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탄신 132회 기념식이 한국을 비롯해 미주 곳곳에서 열렸다. 6년 전에 설립되어 그동안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시카고 한미 우남 기념 사업회(회장 이창융)에서도 “오늘의 대한민국 기초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박사를 재조명하고 후세에 그의 업적을 올바로 인식시키고 기리기 위해’ 26일 세노야 식당에서 20여명의 이사 등 이승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은 신영균 이사장, 제일감리교회 김광태 목사, 기독교방송국 김순철 국장(목사), 이창융 회장 등이 등단해 선구자로서, 신앙인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 위대한 정치가로서 ‘이승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다. 이승만은 선구자이다.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 이경선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승만은 일찍이 개화에 눈을 떠, 배재학당을 졸업한 후 모교의 영어교사를 했으며, 미국에 유학, 조지워싱턴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다. 그는 개화사상에 심취해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 간부로 활동하면서 ‘협성회보’ 주필로 날카로운 필치를 휘둘러 정부를 비판했다. 구한말 ‘펜’을 통해 봉건제국을 근대적 민주국가로 바꾸려했던 이 박사는 한국 최초의 언론인이라고 하겠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사회의식이 강했다. 그가 졸업한 배재학당은 기독교 명문교이며, 일찍이 YMCA에 관여해 후진을 양성하다가 ‘105인 사건’에 연루돼 체포되었고, 정부 전복 혐의로 사형선고(1898년)까지 받았으나, 민영환의 도움으로 7년 옥살이를 하고 감형되어 석방된다. 1918년 이 박사는 남녀공학의 한인기독학원을 설립했고, 미 감리교 선교부에서 나온 후 신립교회를 세워, 육영사업과 기독교 전도에도 앞장섰다.
이승만 박사의 트레이드마크는 독립운동가 이다. 그가 사회문제에 첫 눈을 뜬 것은 ‘명성황후 사건’이다.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살해 하자, 그는 이를 보복하기위한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키웠다.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 되었다. 이 박사는 초대 국무총리가 된다. 이 박사는 고난의 미국 망명시절 선진 학문을 배우면서 독립운동을 위해 싸웠다. 독립운동가로서 이 박사는 미 정계를 찾아다니며 임시정부 승인을 호소했고, T.D. 루즈벨트에게 일본의 한반도 침략 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건국의 위업을 달성한 이 대통령은 위대한 정치가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인물이다. 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건국은 지혜로운 영단과 애국심, 그리고 뛰어난 정치적 식견을 가진 이 박사가 성취한 업적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우남은 UN을 설득해 자유세계 16개국의 참전을 끌어내, 백척간두의 대한민국을 구해내고 자유를 수호했다. 그리고 전 후 부흥을 위한 원조를 이끌어 냈다. 통일 없는 정전을 반대했던 이 대통령은 반공포로를 석방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상 최대의 국난의 시기에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기초공사는 바로 이 대통령이 쌓아놓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 아!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공은 다 어디로 가고, 54년 사사오입 개헌, 60년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와 4.19혁명 등 그의 과만 부각되어, 건국 대통령을 폄하하고 매장하는 말만 무성했다. 혹자는 그 이유를 이 박사의 노쇠현상과 고집을 들추기도 하고, 또 한 쪽에서는 이 박사는 훌륭했는데, 간신들 잘못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찌 됐거나 공은 공, 과는 과로 평가 받지 못하고, 독재자로 낙인이 찍히어,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 하와이에서 쓸쓸한 생을 마감한 노 대통령의 만년은 우리의 슬픈 역사만큼이나 비감을 자아내게 한다.
알뜰하고 양심적이었던 이 박사는 돈에 욕심이 없었다. 점심은 국수로, 속옷과 양말은 으레 기워 입는 것으로 알았고, 한 푼이라도 아끼며 살았으니 스위스 은행에 저금은 고사하고 ‘비자금’도 있을 리 없었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보수와 진보, 기득층과 서민층, 어디에 속하냐에 따라 임의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누를 범해왔다. 이제 박정희 독재도 경제개발의 공로로 인하여 재평가 받고 있는 마당에, 탄생 132주년에 즈음 하여, 이승만의 공과도 재평가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 한다. 감정과 편견에 치우치지 말고 객관적이며 사실에 입각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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