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이필상 총장이 논문 표절시비 논란 끝에 취임 2개월이 못되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에 국한된 일로 치부하기에는 그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
이 총장 취임 후 이 문제가 제기되자 고려대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조사위원회는 4편의 논문에 대해 표절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교수의회에 보고하였다. 교수의회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한 판정을 보류한 채 재단이사회에 일임하였다.
이필상 총장은 자신이 논문을 게재하였던 1988년 당시는 관행이었지만 현재 관점으로는 부적절하다면서 표절의혹 자체를 부인하였다. 또한 조사위원회의 의도가 무엇이며, 공정한 조사를 했느냐, 소명기회도 주지 않았다면서 모종의 음모설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논문 표절 여부는 관련자의 사임과는 상관없이 최종 판정이 나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는 모든 교수들의 학자적 윤리와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만약 표절로 최종 판정이 난다면 이 총장은 교수의 자격으로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의 말대로 당시는 그런 행위가 관행이었고 따라서 징계사유가 되질 않는다면 언제부터 그런 관행이 용납되지 않는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하고 심사가 엄격하여야 한다. 이 총장의 경우 조교수에서 부교수 그리고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해 두 번의 심사, 종신직으로 승격하기 위한 심사, 경영대학교 학장 취임시의 자격심사, 그리고 총장 취임시의 자격심사 등 학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주요한 심사를 다섯 번 거쳤다. 이외에도 교수들의 연수 성과에 대한 연간 평가가 매년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를 보면 학자의 자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논문 표절이란 비윤리적 행위가 이런 심사과정에서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 학자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시민운동가로서의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총장직에 선출된 경우가 이러한데 하물며 여타 교수들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은 총장 취임 후 누군가 언론에 제보한 후에 제기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표절 시비는 이 총장의 학자적 자질을 시비하기보다는 그를 음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뒷조사를 한 후 투서형식으로 흘린 면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총장이 “취임 전 사퇴압력 받았다”는 발언이 이를 암시한다.
이런 음해성 행위는 그 자체가 비윤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측면에서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어떻게 하든 흠집을 내고 물의를 일으켜서 물러나게 만드는 고질적 문제해결 방식을 벗어나서 이제는 제도적, 절차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정착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문제의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학교의 위신문제라는 이유로 이 총장의 사퇴를 유도한 고대 교우회의 개입은 음해한 측의 손을 들어준 측면이 있다.
논문표절은 학장이나 총장 등 보직교수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도 적용되는 학문적 윤리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자료나 문헌들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학생들의 논문표절 행위가 심각하다. 그런데 교수들의 윤리수준이 이러할 진데 학생들에게 이를 요구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한국에서도 교수와 학생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윤리지침이 설정되고 이에 대한 사전교육과 사후처벌이 분명하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논문표절 판정을 받을 경우 교수는 해임, 학생은 퇴학당하는 것이 대개의 기준이다.
세계 경제 10위권에 육박한 한국의 경제력에 비추어 볼 때 세계 100위권에 드는 대학이 아직 하나도 없다는 것은 한국대학들이 분발해야 할 사항이다. 대학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중 제일 중요한 것이 교수들의 학문적 자질이다.
한국은 많은 교수들이 미국의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기에 그 자체만 볼 때 질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교육받으며 학문적 윤리기준도 그에 걸맞게 익힌 후 한국에 돌아가서는 관행이란 미명하에 한국적 기준을 도로 적용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모든 대학들이 교수와 학생들의 학문적 윤리지침을 정립해야 한다.
<임진혁> 새크릿 하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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