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의 박사 특강
아방가르드-키치 갈수록 구분 모호
‘키치=싸구려 문화’자극적이고 이해쉬운
저급예술을 지칭 현대엔 정의 달라져
고정관념 깨는 전위예술로 영역확대
‘키치’(Kitsch)는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자주 쓰이는 용어로 저속한 작품, 싸구려, 쓰레기 문화를 말한다. 천박하고 저질이며 진짜가 아닌 가짜 혹은 모조품을 말하는데 여기에 윤리적인 판단까지 가해 ‘나쁘다’는 평가가 내려진 부정적인 용어다.
19세기 말 독일 뮌헨의 예술가들이 처음 사용한 미술용어로, 영어의 스케치(sketch) 혹은 독일어의 Kitschen(싸게 만들다)에서 유래했다. 당시엔 상류사회를 향한 중산층의 동경심을 만족시켜줄 저속한 미술품이나 대량생산 복제품의 비판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때로 전위 미학의 한 형태인양 잘난 체 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대중 취향에 아부하는 천박하고 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위(Avant-garde)가 아니라 오히려 후위(Rearguard)라는 혹평도 듣는다.
전위 즉 ‘아방가르드’는 본래 전투할 때 선두에서 돌진하는 부대를 일컫는 군대용어로 미술에서는 선구적 예술가를 지칭한다. 반면 후위는 미국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만든 단어인데 아방가르드를 따라가는 대중의 뒤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들로 뒤처리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말하자면 대중이라는 대상을 가운데 두고 전위는 대중의 기호와 관계없이 앞장서 가는 반면, 후위는 대중의 입맛에 아첨하며 뒤따라가는 사람들이다.
키치적 작품은 1917년 마르셸 뒤샹의 ‘샘’이 대표적이다. 남성용 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전시하면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 큰 물의를 일으켰다. 현대에 와서는 1974년 주디 시카고가 거대한 식탁위에 여자의 성기들을 올려놓은 ‘디너 파티’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신디 셔먼의 사진작품들, 앤디 워홀의 실크프린트 복제품, 에릭 피셔, 제프 쿤스 등의 작품을 키치로 본다. 최근에는 에릭 오필리가 코끼리 분뇨로 칠한 ‘성모 마리아’를 발표함으로써 세계적인 물의와 비난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사회적 역사적 파장과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미학적으로는 예술이라 볼 수 없는 것들을 키치라 한다.
키치를 규정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1939년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키치라고 폄하한 것들은 상업미술, 광고, 할리웃 영화, 탭댄스, 재즈, 통속소설 등이었는데 이중에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이 들어있다. 또한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말러의 5번 교향곡의 일부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 중 한부분도 키치라 했으니 지금의 잣대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키치의 특징은 자극적이고 감상적이며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한번 보았을 때 쉽게 감정적으로 격화되는 작품, 감성에 호소하고 강요하는, 쉽게 말해 신파조의 상투적이고 인공적이며 실리성이 있는, 자연스럽지 않은 가짜 감정, 부풀려진 마음,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것이다.
이런 류의 천박한 예술은 키치라 이름 붙여진 것이 19세기일 뿐 미술사에서 언제나 존재했던 하나의 아류였다 그런데 유독 19세기에 키치가 미술사조의 하나로 등장하게된 배경은 자본주의와 소비문화의 창궐이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문화가 필요해졌다. 산업화와 기계화에 따라 다량생산과 복제문화가 용이해지면서 오리지널과 카피의 상대적 가치가 달라졌다. 도시문화의 발달로 뮤지엄과 갤러리가 많아지면서 미술품 판매로가 넓어졌고,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예술과 대중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한세기 전만 해도 예술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예술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값싼 예술, 그러니까 키치는 이 모든 상황의 산물이다.
주목할 것은 미술의 정의가 계속 달라진다는 것이고, 현대에 와서 키치는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속에서 영역과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을 가운데 두고 양 끝에 위치했던 전위와 후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거의 섞여서 혼동되는 상태, 무엇이 아방가르드이고 무엇이 키치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제프 쿤스의 ‘마이클 잭슨과 버블스’ (1988)
마르셀 뒤샹의 ‘샘’ (1917)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 (1974~79)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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