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의 박사 특강
미술은 너무 퇴폐해져서…, 목적이 성취돼서… 죽었다
#미술 종말론
“이제 미술은 죽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미술의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극명하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미술이 너무 나빠져서 더 이상 예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끝났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미술이 추구하던 목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끝났다는 주장이다. 전자는 현대 미술계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고, 후자는 미술사적 흐름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둘 다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데이빗 커스핏의 주장
아무것이나 예술 흉내 형편없는 키치로 전락‘미술 이후’만 있을뿐
●아서 단토의 주장
‘자기이해’라는 목표 달성 현대의 미술활동은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
미술이 나빠져서 죽었다
철학박사이며 미술사박사인 심리분석가 데이빗 커스핏(David Kuspit)은 그의 책 ‘미술의 종말’(The End of Art)에서 미술이 퇴폐하여 형편없는 키치(kitsch)가 돼버렸다고 말한다. 미술의 개념과 테두리가 점점 넓어지고 확장되다가 급기야 팍 터졌다는 것이다. 둑이 터지면 홍수가 나고,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이 귀해지듯이, 미술이 터지니까 미술이 없어졌다고 그는 보고 있다.
커스핏은 미술이 터진 시점을 1917년 마르셸 뒤샹의 ‘샘’(Fountain-남자용 변기의 설치작품·지난 주 기사 참조)이 나온 때로 보았고 이러한 미술을 ‘포스트 아트’(post art)라고 명명했다. 아트가 아닌 포스트 아트, 미술이 아닌 ‘미술 이후’라는 것이다.
<미술 종말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앤디 워홀의‘브릴로 박스’. 수퍼마켓에서 파는 가루세탁비누통을 잔뜩 쌓아놓은 이 작품 이후 미술과 미술 아닌 것의 경계가 없어졌다고 미술 종말론에서는 보고 있다>
앤디 워홀이 1969년에 발표해 대단한 화제를 모았던 ‘브릴로 박스’(Brillo Boxes)가 포스트 아트의 좋은 예, 가루세탁비누 통을 한구석에 잔뜩 쌓아놓은 이 작품을 한번 생각해 보자.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닌 누구나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세탁비누를 갖다놓고 작품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과연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상품인가? 미술과 미술 아닌 것의 경계가 없어지고 아무 것이나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미술이 종말을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커스핏은 포스트 아트의 특징으로 ▲더럽고 추하고 잔인한 것, 야비하고 저속한 것들을 예술인 양 고양시키고 이를 뒷받침할 이론을 완벽하게 수립한다. ▲숭고한 예술정신과 열정보다는 장난기와 조소와 냉소로 작업한다. ▲상업적 이윤과 사회적 인기가 유일한 목적이라 인간의 광기를 이용한 작품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머리가 좋을(clever) 뿐이지 창조적인(creative) 사람들이 아니다. ▲오락과 상업적 가치를 더 중요시 한다는 것 등을 꼽았다.
<포스트 아트 시대의 희망으로 비쳐지는 작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자화상’(1985). 정신분석학자 지그문드 프로이드의 손자이기도 한 루시안은 현시대 살아있는 사실주의 화가들 중에서 최고라고 평가받는다>
목적을 달성해서 죽었다
철학자이며 미술비평가인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오랜 미술사에서 인류가 추구해온 목적이 다 성취됐기 때문에 미술이 죽었다고 단언한다.
인류의 문화가 시작된 것은 BC 8000년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이다. 동굴에서 나온 인간이 유목생활을 하다가 농사를 짓고 정착한 후 상업, 공업, 기술산업 시대를 거쳐 정보와 IT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술사의 굴곡 가운데 이어져온 미술의 목표를 단토는 ‘자기 이해’(self understanding)였다고 보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다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미술사를 돌아보면 미술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모방설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그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은 사진기술이 나오면서 달라져 이후론 눈에 보이는 사물보다는 화가가 자기감정을 전달하는 표현주의(expressionism)가 생겨났다. 인상주의를 거쳐 1906년 포비즘이 나오고 모더니즘이 시작된 이후엔 수많은 ‘주의’(ism)가 난무하면서 무려 100여개의 미술사조가 등장했으니 이제 ‘자기 이해’를 표현하려는 미술의 목적은 충분히 성공적으로 완성됐다고 그는 본다.
단토 역시 똑같은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Brillo Boxes)를 예로 드는데 보는 관점은 커스핏과 조금 다르다. 그는 이 작품을 미술이라기보다 의미가 부여된 철학의 대상으로 보면서 이처럼 현대의 미술활동은 철학적인 문제가 돼버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제 미술은 없고 미술은 죽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데이빗 커스핏이 포스트 아트의 대표작으로 본 다미엔 허스트의 ‘성모’(The Virgin Mother). 허스트는 이외에도 복제동물이나 잘라진 동물의 신체부위를 포르말린에 넣는 등 잔혹하고 엽기적인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다>
미술 종말론에 동의하는가? 개인적으로, 이것 역시 수많은 이즘 가운데 하나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진다 해도 인간은 인간이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없어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의 종말은 인류 종말의 날에나 오지 않을까?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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