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천지 원쑤’ 보듯 치를 떨던 북미 사이였다.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으로 칼날 위에 올라선 북한의 강성대국팀과 북한의 돈줄을 움켜쥔 미국의 네오콘팀이 으르렁거릴 때가 언제였던가. 그토록 각을 세우던 두 나라가 그동안 쌓였던 불신을 털고, 대화를 통해 적대관계를 청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외교’이고, ‘정치’다.
지난 3월 5, 6일 이틀동안 미국 뉴욕의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의는 기대 이상이었다. 양측 수석 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약속이나 한듯 “회담 분위기가 아주 좋았고, 건설적이고 진지했다”, “2.13 합의 초기 이행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감을 갖게됐다”고 말한다. 워싱턴-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가능성까지 말했을 정도다.
미국은 북한의 모든 핵시설의 동결과 폐쇄, 불능화, 폐기 조치를 원한다. 바로 영변의 5MW 원자로등 5개 핵시설과 건설중인 50MW와 200MW 원자로의 폐기다.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확실한 복귀 이행과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도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태도는 시원시원했다. ”이제 (북)핵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지 아닌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해결할지의 문제”라고 치고나온다.
‘고농축 우라늄’ 문제도 김 부상은 HEU 프로그램의 핵심 장비 도입을 시인하고, 이에 대한 완벽한 해명이 필요하며 핵 전문가 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희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더더욱 다음 실무회담 장소가 평양으로 정해지고 힐의 평양 방문이 이루어진다면, 북미 사이의 고위급 상호 방문과 그 이상의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하반기 빌 클린턴 대통령시절, 매들린 울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북한의 조명록 차수의 상호방문 결과는 대통령 임기 말 시간에 쫓겨 수포로 돌아간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2년여 시간이 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의 처지와 심경을 누구보다 깊게 살필수 있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북한특사 방문에 쓸 시간도 충분하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힐로 이어지는 “3인방”의 대북관계 개선의지만 확고하다면 말이다.
북한이 “진짜 약속을 지킬까” 의심할 것은 없다. 어차피 기회는 이렇게 올 뿐이고, 대화상대는 북한(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북한은 2.13 합의로 정한 이행 사항의 준수를 확실히 하며, 미국에게 88년부터 적용되어 온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의 이름을 빼줄 것을 가장 강력히 요구하였다.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에나 가능한 문제이다.
북한은 당장 국교 정상화를 원하는 것이다. 테러 지원국에서 빠지면 장기 저리 차관을 받을수 있고, 무기 수출 금지와 이중 용도 품목 수출 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북한은 미국과 손을 잡고 바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4일 김정일 위원장은 최측근 실세들과 함께 평양시내 모란봉 구역의 중국대사관을 방문, 전 직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대사관 내부를 둘러보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정월 대보름을 맞아 중국 ‘류시오밍’ 대사의 초청에 따른 방문이라 해도 실은 북미 실무회담 전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중국의 이해를 다지는 발길로 보아야할 것이다. 뉴욕 실무회담에 임했던 북한측의 성의있는 준비를 엿볼 수 있는 방문이다.
6자회담 2.13 합의가 정한 5개 실무그룹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교섭기획단’이 모습을 드러냈고,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한반도 평화 포럼’의 구성도 이야기되고 있다. 모두가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평화적 해결을 앞당기려는 노력들이다. 사실, 한반도는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 하계 올림픽까지 어쩌면 부시 대통령 임기말까지 2년여 동안 큰 변화에 휩싸일 수 있다. 있다면 남북정상회담이 몰고올 충격이 그렇고, 12.19 대선과 뒤따르게 될 변화가 그렇다. 이제는 작년 11월 18일,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때 밝힌 부시 대통령의 말도 살아숨쉬게 되었다.
“북한이 핵 폐기에 나서면 노 대통령, 김(정일)위원장과 함께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는 문서에 공동서명하겠다”는 말이다. 한, 미, 북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 정전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한반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변화를 겪게될 것이다.
이제 우리들이 해야할 몫만 남았다. 북미 양국의 교류 협력의 물꼬는 열렸다. 북한이 만약 2.13 합의를 두고 신의를 지킨다면 두 나라 사이의 변화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이제와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왜 비껴가는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정말 인정할 것인가? 미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평화적 해결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묻는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머리 위로 오고가며 주고 받게될 북미 두 나라의 발목을 잡을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지구촌의 냉엄한 현실이다.
누구도 한반도를 뒤덮을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다. 피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다면 제자리에서 주인의 몫을 다 해야한다. 국가의 이해와 국민의 복리, 안위를 먼저 물어야한다. 국민의 삶을 위한 진보요, 보수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손잡고 나서는데, 우리만 ”반미, 친북”싸움에 빠지고, ‘대북 퍼주기’로 몰아 시비를 걸다니 대북관계에서 교류, 협력말고 다른 묘책이라도 있는가.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100년을 기약하며 몰아쳐오는 봄기운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문까지 활짝 열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