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힘들게 이룬 초당적 합의에 의해 연방상원을 통과한 포괄적 이민개혁안이 하원의 초강경 반대로 결국 폐기되었을 때 우리는 개혁안을 성사시키려면 먼저 합리적 사고를 가진 의회를 선출해야한다는 것을 절감했었다. 그래서 반이민파 의원들이 대거 낙선하고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11월 중간선거 이후 느긋했었다. 지난해 것 보다 훨씬 더 혜택을 확대한 이민개혁안이 무난히 통과되리라는 낙관론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 연방의회 개원 석달을 훌쩍 넘긴 오늘까지도 개혁안은 아직 상정되지 못했다. 물론 전망은 밝다. 각계의 폭넓은 지지도 받고있다. 백악관도 원하고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도 원한다. 민권단체는 물론이고 업주와 노조까지 한 목소리로 개혁안의 조속한 통과를촉구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여건이 희망적이다.
그런데 조금씩 불안해지고 있다. 우선은 시간 때문이다. 개혁안이 제대로 된 내용을 담아 성사되려면 상반기엔 통과되어야 한다. 여름휴가까지는 부활절 휴가를 빼면 이제 4개월 남짓이다. 9월로 접어들면서 정국은 대선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그때까지 통과 못하면 이민법 개혁은 뜨거운 선거 이슈로 부상할 것이다. 공화당은 ‘불법이민자를 사면으로 포상할 것이냐’며 민주당을 비난할 것이고 민주당은 공화당을 비인도적 반 라틴계 정당으로 매도할 것이다. 산적한 이민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정책 마련이 아니라 성향 다른 유권자들의 비위 맞추는 선전용으로 추락해 버리기 십상이다.
대선 영향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과 함께 포괄적 이민개혁안의 기수였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한발 물러서고 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그로서는 당연하다. 온건파인 그는 지난해 공동제안한 개혁안을 통해 불체자 신분합법화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공화보수진영으로부터 계속 비판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몇 달 이 두 의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민개혁안 초안이 추진되어 왔었다. 불체자 사면 폭을 대폭 확대하는 훨씬 더 친이민적 내용으로 알려져 왔지만 햇볕을 볼 것 같지는 않다. 이 협의에서 제외된 공화당 온건파 의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자기들대로의 법안을 따로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케인도 소극적이고 온건파 공화당 의원들도 등을 돌리면 상원 통과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치게 된다.
급해진 케네디는 새 법안을 포기하고 지난해 상원법사위를 통과했던 법안을 재상정할 뜻을 비치고 있다. 이미 토론을 거쳤고 공화당 의원들도 지지했던 법안이니 ‘조속한’ 통과를 위해선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일리는 충분하지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듯한 아쉬움은 남는다.
지지 확보를 위해 공화당 의원들을 달래는 것은 의회 민주당 지도부만이 아니다. 백악관도 마찬가지다.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어제 귀국한 부시대통령이 곳곳에서 부딪친 이슈가 이민문제였다. 과테말라의 시위대들은 “부시는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며 쫓아내는데 왜 우리는 그를 환영해야하느냐”며 항의 구호를 외쳐댔고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환영식에서 근본적 대책없이 국경장벽을 설치하는 미국의 이민정책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그때마다 부시는 이제 곧 포괄적 개혁안을 마련하여 인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궁색한 답변을 되풀이 했을 뿐이다.
부시는 그러나 임시 초청노동자 프로그램 실시는 강조했으나 기존 불체자에 대한 시민권 취득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월말 상원 이민 청문회에 출석했던 국토안보부 장관과 상무장관도 시민권 취득 부분엔 입을 다문 채 지나갔다. 공화 보수진영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서다.
과테말라에서 부시는 의회가 8월까지 개혁안을 통과시키기 바란다고 처음으로 구체적 일정을 언급했고 케네디는 지난해 안을 재상정하면 5월 중 상원에서 표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한된 시간을 부시와 민주당 지도부 모두 십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면 추진하는 쪽은 마음이 급해지고 반대쪽은 이를 약점 삼아 더욱 거세지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서 불체자 사면의 폭이나 시민권 취득 등 논쟁적이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이 희생될 까 우려된다. 이민법 개혁안은 이제 시간이 급하다. 대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가을 전에 빨리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개혁안을 정말 시행 가능한 법으로 완성시키려면 양보해서는 안되는 조항들이 있다. 사면과 시민권 취득 등이 이에 속한다. 반대가 거세겠지만 부시도, 민주당도 과감하게 맞서도 될 것이다. 아직은 여론이 70% 가까이 전폭지지를 보내고 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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