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인식체계에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묘사하기 위해 사회 과학자들은 다양한 개념적 정의를 시도하였다. 미디어 사회, 스펙터클의 사회, 정보사회, 소비사회, 포스트산업 사회. 이는 우리가 이미 포스트모던의 조건 속에 진입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제는 다소 식상해 보이기도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은 예술과 문화 전반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을 은밀히 지배하는 시대적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
대단히 모호한 용어인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말하자면 서양의 진보와
이성의 절대적인 신봉에 대한 상대적인 회의주의적 시각으로 해석된다.
이는 극단적으로 인식론적 무정부(epistemological anarchism) 상태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성에 기반을 둔 과학과 테크놀러지의 발전은 인간에게 영원한 진보를 약속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과학과 테크놀러지의 무한한 발전은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대 규모의 재앙을 안겨 주었으며 이로 인해 방향을 상실한 서구의 지성은 새로운 회의주의와 절충주의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국, 이 용어 자체는 고정된 의미를 규정하지도 제시하지도 않으며 “개념적인 폭력화”를 거부하며 (avoiding a kind of conceptual violence)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한다.
이러한 의미의 다원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해독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준다. 이에 대한 복잡한 철학적 논의는 접어두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경제적 측면을 비판적 시각에서 살펴 보기로 한다. 먼저, 경제적인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순수해지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특징의 증후로 이해된다.
이제 전 근대적인 국가간의 엄격한 경계는 사라지고 자본과 인력은 국경을 쉽게 넘나들며 다국적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지구상의 구석구석으로 생산기지를 옮겨 다닌다. 정보 통신과 인터넷의 발전은 국가간의 경계를 사실상 해체한다. 세계화로 대변되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시간성, 공간성, 민족성, 동일성의 지속과 같은 문화적인 경험을 박탈하며 우리를 포스트모던 문화의 한 특징인 정신 분열적인 상황으로 이끈다.
이는 우리에게 일련의 연속체들을 연결시키기는 능력을 상실 시키는 고립되고 단절된 경험이다. 포스트모던의 단편화 되고 탈 중심화 된 세계에서는 어느누구도 사회 전체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인 현란한 스펙타클 (the society of the spectacle)의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의 삶의 공간은 과잉 이미지와 커뮤니케이션의 피막(communication membrane)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란한 도시의 빌보드, 통신망, 컴퓨터 스크린, 시네마, 다채널 케이블은 우리 삶의 콜라쥬 (collage)를 형성하며 우리를 포스트모던 상태로 몰고 간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의미와 논리보다는 단순하고 자극적이며 강렬한 이미지가 더욱 중요하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미 이미지는 단순한 현실의 반영이 아닌 현실과
유리된 초현실이다. 테크놀러지에 의한 다량복제 (the age of mass reproduction)의 시대에 원본과 사본의 차이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현실과 가상의 세계는 구분되지 않으며 전도될 수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눈부신 발전에 의해 가상의 세계는 더욱 실제처럼
느껴진다. 인터넷과 화려한 동영상을 통한 이미지들의 대량유포의 기술은
이제 우리의 인식과 감각체계마저 바꿔 놓았다. 이제 우리는 간접적인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미지에 의해 전도된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구성할 매개체인 언어를 부정함으로써 자아와
세계를 해석할 언어적 능력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제로의식으로 표현되는 포스트모던 징후는 우리의 의식에도 깊이 침투해 있다. 깊이 없는 사고, 과거의 해체, 탈 중심화, 역사와 주체의 소멸, 언어적 규범의 파괴와 파편화, 그리고 문화적 분열증. 우리들은 어쩌면 과거와의 유기적 관계가 전혀 없는 영원히 현재만이 존재하는 창백한 포스트모던의 가상의 공간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포스트모던의 세계는 이미 오래 전에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色卽是空, Form is emptiness)의 서양의 염세주의적인 또 다른 복제판이 아닐까? 이방의 땅에서 포스트모던의 경험은 더욱 구체화되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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