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연 2주에 걸쳐 미국의 보수/우파 정당인 공화당의 위기를 커버 스토리로 내보내고 있다. 지난 주(3월 19일자)에는 체니의 우울해 보이는 사진을 (the vice President who is under a cloud) 그리고 이번 주(3월 26일자)에는 공화당 전성기의 상징인 레이건 전 대통령의 눈물 흘리는 장면을 잡지의 표지에 올렸다 (How the Right Went Wrong). 결국, 9/11 테러 이후 보수 세력을 집결시켰던 이라크 전쟁이 역설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의 발목을 잡고 분열시켰다는 분석이다 (Conservatives are divided on the Iraq war).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우 무력의 사용 없이 소련을 붕괴시킴으로써 냉전을 종식시킨 것과는 달리 부시행정부는 스스로 악의 축(the axis of evil)으로 규정한 북한의 핵 문제와 이라크 전에서의 지지부진으로 국내외적인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지난 가을의 중간선거 결과는 보수당인 공화당을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했다.
사실,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좌우의 극단적인 대립이 존재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합의에 기반을 둔 이상적인 민주사회라고 자부해 왔다. 미국의 양대 가치는 개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였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미국은 평등권, 사유재산, 인권, 언론자유, 공화제 등의 공고한 제도적 기반을 다져왔다. 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미국에서 세속적 성공을 위한 근면, 절약 그리고 도덕적 생활을 강조하며 진보와 변화의 정신적인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결국, 이러한 국민적 합의하에 미국 내에서는 좌파의 논리는 황야의 외로운 울부짖음 정도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성취는 스스로의 경직화 과정을 밟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의 자유 방임에 기초한 과잉 자본주의는 결국, 유래없는 1929년의 대공황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식 시장의 붕괴는 결국 누적된 기본 경제 구조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개인 소득의 3분의 1이 전 인구의 5퍼센트에게 돌아갔다. 결국 루즈벨트는 정부 시책의 실패를 시정하기 위해 극단적인 자유방임제와 국가의 경제 정책의 적극적인 개입 사이에서 뉴딜 정책을 통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다. 1937년 루즈벨트는 그의 두번째 취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기억에 남는 말을 한다. “나는 전 국민의 3분의 1이 빈약한 주거와 빈약한 의복과 식사를 하고 있음을 압니다 (I see one-third of a nation ill-housed, ill-clad, ill-nourished.). 결국, 2차 대전까지 지속되는 경제적인 파탄 상태는 이상주의적인 자유주의 국가에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대립의 토양을 마련하는 구체적인 계기가 된다.
50년대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는 소위 좌파 진영은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수많은 반문화 집단과 더불어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한다. 50년대에는 의식의 혁명(a revolution in consciousness) 을 요구하는 비트족(The Beats), 60년대에는 히피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출현하여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에 대항하며 사랑 그리고 동양의 여러 종교를 통해 새로운 경험과 감수성을 태동 시킨다. 또한 60대부터 몰아닥친 반전의 물결과 함께 인권운동가, 반전주의자, 흑인 민족주의자 등의 가세로 시대적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70년대에 베트남에서의 철수는 미국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80년대 레이건의 등장으로 다시 미국은 보수주의 깃발 아래 뭉치게 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9/11 이후 하나가 되었던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봉착했다. 결국, 미국의 현대사는 전통적으로 애국심과 청교도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우파를 대변하는 공화당과 새로운 시대적 가치관을 모색하는 진보/좌파를 대변하는 민주당과의 구심력(求心力)과 원심력(遠心力)의 대립 속에서 엇물려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국민들에게는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구분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어느 국가에서나 상황에 따라 정권은 바뀌어 간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공허한 정치적 수사(political rhetoric) 보다는 실질적인 변화의 내용과 결과에 주목한다. 다민족국가인 미국의 유권자들 또한 그들의 실리에 의해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 여기에 바로 모든 정치인들의 고민이 있다.
이종덕 객원기자/jdlc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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