에고 오페라단의 ‘일 트로바토레’ 공연에 대해 이주헌 회장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공연이었다”고 흐뭇해 했다. 이 회장은 “4명의 주인공이 다 함께 잘하기가 쉽지 않은데 썩 훌륭한 조화를 보여주었다”고 평하고 “샌디에고 오페라단은 거창하지 않지만 항상 아담하고 실력있는 프로덕션을 만들기 때문에 연주를 보러 LA에서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