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정화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그대의 자식은 그대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열망하는 ‘참생명’의 아들과 딸들이다.
그들이 비록 그대를 통해 태어났지만 그대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아이들이 그대와 함께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그대의 소유물은 아닐진저!
from ‘the Prophet’ by KAHLIL GIBRAN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자식 둘 나아 길러 본 애비입니다. 아니, 사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자괴심만 앞서는 아버지입니다. 얼마 전 ‘아버지 학교’라는
영성 프로그램에 내걸린 모토를 보고 스스로 묻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입니다! 내가 진짜 아버지 자격이 있는
아버지인가요?
대학시절이던가요. 시안 강은교 의 번역으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었습니다. 그 잔잔한 감동 - 깨달은 이의 감성에서
우러나오는 고요한 함성, 그렇게 진한 공명으로 읽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결혼에 관하여, 사랑에 관하여, 자식에
관하여...
이제 지천명을 넘기고 여러 번 영문으로 칼릴 지브란을 만납니다.
읽을수록 행간의 의미가 새삼스럽습니다. 참, 행간[行間]을 읽는다는
표현은 참으로 영어적 표현이기도 하죠. Read between the lines.
줄 사이를 읽으라는 말 그대로의 번역입니다.
1975년 성탄절 즈음 문예출판사 번역본 ‘예언자’에서
시인 강은교 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말하자면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살았다. 좀더 분석적으로 말하면 즉, 아랍이라는 세계와
서구라는 세계, 또 레바논과 아메리카, 삼나무(레바논의 심벌
마크로서 국기의 한가운데 그려져 있음)와 마천루, 그리고
페니키아의 고대 예언자의 세계와 냉혈로 가득 찬 현대라는
세계가 그것이다. 그 사이에서 그는 현대의 아무도 생각지 않는
곳을 바라보았고 오랫동안 묵묵히 방황하였으며 그 결과 태어난
것들이 그의 작품인 것이다.
그렇게 심오하게 잉태 출산된 ‘예언자’의 압권은 바로 ‘자식에
관하여’입니다. 그대가 소위 자식이라 부르는 ‘그 분들’은 그대의
소유물도 아니요 또한 그대의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대를 통하여
[through] 이 세상에 나왔지만 그대로부터 [from] 온 분들이
아닙니다. 영어 전치사 ‘through’와 ‘from’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할 수가!
그리고 덧붙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열망하는 ‘참생명’의
아들과 딸들이다.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삶이 삶 자체를 동경하는 그 ‘실체’로부터의 발아[發芽]가
곧 자식이란 가르침. 아니- 가리킴. 이보다 더 철저한 ‘직지인심’이
있을까요.
불현듯 선가의 화두가 떠오릅니다. 부모미생전의 진면목을 아는가?
그대 부모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그대 진짜 모습은 과연 뭔가???
그대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생물학적으로 결합해
벌어진 물리적 사건만은 아닙니다. 그 섹스의 합일 이전에 당신은
과연 어디에 있었나요? 바로 이 절대절명의 질문에 칼릴 지브란은
자식을 빗대어 의젓하게 선답[禪答]을 주고 있습니다.
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그대의 자식은 그대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열망하는 ‘참생명’의 아들과 딸들이다.
그들이 비록 그대를 통해 태어났지만 그대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아이들이 그대와 함께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그대의 소유물은 아닐진저!
이제 다시 반추해 봅니다.
내가 먼저 왔나 아님 자식들이 먼저 갔다 다시 왔나?
이건 상투적인 윤회나 전생담을 거드는 게 아닙니다. 그건 구름 잡는
얘기라죠. 보다 절박한 질문은 내 자식은 과연 누구인가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는 이 뭣고!의 화두인 것입니다.
[너무 심각했나요? Sorry, Mr. Gib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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