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사시는 한 독자가 “남편하고 도무지 말이 안 통해요.” 전화를 해 오셨다. 영어로 해서 못 알아듣는다는 말이 아니라 조그만 일로도 툭 하면 서로 언성이 높아져서 아이들 보는 앞에서도 예사로 다투어서 정말 이 문제를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왔었다.
어떻게 말이 통하지 않으냐고 했더니 남편이 주로 다음과 같은 언행을 한다고 하셨다. (1) 말을 중간에서 툭 잘라먹는다. (2) 기분을 깡그리 무시한다. (3) 항상 충고나 설교 같은 말로 가르치고자 한다. (4) 추궁 또는 질책하려고 든다. (5) 지례짐작으로 해석한다. (6) 언성을 높여 화를 낸다. (7)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8) 죄의식이 들게 만든다. (9) 들은 척 만 척 한다. 남편의 언행이 늘 이런 식이라고 했다.
가령 아내가 “여보, 오늘 나 회사에서 수퍼바이저가 막 소리 지르고 화를 내서 너무 속상했어요.” 하면 남편은 “당신만 힘든 거 아냐.” “좀 참아.” “먹고 사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런 인간이 어디 당신 회사에만 있나?” “당신이 뭘 또 잘못했나 보네. 잘 좀 하지 그래.” “전에 내 그 지독한 수퍼바이저만큼 할까?” “당신은 직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말썽만 생기냐?” 남편은 주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고 했다.
남편의 이런 언사가 그 소리 지르는 직장상사보다 더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서 당신은 내 남편인데 겨우 그런 식으로 밖에 말할 수 없느냐고 따지면 오히려 남편이 화를 내어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가 두 부부 사이에 진행되면서 가정에 늘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데도 이 부부는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듯이 받아드리고 산다고 했다.
비록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 사이라 해도 연애하던 시절처럼 재미나게 사는 방법이 있다. 부부 사이의 애정을 대화를 통해서 다시 일깨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위에 열거한 1번부터 9번까지의 언행을 정반대로 하면 된다. 말을 중간에서 잘라먹지 않고 기분을 인정해주고 충고나 설교하려고 들지 않고 추궁, 질책하지 하지 않고 자기 자랑 늘어놓지 않고…
그러나 연애시절 잠깐을 제외하면 오랜 세월 위의 1번부터 9번까지의 방법으로 대화를 해 오던 부부가 이것을 새삼스럽게 바꾸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신혼부부 시절처럼 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경험해 보겠다면 다음과 같은 조직적인 접근이 필요해진다.
첫째, 상대방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해 준다. 직장에서 상관이 소리 질러 속상했다고 말하는 아내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이 말 한마디로 아내가 경험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둘째, 상대방의 기분에 귀 기울여서 기분을 인정해 준다. 경험을 인정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상했다고 하는 그 기분을 그대로 인정해주려면 “당신 많이 힘들었나 보네.” 이 간단한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의 기분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된다.
셋째, 상대방이 경험한 일이 당사자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 보도록 한다. 이것은 약간 까다로운 기술이다. “여보. 그 수퍼바이저가 당신한테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당신 어때?” 이렇게 물어본다. 마지막으로 이 대화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상대방에게 다시 들려준다. “여보. 오늘 회사에서 수퍼바이저가 화내서 당신 많이 속상했네. 사람들 앞에서 수모도 당하고…”
지금 이 대화법은 간단한 듯하지만 사실은 부부 사이에서 하기에 가장 어려운 대화법이다. 그래서 많은 부부들은 오랜 세월동안 1번부터 9번까지의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법으로 피곤하게 살아간다. 일상에서 그 방법은 너무 수월하게 나오기 때문에 지금 이 낯선 대화법을 익히려면 행동수정(2/26/07 칼럼 참조)이 필요하다. 그러나 약간의 노력 투자로 일단 익혀 놓기만 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두 사람은 신혼부부 같다”는 소리를 반드시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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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손 <임상심리학박사·PsychSpecialist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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