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수선화여!
문학 동아리 사이트 편지함에서 ‘고도원의 아침 편지’를 읽고 있는데 네모난 창이 떴다. 후배에게서 날아온 쪽지였다. 오랜만에 낯익은 이름을 대하니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두어 달 전에 그가 올린 글에서 심장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개인적으로 안부를 묻지 못했다. 자그마한 키에 야무져 보이면서 동안인 그는 한때 일간지 기자로서 그가 쓴 르포소설이 영화화되기도 한 필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게 간단히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건강에 유의하라는 말과 함께 요즘 나도 건강이 좋질 않아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다고 회신을 보냈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아, 그러세요. 건강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선배님하면 언제나 수선화가 떠오릅니다. 인사동에서 한번 뵙고 나서 중년의 나이에 아, 이렇게 살아가는 분도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가까이 계셨다면 술 마시자고 전화를 자주 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빌겠습니다.”
나는 후배의 짤막한 글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오래도록 이 감동을 간직하고 싶었다. 몇 해 전, 인사동에서 만날 때 그는 소설 습작을 하는 후배 한 명과 함께 내가 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장미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왔었다. 사실 그와는 그때가 초면이었다. 동아리 5년 후배다보니 재학 중엔 활동을 같이 하지 못하고 졸업 후 그가 동문회 회장단 총무로 봉사할 때 동문 홈페이지에서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알게 되었다.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는 선배다 보니 차라리 멀리 떨어져 아쉬움을 남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신체의 일부분이 한꺼번에 나를 배신해 투병 중인데다, 허리까지 다쳐 몇 달째 직장에 나가지 못하고 병원과 물리치료 하는 곳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약 때문에 입맛이 없어 잘 먹지 못하고, 기운이 딸려 겨우 밥이나 해먹었던 탓인지 몸무게가 13파운드(약 6kg)나 빠졌다. 그러니 후배가 이즈음의 핼쑥한 내 얼굴을 보면 아마도 수선화보다는 할미꽃을 연상하지 않을까 싶어 혼자 피식 웃는다.
봄이면 우리 집 언덕배기에 줄지어 수선화가 피어난다. 수줍음을 머금은 듯한 얼굴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과 은은한 향기는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매혹적인 장미도 부럽지 않은 듯 한껏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노란 꽃송이는 화사하면서 우아하고 귀엽고도 앙증맞기까지 하다. 게다가 살짝 옆으로 고개 숙인 듯 다소곳한 모습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허함이 배어나는 듯하다. 황금빛의 밝은 얼굴과 아침 햇살 같은 해맑은 미소는 봄날의 정취와 어우러져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선화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수선’이라는 말은 생장에 많은 물이 필요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꽃말은 자존, 고결, 그리고 탄생일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나 자만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꽃은 향유를 만들어 풍을 제거하며 비늘줄기는 거담제, 백일해 등에 약용으로 쓰이고 생즙을 갈아 부스럼을 치료한다고도 한다. 아름다움을 선사할 뿐 아니라, 약리작용까지 하는 꽃들을 바라보면 문득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이 무색해지면서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자문해 본다.
흔히 청초하고 우아한 기품을 지닌 여인을 비유하기도 한 수선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인들의 시정을 자아내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수선화’란 시로 인해 그 꽃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청마 유치환도 같은 제목의 시에서 이 꽃의 청초한 자태를 노래했다. 조선 말기의 서화가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옛 선비들도 수선화에 대한 사랑이 각별해 그 꽃의 그윽한 향기에 취해 글을 짓고 묵향에 젖었다고 한다.
그런 품격 높은 수선화에, 나를 비유하다니 그 찬사에 슬며시 부끄러워진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였다. 실은 난 그 꽃처럼 청순하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게다가 향기도 나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고 수선화를 떠올린 후배로 인해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춰진 또 다른 나를 다시금 비추어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고결’이란 꽃말 대신 ‘자만’이란 꽃말이 내 곁에서 맴도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문득 하늘이 노랬던 그 날이 떠오른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바퀴달린 의자에 걸터앉았다가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그 의자가 뒤집히면서 튕겨나가 등골뼈를 치는 등 야단스런 일련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기 전까진 스스로를 차분한 성품이라고 자부해 왔었다. 그만큼 내 자신에게 자만했던 것이다. 늘 나긋나긋하게 돌릴 수 있으리라 여겼던 허리를 다친 날부터 나는 몸의 균형을 잃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으로 절절 매야했다. 된통 다치고 나서야 자신의 착각이요, 자만해선 안 된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의 의미와 가치는 심한 고통 속에서 재발견되지 않나 싶다.
이른 봄,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소리 없이 피어나는 수선화를 보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던 내가 이젠 그 앞에서 침잠하게 되는 것이다. 겉모습만이 아닌 내면까지도 고결하고 우아한 수선화의 이미지를 감히 닮을 수만 있다면 나는 사랑스런 그 꽃을 닮고 싶다. 그런데 수줍은 듯 다소곳한 수선화의 청초한 자태와 ‘자만’이란 꽃말이 대비되면서 자꾸만 내 머릿속을 맴돈다. 오오, 수선화여!
<오정자>
약력: 한국수필 신인상, 미주중앙신인문학상 당선, 제4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부문 입상, ‘마당 넓은 집’, ‘유리병 속의 시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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