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인생 60년 안영일 화백
화가인생 60년 미국데뷔 50주년
물과 빛- 황홀한 만남이 열린다
중학교때 국전 최연소 특선
대학때 벌써 뉴욕서 개인전
미 국무부 선정 ‘미술대사’
그림밖에 모르고 산 그가
오랜만에 갖는 큰 전시회
30일~내달 21일 샌디에고 CJ갤러리
1957년 서울 미대 4학년이던 청년 안영일은 뉴욕 월드 하우스 갤러리의 초대로 미국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한국에 제대로 된 화랑 하나 없던 시절, 유화 한 점을 그리려면 어렵사리 일본에서 캔버스와 물감을 구해다가 아끼고 아껴가며 쓰던 시절,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 미국에서 초대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 일이었을지, 상상하기조차 버겁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천재화가’란 호칭으로부터 미국무부가 선정한 ‘미술대사’의 영예까지 ‘최초’와 ‘유일’의 수식어가 수없이 붙어다니는 안영일씨가 오랜만에 큰 전시회를 갖는다. 화가인생 60년, 미국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초대전, 3월30일부터 4월21일까지 샌디에고의 CJ갤러리가 그 무대다.
안영일씨의 특별한 화력은 이제 너무 많이 알려져 화단에서는 유명한 스토리다. 네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중학교 다닐 때 국전에 특선한 최연소작가, 그의 재능을 알아본 미국인들의 후원으로 그림을 그렸고, 청년시절 그림만 팔아서 살 수 있었던 유일한 화가였다.
미대사관이 실시한 한국화가 심사전에서 미국무부 파견 심사위원에게 뽑힌 것이 첫 뉴욕 초대전을 갖게된 계기. 그가 유일했고 당연히 최초였다. 이어 59년에 시카고에서, 6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잇달아 개인전이 열렸으니 아마 이것 또한 어떤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1966년 미국으로 이주하자마자 주류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되었고 그때부터 근 20년간 베벌리힐스의 화랑가에서 어떤 미국 화가보다도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리고, 그림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로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86년이 돼서야 비로소 한국화단에 알려졌으며, 이후 주류화단과 한국화단을 오가며 작품을 소개해온 안씨는 2002년 미주 한인작가로는 최초로 미연방 국무부가 선정하는 ‘미술대사’로 위촉돼 2005년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 소재 미대사관에 작품이 전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토록 화려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리만큼 조용하고 겸손한 안영일씨는 장인 중의 장인, 화가 중의 화가, 오로지 그림밖에 모르고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다. 60년동안 그렸으면 이제 좀 쉬엄쉬엄 할 법도 하건만 요즘도 하루 12시간씩 서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물 시리즈 하나 완성시키려면 3~6개월을 매일 꼬박 열두시간씩 캔버스 앞에 붙어 작업해야 한다”는 안씨의 말에 아내 황영애씨는 “왼종일 사닥다리 위에 올라 앉아 일하는 날은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붓는 일도 다반사”라고 혀를 찼다.
<‘물 시리즈’ oil on canvas>
리셉션은 30일 오후 7~9시. 갤러리 관람시간은 화~토요일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CJ 갤러리의 주소와 전화번호 343 Fourth Ave. San Diego, CA 92101 (619)595-0048
“바다에서 본‘죽음의 공포-생명의 환희’…
그후 바다는 내 속에 살았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던 1983년 7월이었다. 그날도 나는 습관처럼 작은 보트에 스케치북과 낚싯대만을 싣고 샌타모니카 비치를 떠나 수평선을 향해 출발했다. 고기를 잡을 생각도 없이 그저 파도에 떠밀려 흘러가고 있는데 갑자기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있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가 되었다. 자주 바다에 나오지만 이날같이 짙은 안개는 처음이었다. 나는 방향을 잃고 보트의 엔진을 끈 채 파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짙은 안개는 그대로 무게가 되어 가뜩이나 답답한 나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리고 형언할 길 없는 두려움이 나를 휩쌌다. 죽음은 손에 닿는 곳에,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았고 안개에 갇혀서 하늘과 바다 사이에 홀로 떠도는 외로움이 가슴에 사무쳐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원 같이 느껴진 수렁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고 극도의 공포감과 허망함으로 먼지처럼 작아져서 세상 밖으로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나는 한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내가 눈을 감았다가 뜬 것일까, 아니면 한 순간에 안개가 깨끗이 걷힌 것인지, 내 존재는 확 트인 공간에 나와 있었고 파도는 온갖 색깔의 진주알을 확 뿌려놓은 듯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내 가슴은 뻥 뚫려 나갔고 형언할 길 없는 환희가 나의 전신을 휩쌌다.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고 파도는 파도 대로 매순간 오묘한 빛의 율동으로 출렁이고 있었는데 단 한번도 같은 빛깔과 몸짓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나는 한없이 겸허해져서 떨리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바다의 신비로운 모습을 가슴 속 깊이 새겨넣었다. 그날부터 바다는 내 속에 살고 있었고, 나는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안영일씨가 자신의 ‘물 시리즈’(Water Series)에 관해 1999년에 쓴 글.
이렇게 탄생한 물 시리즈가 이번 초대전의 주제다. 작가가 20여년간 집중해 온 물 시리즈는 그의 예술세계를 가장 깊고 넓고 세밀하고 화려하게 표현하는 우주의 화면이다. 무한공간에서 물과 공기와 빛의 입자가 춤추며 빚어내는 색채의 유희, 켜켜이 숨어있는 색들에서 작가가 사고하고 명상하고 열망하는 삶의 넓이와 깊이와 율동을 읽을 수 있다.
샌디에고의 CJ 갤러리의 그 넉넉하게 빛나는 공간에서 안씨는 그동안 너무 커서 보여주지 못했던 대작(90x80인치) 8점과 중간 사이즈 8점, 그리고 오랜 세월 그려온 재미있는 반추상 작품들-우산, 새, 음악가, 선셋 시리즈도 보여준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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