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의 박사 특강
선은 이성적 논리적 기질
색은 감성적 열정적 기질
이 두가지의 갈등·대립으로
서양예술은 발전돼와
#선과 색, 끊임없는 갈등의 정반합
인류가 그림을 그려온 이래 회화는 늘 두 가지 주장 앞에서 갈등해 왔다. 선이냐, 색이냐의 명제. 즉 그림에 있어서 선이 더 중요한가, 색이 더 중요한가 하는 문제다. 어떤 화가들은 선이 형태를 만든다고 했고, 어떤 화가들은 색이 그림을 완성한다고 주장했다.
선과 색의 대립은 르네상스 시대(15~16세기)로부터 두 줄기 축을 이루며 미술사를 이어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대표되는 플로렌스 학파가 선적인 미술을 추구했다면 베르네제와 티치아노로 대표되는 베니스 학파는 색의 미술을 추구했다.
바로크 시대(17세기)에는 ‘프랑스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푸생과 그의 제자들(Poussinist)이 선과 형태의 화가였고, 루벤스와 그의 제자들(Rubenist)이 대표하는 플랑드르 학파는 자유분방한 채색의 감성적인 그림을 그렸다. 근대(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다비드, 앙그르 등의 신고전주의파가 선의 그림을, 고야와 들라크로와, 제리코의 낭만주의 파가 색의 그림을 그렸다.
현대미술(1906년 이후)에 와서는 피카소가 선의 작가였다면 마티스는 색의 작가였다. 어릴 때부터 데생의 천재로 불렸던 피카소의 작품을 보면 선과 형태가 갖는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반면 ‘색채주의자’로 불렸던 마티스는 “그림이란 색채다”라고 주장했을 정도로 강렬한 색의 화가였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당대의 두 거장이었다. 나이는 12세 차이가 났지만 두 사람은 평생 경쟁하듯 작업했던 라이벌이자 친구였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천재들이었으며 각자에게 진정한 비평가였다. 두 사람은 성격과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서 피카소가 밤에 더 정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면 마티스는 낮의 햇빛 아래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또 언어감각이 뛰어났던 피카소는 “나는 본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대로 그린다”고 했는데 마티스는 “사람들이 보면서 만족을 느끼고 편안하게 쉬는 그림이 목표”라고 했을 만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작업했다.
니체는 이같은 선과 색의 상반된 흐름을 기질적인 문제로 보았다. 선은 아폴로(태양의 신)의 기질이요, 색은 디오니소스(술의 신)의 기질이다. 아폴로 적이라 함은 지성과 이성과 조화와 균형의 기질이요, 디오니소스 적이라 함은 광기와 감정과 정열의 기질을 말한다.
말하자면 선은 이성과 논리요, 색은 감성과 열정이다. 서양 예술은 언제나 이 두 기질의 갈등과 대립으로 발전돼 왔는데 선의 문화가 주류이며 정통이었다. 말하자면 논리적인 것, 클래식, 아카데믹 한 것들이 주도권을 잡았고 본능적이고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것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이것은 그림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사람의 기질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으니 이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 수학적인 사람과 언어적인 사람, 이과적 사람과 문과적 사람, 과학쪽 사람과 예술쪽 사람이 성격과 스타일에 있어서 대비를 보이곤 한다. 물론 뚜렷한 대비를 보이기보다 두 기질이 조금씩 섞인 사람도 있고, 별다른 기질적 특징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는 선적인 사람과 색적인 사람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당신은 선의 사람인가, 색의 사람인가?
▲피카소(1881∼1973)-입체파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얼굴 앞모습과 옆모습이 동시에 그려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이 큐비즘(cubism)의 특징, 즉 대상의 모든 면을 해체해 평면에 늘어놓은 결과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든지 그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커피잔 하나를 보아도 내가 보는 방향의 한 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을 입체적으로 다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커피잔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한 물체의 뒤와 옆과 밑이 어떻게 생겼는지 경험과 지식에 의해 알고 있기 때문에 다 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종이 한 장조차 뒷면을 보지 못하는 존재다.
피카소는 이같은 그림의 ‘시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물의 모든 면을 해체하여 평면에 재배치하였다. 어떻게 하면 사물을 모든 방향에서 보는 것처럼 동시에 통째로 감상할 수 있을까 하다가 완전히 분해하여 뒷부분까지 모두 앞으로 나오게 늘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묘사방법에 따라 처음으로 그린 작품이 ‘아비뇽의 여인들’(1906∼1907)로서 철학과 과학과 물리학이 모두 포함된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가장 놀랄만한 변혁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피카소의 ‘바이얼린과 포도’. 바이얼린의 모든 부분을 해체하여 재배열한 그림이다>
▲마티스(1869∼1954)-야수파
원래 변호사였던 마티스는 색을 자연에서 해방시킨 사람이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초록색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색의 영토를 광활하게 풀어내었다. 그에게 있어서 색채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의 표현이었다.
그의 주관적인 색채와 거친 붓놀림은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나 강렬하고 자유분방하게 보여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동물 같다는 뜻으로 ‘야수파’(Fauvism)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강렬하고 현란한 원색의 사용으로 야수파란 이름을 얻었다>
▲칸딘스키(1866∼1944)-표현주의
칸딘스키는 그림에서 형태를 없앤(aform) 최초의 화가로 현대 추상화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전까지는 형태를 변형시키는(deform) 작업이 있었을 뿐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형태가 아주 소멸된 것이 아니고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돌아온 그는 거꾸로 세워진 자신의 그림을 바라본 순간 무슨 그림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선명함과 강렬함으로 격정적인 감동의 순간을 접하면서 추상화 탄생의 영감을 얻었다. 그때부터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솟아 나오는 감동의 모든 표현을 색채에 맡기고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0년 ‘구성’(Composition) 수채화 연작으로 화단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그는 ‘즉흥’(Improvisation), ‘인상‘(Impression) ‘무제’ 등 당시로선 ‘이상한’ 제목들을 사용하고 거기에 번호를 붙이기 시작한 첫 화가였다.
<추상화의 창시자 칸딘스키의 ‘노랑, 빨강, 파랑’>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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