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있을 때 마다 부시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프레도는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입니다”
프레도는 부시가 즐겨 부르는 앨버토 곤잘레스 법무장관의 애칭이다.
곤잘레스는 자동차도, 전화도 없는 가난한 히스패닉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모 4명 중 3명은 불법이민이었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을 간신히 마친 정도였다. 공사판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삼촌이 지은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에서 8남매가 붐비며 어렵게 자라면서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은 교육뿐임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총보다는 말로 싸우는 게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라이스대학을 졸업한 후 하버드 법대에 진학했다. 고교시절 라이스대학 풋볼경기장에서 음료수를 팔며 학비를 벌었던 그는 후에 라이스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감격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첫 실현이었으니까.
졸업 후 휴스턴의 유명 법률회사의 첫 히스패닉 변호사로 활약하던 그는 1995년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막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된 조지 W. 부시가 자신의 법률고문이 되어달라고 청했을 때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선히 응했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전혀 다르게 성장했지만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친구’가 되었다. 부시의 곁을 지키며 주 총무처 장관, 주 대법관을 역임했던 곤잘레스는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를 따라 텍사스 사단의 주요 멤버로 백악관에 입성한다.
9.11이후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대 테러전쟁의 와중에서 대통령 권한 확대에 앞장섰던 그는 마침내 히스패닉계로는 미 최고위직에 오르게 된다. 연방 법무장관 취임 - 더운 물도 안 나오는 오두막집 가난한 이민 노동자의 아들이 미국의 법과 정의를 지키는 수장이 된 것이다. 눈부신 아메리칸 드림 실현에 히스패닉뿐이 아니라 모든 소수계가 함께 기뻐했던 것이 불과 2년 전이었다.
이 자부심, 명예가 한꺼번에 추락할 위기에 처해졌다. 연방검사 무더기 해임 파문이 확대되면서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까지 곤잘레스 장관 해임을 잇달아 촉구하고 있다.
지난 연말 법무부가 8명의 연방검사를 해고한 사건의 진전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연방의회는 정치적 압력에 의한 부당 해고의 기미가 역력하다며 청문회와 막후 회의를 거듭하고 법무장관의 비서실장이 사임했으며 백악관과 법무부 사이를 수없이 오고간 이메일 사본들을 포함한 3,000페이지에 달하는 법무부 문서가 의회에 제출되었고 그 와중에서 법무장관을 비롯한 고위관리들의 거짓말(혹은 기억상실증), 백악관의 깊숙한 개입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아직은 아무런 위법행위도 발견되지 않았다. 연방검사 해고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면 으레 있어온 일이다. 클린턴도 취임 후 93명 전원을 교체했다. 관계학자들이 지적하는 이번 해고사태의 문제점은 시기와 상황이다. 검사들이 일단 일을 시작한 후인 정권 임기 중간에 무더기 해고는 이례적이다. 또 중간선거 직전 이번에 해고된 한 검사에게 공화당 중진들이 전화를 걸어 부정 혐의가 있는 민주당 후보를 왜 빨리 기소 안하느냐고 따지듯 물었던 행위는 정치적 압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는 이제 법무장관을 넘어 백악관을 정조준하며 해임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되는 칼 로브를 청문회에서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부시도 법정투쟁을 하더라도 그건 못한다고 정면 선언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의회의 헌법상 권한을 따지는 길고 소모적인 법정 싸움은 어느 쪽에도 득이 될 게 없다. 그보다는 밀고 당기는 정치적 대결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기세등등한 민주당 의회에 비해 레임덕 부시는 밀릴 수밖에 없다. 무엇을 버려야 하나. 칼 로브는 절대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곤잘레스일까. 부시가 강력한 신임을 거듭 확인해도 후임자 명단까지 꼬리를 달고 곤잘레스 사임설은 계속 맴돌고 있다.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가 추산한 21일 현재의 사임확률은 ‘55%’다.
곤잘레스의 가장 큰 과오가 무엇이었을까. 관타나모수용소 죄수 고문 허용, FBI의 부당 개인정보취득에서 이번 해고사태까지 그가 의회의 눈밖에 난지는 오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부시와의 관계일 것이다. 부시에 대한 그의 ‘충성’은 이미 정평 나있다. 그의 롤 모델은 부시이며, 말없는 그가 속내를 털어놓는 단 한사람이 부시다. 그러나 이 단단한 끈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법무부인지, 백악관인지 모르겠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미국의 법무장관’아닌 ‘부시의 개인변호사’에서 못 벗어났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장관 취임선서와 함께 해야 했던 ‘충성’의 우선순위 바꾸기를 못한 것이다. 부시보다는 법 수호에 충성했더라면 결국은 지금 부시를 위해서도 훨씬 좋았을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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