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길원 논설위원
노스캐롤라이나 촌에 살고 있는 형님과 거의 매일 전화를 한다. 어제는 출판기념회에 갔다 왔다고 하니까, 시카고는 큰 도시라 ‘인물’도 많은 것 같다며 부러워하는 눈치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최창수 장로님이 붕정만리(鵬程萬里)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냈다. 근래에는 좀 적조해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하던 차에, 일전 두 내외분이 신문사를 직접 찾아와 초청장을 불쑥 내미시기에, 무엇인가 했더니 ‘최창수 장로 최효자 권사 회혼기념 및 제 1시집 출판기념 감사예배’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열 일 제쳐놓고 뜻있는 잔치에 참석했다. 우선 반갑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형님이 나를 부러워하듯이 나는 최창수 시인이 부러웠다. 세상에 태어나 환갑을 맞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60년을 해로했다니 부럽고, 팔순이 넘어 소년시절부터 꿈이었던 시인이 되었으니, 부러웠다.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드리며 즐거운 자리를 마련한 자식들의 효성과 가정의 화목한 모습이 더욱 부러웠다.
“누가 나를 움켜쥐고 물어다 내려놓았는가? 젊어서는 누에치기, 늙어서는 벌치기로 소일해 왔었는데, 그들의 삶의 지혜와 나의 자연에 대한 경이가 내 영혼의 불꽃임을 감출 수 없다” 최 시인은 한국에서 미국까지의 머나먼 길의 붕정만리를 이렇게 설명 한다. ‘붕정’의 주체인 ‘붕새’는 날개의 길이만도 삼천리가 되고, 날개를 한 번 치면 구만 리 장천을 날아간다는 장자가 상상한 새라고 한다.
1926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출생한 최창수는 상주 농잠고교를 졸업하고, 1948년부터 교편생활을 했다. 경기도 연천군서 교감으로 근무하다, 1976년 10월 선친의 뜻을 따라 미국에 이민 와, 지금 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고향 땅에서 누에치기 하던 젊은이는 뒤 늦게 50이 다 되어서 붕정만리 타향 땅에서 벌치기 하면서 생활 했다. 그는 일찍이 아동문학가 윤사섭, 시조 문학가 정완영, 시인이자 조각가인 홍성문 등 추풍령 산악인들과 첫 문학 활동을 했다. 이들 옛 문우들은 최 시인의 이번 시집 출판에 즈음하여 아낌없는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대구 대명동 앞산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던 추억을 아쉬워하는 홍성문(전 영남대 미대학장)은 팔순이 넘어 시 창작을 하신다는 대기만성에 놀라울 뿐이라고 기쁨의 편지를 보냈다. 문학평론가 홍문표 시인의 시평은 붕정만리 만큼이나 자아와 역사와 우주 자연을 꿰뚫는 혜안이 기가 막힌다. “꽃들이 가는 곳에/ 황사가 인다.---나의 걸음의 행보가/ 구천 구백 구십 구리/남은 이정표가/ 노을 속에서/ 웃는다” 홍 시인의 ‘붕정만리’ 평을 음미해 보자 “꽃이 가는 길은 화려한 길이고 성공적인 길이다. 그런데 그 길에 황사가 인다는 것이다. 호사다마라 했다. 밝음이란 어둠의 뒤쪽에 있는 것, 세상만사가 음양의 대립 속에 공존한다. 우리들 인생의 여정도 그렇다. 성공이 있는가 하면 실패가 있고, 기쁨이 있는가 하면 슬픔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생길은 오가는 손길이 있고 옷깃의 스침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관계는 골육이다. 골육이야말로 지상의 끈질긴 인연이다.---”
최 시인의 처녀시집에 수록된 40여 편의 시 중에서 시어(詩語)가 아름다운 시 몇 편을 더 읽어보자. 봄의 혁명은/ 불안한 꽃들의 겨드랑이에/ 초록 크레용으로 밑줄을 긋는다, (2006년 해외 문학 당선작-춘아)
저기 꽃들은/ 마냥 웃고만 있는 것은 아니니/ 숲 속을 빠져나가는 바람 속에/ 몰래몰래 한숨을 털어 놓고/ 저기 언덕배기 화석으로 남아/ 으르렁거리는 싸움의 흔적/ 모진 역사의 어둠에 운다. (꽃길)
농부는 곧/ 빛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의 재고량을/ 땅이 주는 타고난 재능과/ 연모에 담겨 있는 감성으로/ 여름 이랑신부의/ 행렬을 눈가에 그린다.(빛과 흙)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팔순의 소년, 김상용의 시(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처럼 ‘왜 사냐건’ 물으면, 빙그레 웃을 분, 법 없이 살 사람, 100세에도 청춘으로 죽을 수 있는 시인 최창수, 쌈지 돈 꺼내서 출판비에 보탰다는 부인 최효자 권사에게 60년만에 처음이자 최대의 선물을 안겨드렸다.
최창수 시인님, 민족시인 박두진은 일찍이 시란 “본질적으로 진실이며 선이며 아름다움이며 신의 말씀 일수 있는 것이다”라고 갈파 했습니다. 러시아의 우즈베키스탄 말로 시인은 ‘가슴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대기만성의 노 시인님, 우리 영혼에 주름이 지지 않게, 우리 곁에 오래 사시어 계속 가슴으로 말해 주시고, 인생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터득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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